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은 끝났지만, 호수는 여전히 비명을 삼키고 있었다. 부서진 보트 조각들이 수면 위에 흩어져 서로 부딪힐 때마다 쇳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바람은 연기를 실어와 눈을 따갑게 했고, 타버린 가솔린 냄새가 목을 쑤셨다. 수면에 번진 기름막은 햇빛을 받아 일그러진 흰빛과 회색빛의 무늬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죽음을 반사하는 거울 같았다.
이미지 1: 폭발 후 호수 위에 흩어진 파편과 기름막
관중석은 지옥도였다. 어린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 품에 매달렸고, 학생은 계단을 굴러 내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노인은 무릎 꿇고 묵주를 움켜쥐며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기자는 카메라를 주우려다 손을 데고는 욕설을 삼켰다.
“젠장…”
군중 속에서는 속삭임이 돌았다.
“이건… 사고가 아냐. 계획된 거야.”
한준은 낡은 보트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귀는 여전히 먹먹했고, 시야는 연기에 가려 흐릿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화려한 보트들이 무너진 자리에서 고철처럼 보이던 그의 배만이 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나만 남았을까? 행운일까? 아니면 다음 순서가 나라는 신호일까. 생존의 기쁨보다 죄책감이 앞섰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조차 나를 갉아먹는다.
심판석은 얼어붙은 듯 침묵에 잠겼다. MC는 마이크를 쥔 채 단어를 삼켰고, 방송 카메라는 허공을 비추며 흔들렸다. 무전기에서는 날카로운 지시가 튀어나왔다.
“기자들 접근 차단해! 사진과 영상 전부 삭제해!”
“연방 연락망 끊어! 우리가 먼저 수습해야 한다!”
협회장 찰스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흔들렸지만, 얼굴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건 경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돈, 그리고 내 생존의 문제였다.
리사 심판은 메모장을 꺼내 적었다. ‘사고?’ 곧 줄을 그어 지우고, 굵게 다시 썼다. ‘의도’. 펜 끝은 종이를 찢을 듯 눌렸고, 잉크는 번져 얼룩이 되었다. 손끝에 맺힌 땀방울이 종이에 떨어졌다. 양심을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지킬 것인가. 두려움이 목을 조였다.
이미지 2: ‘사고’에 줄이 그어지고, 굵게 적힌 ‘의도’, 땀방울이 번지는 메모
리처드의 보트는 불길 속에서 검게 그을렸다. 그는 얼굴에 검댕을 뒤집어쓴 채, 목이 갈라지도록 외쳤다.
“이건 테러다! 누군가 날 노렸다! 심판들, 이걸 그냥 사고라 할 건가?”
그의 외침은 공허하게 울렸다. 눈은 충혈됐고, 손짓은 과격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는 선수는 드물었다. 군중 속에서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 또 아버지 뒤에 숨으려는 거지? ”
라울은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웃었다. 이번 웃음은 짧지 않았다. 길고 늘어진 웃음이 불길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는 고개를 숙여 낮게 속삭였다.
“Bienvenido al verdadero juego.” (진짜 게임에 온 걸 환영한다.)
그리고 눈길을 한준에게 던졌다. 칼날 같은 냉기. 너도 결국 이 판의 법칙을 알게 되겠지.
이미지 3: 리처드가 외치고, 라울은 난간에 기댄 채 길게 웃는 장면
한준은 라인을 감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낚시 때문인가, 아니면 이들의 전쟁 때문인가. 낚싯대 끝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며 떨어졌다. 그는 그 빛을 보며 다짐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끝까지 보기 위해서.
멀리서 사이렌이 울렸다. 보안관 차량이 도착해 권총을 찬 인력들이 현장을 봉쇄했다. 맨 앞에 선 이는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쓴 체격 좋은 사내, 바로 한준의 외삼촌이었다.
그는 마이크를 움켜쥐고 단호히 말했다.
“모두 진정하십시오! 오늘 경기는 중단된다. 그리고—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누군가 개입했다!”
관중은 술렁였다. 찰스는 무전기를 꽉 쥐었고, 리처드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라울은 미소를 지었다. 판은 더 커진다. 그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미지 4: 무대 위 보안관의 선언에 술렁이는 군중, 긴장한 심판석
그때였다. 한준의 시야 끝에서 낯선 그림자가 스쳤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관중석 끝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발걸음은 느릿했지만 무겁고 의도적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작은 금속이 꺼내졌다. 햇빛이 그 표면에서 번쩍였다.
짧은 순간, 그의 시선이 한준과 마주쳤다. 얼음처럼 차갑고, 숨조차 얼리는 눈빛이었다.
폭발은 시작일 뿐이다.
한준은 직감했다. 진짜 위협은 이제 막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