광대한 영토를 달리던 유목민의 후예들
고등학교 졸업 직전 괴짜같던 한국사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내겐 여지껏 들었던 어떤 수업보다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말은 "니네가 여지껏 배웟던 한국사는 다 잊어라. 국사책도 갖다 버려라" 였다. 그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다. 내신 또는 수능을 위해 열심히 닳고닳게 봐왔던 국사책을 통째로 날려버리라니...
그때는 그말을 잘 이해할수 없었지만 이게 30년이 다되가는 요새 한국사 공부를 다시 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역사는 주변 강대국들의 수많은 역사 수정과 윤색으로 많은 부분 원래 모습을 잃어버렸다. 조선이라는 500년 긴 역사속에서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 갇히고 농경민으로서 그리고 글 꽤나 읽는 선비들만 많은 문인 문신 중심의 사회가 되었다. 좁은 영토에서 머리 좋은 사람들만 득시글 하다보니 당파 싸움에 서로 죽고 죽이는 사화를 몇번씩이나 하고 결국은 해결책을 제시 못하고 나라를 외세에 팔아먹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우리는 유목민의 후예다.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 고구려의 벽화와 백제 신라의 유물들 속에서 우리는 저 알타이 산맥에서 만주까지 내달리던 유목민의 자손임을 증명할 수 있다. 발해와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한 유목민의 후예였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이렇게 금속 (반도체, 휴대폰 조선 등)과 통신(인터넷, SNS)등에 능할 수 있는 것이다.
유목민은 어차피 자신의 땅에 정주하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이주를 한다. 고로 큰 건물이나 생활품보다는 몸에 지니기 쉬운 금속 공예품에 대한 선호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또한 먼 거리간 소통을 위해 매같은 동물을 이용하거나 말을타고 소식을 전하거나 여러 나라에 사신 등을 많이 파견햇다.
우리는 세계최초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의 후예들이다. 또 신라 금관은 세계에 몇안되는 금관 보유 국중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에밀레 종이나 백제금동대향로, 거북선의 철 갑판에서도 봤듯이 우리는 금속에 관한한 엄청난 기술을 가진 민족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세계 1위의 반도체 생산국이며 휴대폰과 가전제품부터 선박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철에 대한 기술로 세계에 떨치고 있다.
또한 솟대나 삼족오 같은 새에 대한 숭배가 있었는 바 이는 유목민끼리 혹은 하늘에 소통을 빠르고 쉽게 하고자하는 기원을 담은 것이다. 그러한 빠른 소통에 대한 갈망으로 우리 민족은 디지털세상이 오자 디지털 유목민으로서 온갖 소셜네트웍과 인터넷 관련 분야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선의 쇄국정책으로 싸매고 문인관련 우대 정책으로 500년동안 공부하는 문화(?)를 만들면서 그안에서 에너지를 응집하고 폭발하듯, 물꼬를 튼듯 세계로 각지로 날개 돋친듯 나아갔다. 우리 민족은 새로운 세기 20세기가 되면서 물론 이민족 지배와 내전도 겪었지만 그 좁디 좁은 한반도에서 뻗어나와 세계로 향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위로 북한 아래로 삼면이 바다로 섬같이 작은 영토에 갇혀있지만 해외로 여행하는 국민들 숫자나 세계에서 휘날리고 있는 K컬쳐 등 좁은 한반도 안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우리가 유목민이 아니고 농경민이라고 한다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 이다
조선시대 그 세월이 500년도 더되니 그 긴 세월동안은 주변국(원 명 청 일본 등)에 짖눌려 아니면 스스로 주눅들고 타협하여 농경민으로 살아왔다 쳐도 결국 우리의 DNA는 배달의 민족, 유목민이다.
우리나라 역사 5천년중 10%에 불과한 500년의 세월에 90%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 10% 때의 갇혀있음 주눅들음으로 우리안의 유목민 유전자는 죽어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그 유전자를 꺼내어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에 새깃털 모자를 쓰고 말을 타며 멋진 금속 공예품을 자랑하던 그 유목민의 DNA가 현재 우리의 모습을 규정하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SNS에 나 자신의 존재를 흩뿌린다.
결국 우리는 너무나 500년 조선의 역사에 갇혀 (모 식민강단사학이라고도 하지 않겟다 조선부터 너무 문제다) 마치 우리가 농경민의 후손인양 살아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였다. 우린 유목민의 후예이다
쌀을 생산하기위해 전답같은 부동산에 집착하던 농경민, 마을에서 유교적 덕목으로 꽉 짜여진 인간관계의 사슬에 묶인 유교 농경 사회, 단체 노동이 필요해 집단에 가려져 (물론 집단내의 혜택도 있겟지만) 개인을 잘 못 보았던 농경사회에서 벗어나야 우리의 현재 문제가 해결된다.
유목민의 후예로 다시금 유목민 DNA를 100% 발현할때 저출산 고령화 문제 같은 고질적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다시금 얘기하지만 우리는 절대 농경민의 후예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다시금 쓰여지고 읽혀야한다. 유목민으로 내달렷던 유라시아 대륙의 맹주였던 우리의 DNA로 다시금 우리 사회를 복원해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