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에도 이어질 어린 잔소리가 조금 겁이 나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왠지 큰소리를 칠 생각에 신나는 발걸음.
‘.... 어?..’
문구점 문고리에 걸려 있는 쇼핑백 하나.
‘뭐지...?’
쇼핑백 안에는 시집 한 권과 보기에도 탐스러운 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작은 엽서 한 개.
‘어제 책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붙여 주신 반창고도 감사해요.
귤은 달아서요.
그리고 시집은 좋은 구절이 많아서요.’
사실 시라면 잘 모르고, 어렵고, 낯설기만 한데.
엽서에 적힌 담백한 문장은 ‘그래도 괜찮다, 몰라도 된다.’라고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일찍 출근해서 다행이었다.
개구쟁이들 사이에서는 이 담백한 마음을 온전히 받기 힘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한 가지!!
방금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어제 우리가 부딪힌 건 빵 가게 앞이었지만, 고마움을 건넨 건 문구점의 문고리였으니까.
고이 시집을 책상 위 텀블러 옆에 올려 두고 아침 청소를 시작했다.
자꾸 휘파람이 입에서 새어 나오는 아침이었다.
하나, 둘 오가는 아이들에게 오늘따라 더 높이 손을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등교 시간이 가까워지자 가게 앞도 한산해진다.
시작종이 아득하게 울리고 나면 옆 카페에 가서 시원한 커피를 한잔 포장해 올 생각이었다.
신호등에 초록 불이 켜지고 잠시 뒤 해랑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해랑아, 안녕~ 오늘 좀 늦었네?”
“엄마가 늦잠을 잤어요,”
해랑이의 지각은 물론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엄마의 늦잠을 카드로 내세우는 녀석에게는 애정을 듬뿍 담아 잔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어?!?!? 저 책 우리 사서 선생님이 매일 보는 건데!!”
해랑이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은 책상 위 담백한 그 시집.
“사장님도 시 좋아해요?
사서 선생님은 시 정말 정말 좋아해요.
아니, 시를 사랑한데요. 시가 사람인가! 히히.
선생님이 기분이 좋은 날도 말하기 힘든 일이 생긴 날도 그걸 글로 써보래요.
그럼 그게 저 만의 시가 된데요.”
좋아하는 게임 속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처럼 한껏 신이 난 표정인 해랑이.
“사서.. 선생님...?
혹시..
선생님 머리가 길고 꼬불꼬불하니?”
해랑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둘이 알아요? 친구예요??”
전혀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내 일방적인 추측대로라면, 어제 나와 부딪힌 인간 책꽂이는 해랑이의 사서 선생님이 틀림없다.
오늘 아침, 내 인생 첫 시집을 선물한 사람 또한 해랑이의 사서 선생님이고.
짐작만으로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어떤 말도 안 되는 힘에 이끌려 내 맹랑한 추측이 사실이기를.
학교를 오가며 보았을 문구점이 그 사람에게 익숙한 풍경이기를.
해랑이의 정말이 그 사람의 정말과 같은 온도이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