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 보니 옷장 속 긴 옷을 꺼냈다.
가을과 봄의 평균 온도는 비슷하지만 가을은 겨울로 향해가고, 봄은 여름을 향해 간다는 부분이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가을과 봄 둘 중 어느 계절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한다면 두 계절을 다 좋아하지만 봄을 조금 더 좋아하는 거 같다고 말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한 해의 시작과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기분 생동감이 온몸으로 느껴지며 앞으로 나에게 생길일들에 대한 용기와 호기심이 함께 생기 때문이랄까
반면 가을은 한 해의 마무리를 향하는 길목이라 그런지 지나온 매일을 돌아보게 되면서 아쉬운 부분과 또 좋았던 부분을 상기하게 된다. 그 생각들에 잠기다씁쓸함이 입안에 멤돌고,
내가 지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덥던 하루하루가 어느새 바람이 차가워지며 얇은 옷을 꺼내어 입게 하기 찬바람이 불고 가을의 온도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가을이 가지고 오는 아련한 생각에 잠겨버렸다.
지나온 시간들 가운데 가장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당연히 제주도의 봄을 온전히 느꼈던 그 한 달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여름의 끝에 다녀온 강화도를 갔을 때도 전혀 상관없는 제주도가 떠올랐고, 괜스레 사진앨범 스크롤을 올려 지난 사진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 사진뿐만 아니라 그때 사진에 찍히지 않았던 일들도 생각나고 옆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당시엔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더 많이 찍을걸이라는 아쉬운 마음도 조금 생겼다. 역시 어딜 가서 무얼 하든 남는 게 사진 밖에 없단 말을 또 한 번 크게 느꼈다.
사진의 힘이 정말 무서운 것이 추억을 떠오르게 하면서 잊고 지냈던 사람들의 근황이 궁금해지고
끊겼던 연락도 다시 이어지게 만들었다.
"제주도에서 찍었던 사진들 다시 보다가 생각나서 연락했어 잘 지내?"
백이면 백 그들도 제주도에서 함께 지내며 같이 웃었던 시간들이 그립다는 답장이 왔다.
그런 말들이 반가우면서 나만 그리워한 게 아니구나 란 생각이 들며 안심이 됐다.
우리가 함께 했던 에피소드를 하나씩 꺼내는데 그들의 말로 인해 잊고 있었던 부분들의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흐릿했던 기억들이 더욱 또렷해지면서 그리움이 두 배 세배가 되었지만 함께 그리워했기에 외롭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땐 정말 질릴 정도로 얘기하고 놀면서 그땐 노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마음은 사치였다. 사회로 돌아오니 그때만큼 웃을 일도 없고 늘 하루가 너무나 지루하고 돌아가고 싶은 날들이 없다. 그냥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 회사를 떠나는 미래를 그릴뿐.
그래도 그때의 기억 덕분에 짧은 시간이나마 웃을 수 있고, 또다시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며 여행경비를 모을 힘이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 순간의 경험으로 인해 지금 내가 선택한 삶 말고 또 다른 선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실행할 수 있는 용기도 품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함께 한 친구들을 조만간에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들이 서울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보다 함께 했던 즐거운 날들 서로의 기억에서 꺼내고 함께 웃음꽃을 피울 그날들을 기대하고 있다.
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나의 감성을 건드렸고, 추억을 상기시켰고, 인연을 다시 이어지게 만들었다.
가을이 나를 외롭게 했으면서 또 설렘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