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3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기, 나 갑상선암이래..'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나는 흔들리는 마음과 목소리를 다잡고 아내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었다.
아내는 일주일전 산부인과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다. 출산 후 1개월이 지나, 병원에서 산모를 대상으로 여러 부위 상태를 점검하는 절차였다. 다른 곳은 다 문제 없었지만, 갑성선 초음파 결과 상당히 큰 혹이 발견됐다고 한다. 크기가 무려 3.5cm. 바로 조직검사를 했는데, 오늘 병원에선 갑상선암이 강력히 의심됐다고 진단한 것이다.
아내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암이라고? 남의 얘긴 줄만 알았는데, 그 한 단어가 가져오는 공포는 꽤 컸다. 다행인 건 이 흉측한 물질이 발견된 부위였다. 인터넷 검색과 가족, 주변인들의 얘기를 통해 알게됐지만, 갑상선암은 30~40대 여성에게 꽤 흔히 나타나는 병이다. 완치율도 95% 이상으로 매우 높고, 말만 무서운 '암'일뿐 실제 질병 자체의 심각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아내는 서둘러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나는 불안해 하는 아내를 오후 내 다독였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장모님과 이모님들, 엄마, 누나까지 친정/시댁 식구들의 걱정과 위로로 아내의 전화기가 쉬지 않았다. 모두 한 목소리였다.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일 없을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축 처진 아내를 끌어안으며, '괜찮다'고 아내와 나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병은 그렇게 지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별탈없이, 단단한 우리 가족을 스쳐갈 것이다. 진정한 아내에게 이런 농담도 보탰다. '우리 도현이 정말 효자 아냐? 도현이 출산 안했으면, 검진도 안했을거고 그럼 자기 병도 몰랐을 거 아냐?' 아내도 피식 웃으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웃자고 한 소리였는데, 내뱉고 보니 또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병원간 사이 아빠랑 단 둘이 지내면서도 아기는 짜증 한 번 없이 잘 지내줬다. 장하다, 내 아들.
가족은 어려운 고비가 찾아올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이제 갓 새 생명을 더한 아들도 엄마의 병 진단을 위로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아는 것 같다. 힘들수록 우리는 더 끈끈하게 뭉칠 것이다. 그게 바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