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괴로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 힘든 것 뭐 듣고 싶겠나
기쁜 일도 안 하는 편이다.
나나 즐겁겠지 싶어서
이게 옳은 줄 알았는데 혹시 내가 남 이야기를 들을 그릇이 안 되어 그런 건가 싶어진다.
남도 나 같으려니 내 속 넓이만큼 재단한 것일지 모르겠다.
따뜻한 귀와 가슴을 가지려고 노력하는데 아직 못 미친다.
11월 어느 날
담아둔 마음이 괴로워 걸으러 나섰다가 마침 정류장에 멈추는 버스를 탔다.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시내로 들어가는 노선이라 명동에서 내렸다. 좋아하는 도삭면 집에서 얼얼한 육개장 도삭면에 맥주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대기 줄이 길었다.
혼자 서 있으면 더 쓸쓸할 것 같아 맞은편 백화점 지하 식당가로 갔다. 붐비는 식사 시간 1인 손님은 미안해서 푸드코트를 몇 바퀴 돌았다.
서로 기다리며 눈치 보는 자리들은 다 지나치고 독립된 매장이라 조금 한산한 중국집으로 정했다. 그러고도 들어가지는 못 하고 매장 밖 통로석에 앉았다. 대기석처럼 보여 그랬는지 붐비는 중에도 비어있는 자리였다. 메뉴판을 신중히 보다 짜장면과 튀김만두 두 개를 시켰다.
짜장면을 싹 비우고 남은 만두 하나는 포장을 했다.
어디를 갈까 백화점 밖으로 나왔다가 고민이 뭐였더라 문득 홀가분해져 바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 탔다.
배가 불러 고민도 나른해졌는지 버스 안 승객들의 수다가 귀에 들어왔다.
오던 버스에서는 이어폰으로 소리를 차단하고 창밖 풍경 한 곳만 보며 왔는데 밥 먹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궁금하고 정겹다.
뒷자리 70대로 보이는 여성이 통화 중이다.
날씨, 정치, 건강 등 여러 주제로 옮겨 다니다가 통화 마무리에 "그래요 ~ 들어가요 우리 12월 초에 추워지면 오-바 입고 한번 봅시다~네네~“
날 풀리면 봅시다의 상투적 마무리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날이 궂어도 당신은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라는 고백 같아서 씩 웃었다.
나도 써먹어야지 싶어 적어둔다.
삶이 심심해서 이런 일도 재밌나 싶었는데 젠지세대인 첫째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준다.
매장이 큰 스타벅스에 혼자 갔다가 카운터 앞자리만 남아 앉아 있다 보니 오가는 손님들의 주문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단다.
“할머니 한분이 카운터로 오시더니 따뜻하고 맛있는 거 달라고 해요.
아르바이트생이 메뉴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맛을 설명해드리더라고요.
할머니는 귀 기울여 듣고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먹을 거 없다고 나가셨어요. “
"어머 아르바이트생한테 내가 다 미안하다 그냥 적당한 거 주문하시지 “
아이가 할머니 편을 들어준다.
"그 할머니가 막 휑하니 나가신 게 아니고요 설명을 진지하게 다 들어보시고는 정말 마땅한 음료가 없어서 발길을 돌리신 것 같았어요. “
“아-”
“얼마 후 또 다른 할머니 일행이 오셨는데 이번에는 카페인 없는 거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아까 그 아르바이트생이 또 하나-하나 메뉴를 설명해 줬고요.
할머니는 설명을 들으시며 눈으로는 메뉴를 훑으시다가 ’이건 어때요 ‘하고 쿡 짚으신 게 하필 말차 라테였어요.
착한 아르바이트생은 이것도 티백이라 카페인이 들어있다 하고는 남은 메뉴를 이어서 설명했어요. “
“어머 그 할머니도 그냥 가셨어?”
”아니오 그분은 주문하셨어요.”
“다행이다.”
아이가 아르바이트생이 정말 착한 것 같다고 덧붙이길래 예뻤니?라고 물어보려다 핀잔 들을까 봐 그만두었다.
버스 안 모르는 어른들의 이야기에는 미소 짓는데
엄마께는 늘 주의하실 것만 말씀드렸다.
"엄마 친구분들이랑 카페 가시면 꼭 인원수 대로 시키셔야 돼요"
안다고 하시는데도 덧붙인다.
"커피 몇 잔 시키고 컵 따로 달라 뜨거운 물 따로 달라하시면 안 돼요"
"안 그란다! 근데 진하기는 너무 진해"
"그래도 명수 대로 시켜야 돼요. 자리 값 내야죠."
했던 것이 새삼 죄송하다.
아이가 들려준 할머니 손님 이야기에
카페 안 광경이 그려졌다.
따뜻한 일상이고 그걸 담아 온 아이가 곱다.
앞으로도 할머니들의 평범한 이야기에 미소로 귀 기울이는 사람이길 나도 그러기를
모친의 귀엽고 정겨운 할머니들의 모임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