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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Aug 17. 2022

100일의 '기절'

#18

22/08/04

'100일의 기적'이란 말이 있다. 새벽에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몇 번이고 잠에서 깨는 신생아가 생후 100일을 기점으로 이른바 '통잠'을 잔다는데서 비롯됐다. 3개월 넘게 새벽 토끼잠을 청했던 부모에겐 이보다 더한 '고진감래'가 없다. 나와 아내도 부푼 꿈을 안고 그 기적 같은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오늘 8월 4일, 아들은 생후 100일을 맞았다. 결론부터 말한다. 100일의 기적 대신 우리에게 찾아온 건, 100일의 '기절'이다.


5시간, 6시간 점차 새벽 수면 시간을 늘려온 아들은 오히려 100일에 가까워지며 갓 태어난 신생아 때로 역행했다. 밤 12시, 새벽 2시, 3시, 4시 반, 6시... 한 시간이 멀다하고 '켁켁' 거리며 잠에서 깨는 통에 우리 부부는 새벽에도 여러 번 머리채를 쥐어잡았다. 도대체 왜? 기적같은 성장 대신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은 '불면()'의 고통이 다시금 찾아온 걸까..ㅠ


아들 탄생 100일을 맞은 오늘, 세 식구는 큰 맘 먹고 외출을 감행했다. '고장난 유모차 수리'라는 거창한 명분도 있었지만, 평일 도심 드라이브를 즐기고 한산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부부는 꿈꿨다. 시작은 좋았다. 푹푹 찌는 날씨는 여전했지만,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해가 떠 도심 곳곳의 녹음(陰)이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아기는 출발과 이내 잠들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아내와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출산 전 어느 날과 같은 일상에 빠진 듯했다.


사달은 '카페 데이트'에서 일어났다.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져 유모차 반입이 가능하고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그러니까 '아이 친화적'인 카페를 특별히 찾아 방문했다. 깔끔하게 수리한 유모차에 아들을 태우고 의기양양 입장.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300평이 족히 넘어 보이는 카페에서 아들이 목놓아 울부짓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아내는 번갈아 아기를 달랬다. 혹시나 기저귀가 불편했나?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갈고 나왔지만 울음은 그대로였다. 우리를 향한 카페 곳곳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이고, 갓난 아기 데려온 저 부부 참 안됐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애는 왜 괜히 데리고 나와서 민폐야' 같은 눈빛들.. 결국 33도 찜통 더위에 밖으로 잠시 피신해 아기를 달랬다. 하지만 흐르는 땀을 식히려 카페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울음이 다시 시작됐다. 그러는 사이 카페 직원이 다가와 '아이가 너무 울어서 밖에 나가 달래셔야 겠어요'라는 말을 전달했다.


그렇게 우린 카페에 도착한 지 20분도 안돼 차에 몸을 실었다. 몇 모금 마시지 못한 커피도 그대로 손에 들렸다. 이 카페 빵이 맛있다는데... 빵은 구경도 못하고 차 시동을 걸었다. '아들아, 잠깐만. 아빠 눈물 좀 닦고 출발할게...' 우리의 첫 나들이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100일된 아들과 첫 나들이에 심히 부풀었던 나와 아내는 잔뜩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루가 막을 내렸으면 참.. 처참할 뻔 했다.


다행히 안양천 산책으로 우리는 의미있는 하루를 만회했다. 집에 돌아와 컨디션을 회복한 아들은, 안양천 산책에는 협조적이었다. 아빠 엄마가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하는 동안, 아이는 유모차에 몸을 싣고 잠시 꿈나라를 다녀왔다. '그래, 이렇게라도 도와줘서 고맙다 아들.'


100일을 맞아 기대한 것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고작 100일 아닌가. 어린 아기가 하루 아침에 폭풍 성장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커가는 아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고, 초보 아빠는 다시 다짐했다. 100일의 기적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세 가족에겐 '기적같은 100일'이 있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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