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광양회 11화: 사무라이의 복수

"1000년을 기다려도 복수는 달콤하다"

by 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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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5일, 도쿄 라피더스 본사


고이케 아쓰유키 CEO는 40층 사무실 유리창 앞에 서서 도쿄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신주쿠와 롯폰기 일대 빌딩 숲이 석양빛에 붉게 물들고, 멀리 스카이트리가 장엄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정적 속,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과 도시의 미세한 소음이 심장을 두드리는 듯했다.

지진 대비를 위해 설계된 구조 덕분에, 초고층임에도 살짝 흔들리는 창틀이 안정감 있게 진동할 뿐, 공포감은 없었다.

책상 위에는 한국의 코리아 얼라이언스 관련 신문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삼성-SK 연합, 세계를 놀라게 하다.”

“한국, 반도체 패권 도전장.”

“아시아 반도체 지형 대격변.”

고이케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쳤다.

“한국이 앞서나가고 있군.”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40년 전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분노와 한, 그리고 복수심이 스며 있었다.

‘이제야… 드디어 시작이야. 그때 우리가 허물었던 자존심, 무너뜨린 미국의 압력… 모든 걸 되찾을 순간이 왔다.’

심장이 조여 오는 듯한 긴장과, 동시에 모든 것을 바로잡겠다는 단단한 결심이 그의 온몸을 관통했다.

그때, 부사장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사장님, 긴급 이사회 소집하시겠습니까?”

고이케는 창밖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석양빛이 건물 유리창에 부딪히며 눈부신 빛의 선을 그렸다.

"그래야겠어. 그리고..." 고이케가 특별한 파일을 꺼냈다.

‘Project Rising Sun’이라고 굵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드디어 실행할 때가 왔나?”

고이케가 손을 파일 위에 얹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래. 40년 동안 기다렸어. 일본 반도체의 부활을 위해서.”

그 순간, 사무실 안 공기는 묵직하게 조여왔고, 창밖 도쿄의 붉은 석양과 맞물려 역사와 복수가 교차하는 순간임을 느끼게 했다.

고이케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성공한다.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일본의 명예와 자존심, 모두 되찾겠어.’



회상 - 1985년, 일본 반도체 황금기


40년 전, 일본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던 시절.

젊은 엔지니어였던 고이케가 NEC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고이케 군, 우리가 해냈어!" 선배가 흥분하며 달려왔다.

"무엇을요?"

"DRAM 시장에서 인텔을 넘어섰다고! 일본이 세계 1위야!"

연구소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히타치, NEC, 도시바, 후지쯔… 일본 기업들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를 장악한 순간이었다.

“우리의 시대가 왔어!” 동료들이 환호하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러나 고이케의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만 번졌다. 박수 소리와 환호성 속에서도 그의 가슴 한쪽은 묘하게 싸늘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이렇게 빨리 정상에 올랐는데… 정상에서 버틸 힘은 있는 걸까?’

동료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춤추듯 기뻐할 때, 고이케의 귀에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워싱턴에서 들려올 압력,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치적 칼날.

“너무 앞서가면 위험해. 미국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지만, 동료들은 장난처럼 웃어넘겼다.

“걱정 마. 우리 기술력이 세계 최고인걸.”

고이케는 그 웃음을 보며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기술만으로는 지킬 수 없어. 언젠가 이 환호가 비명으로 바뀔지도 몰라.’

그때만 해도 그는 몰랐다. 5년 후, 그 불안이 현실이 되어 모든 것이 무너질 줄은.



회상 - 1990년, 몰락의 시작


1990년, 일미 반도체 협정.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이 굴복한 날이었다.

“25%였던 미국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낮춰야 한다고요?”

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정부 명령입니다. 어쩔 수 없어요.” 관료의 말은 차갑고 단호했다.

고이케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이건 기술 경쟁이 아니라 정치 압력이야! 우리가 땀 흘려 만든 성과를 협정한 줄로 잘라내다니…”

손에 쥔 펜이 부러져버렸다. 그러나 그 이상 소리칠 수 없었다.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그늘 아래 있는 일본이 감히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창밖을 보니, 황금기라 부르던 1980년대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우리는 이룩했는데… 그들은 빼앗아갔다. 기술이 아니라 힘으로.’

그 후 10년 동안 일본 반도체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히타치, NEC, 도시바의 간판은 빛을 잃었고,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TSMC가 치고 올라왔다.

밤마다 고이케는 집무실에 홀로 남아 세계 시장 점유율 그래프를 노려봤다. 붉은 선은 떨어지고, 파란 선과 초록 선은 치솟았다. 손끝이 떨렸다.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을 거야. 일본의 자존심을…”

젊은 고이케의 다짐은 절망 속에서 불타오른 맹세였다.



현재, 라피더스 이사회실


고이케가 Project Rising Sun을 설명하고 있었다.

"여러분, 일본 반도체 부활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대형 스크린에 전략이 표시되었다.


Phase 1: TSMC 기술 흡수

*구마모토 공장을 통한 22/28 나노 기술 완전 습득

*일본 엔지니어들의 집중 교육 (2년 계획)


Phase 2: 독자 기술 개발

*2 나노 기술 자체 개발

*일본 특화 소재 기술과 결합


Phase 3: 역전

*2027년까지 TSMC 추월

*"Made in Japan" 프리미엄 브랜드 구축


회의실 안이 술렁였다. 한 이사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사장님, TSMC가 그렇게 쉽게 핵심 기술을 알려줄까요?”

순간, 고이케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네. 구마모토에서 생산을 하려면, 결국은 우리가 공정을 운영해야 하지. 그 과정 하나하나가, 곧 교과서가 될 걸세.”

다른 이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최신 2 나노는 절대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고이케는 의자를 살짝 뒤로 젖히며 낮게 웃었다.

“최신 기술? 걱정할 필요 없어.”

그는 손을 가방 위로 올렸다. 두꺼운 서류철이 시야에 들어왔다.

표지에는 굵게 새겨진 네 글자.

Project Rising Sun.

“우리에겐 특별한 카드가 있지.”

순간, 회의실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구마모토현 기쿠요 마치, TSMC 일본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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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 법학을 전공| 화가 | 작가 | AI·반도체·기업분석, 사유의 결로 꿰어진 이야기들, 다양한 분야의 통찰을 삶의 층위를 담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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