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사이에 업그레이드되는 차, 월 구독료의 현실
♤ 잠든 사이에 업그레이드되는 차
2015년 10월 어느 날 아침, 테슬라 모델 S 오너들은 깜짝 놀랐다. 전날 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없던 기능이 갑자기 생겨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토파일럿'이었다.
"어? 내 차에 자율주행 기능이 생겼네?"
이것이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OTA(Over-The-Air) 업데이트였다. 스마트폰처럼 WiFi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다운로드하는 것이다. 기존 자동차 업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통적으로 자동차는 "완성품"이었다. 출고되는 순간 성능이 고정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려면 새 차를 사야 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이 모든 상식을 뒤집었다.
"자동차가 아니라 바퀴 달린 컴퓨터를 만드는 거다."
머스크의 이 선언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 실리콘밸리 DNA가 만든 차이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접근법은 기존 자동차 업체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전통 자동차 회사들은 수십 개의 부품업체로부터 각각 다른 시스템을 공급받아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엔진은 A사, 브레이크는 B사, 인포테인먼트는 C사... 이렇게 만들어진 차는 마치 여러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을 억지로 한 컴퓨터에 설치한 것 같았다.
반면 테슬라는 처음부터 통합 설계를 했다. 하나의 중앙 컴퓨터가 모든 것을 제어하는 구조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 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한 것과 같은 접근법이었다.
이 차이는 곧 압도적인 성능 차이로 이어졌다. 다른 전기차들이 스마트폰 앱 하나 제대로 연동하지 못할 때, 테슬라는 넷플릭스를 보고, 게임을 하고, 심지어 차 안에서 화상회의까지 할 수 있었다.
♤ 데이터가 만드는 선순환
하지만 테슬라의 진짜 혁신은 따로 있었다. 바로 데이터 수집과 학습 시스템이었다.
모든 테슬라 차량은 운행 중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 어떤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는지, 어떤 도로에서 속도를 줄이는지, 어떤 날씨에 어떻게 운전하는지... 수백만 대의 테슬라가 24시간 내내 데이터를 모으고 있었다.
이 데이터는 테슬라 본사로 전송되어 AI 학습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학습된 결과는 다시 OTA를 통해 모든 차량으로 배포되었다. 한 대의 테슬라가 학습한 내용을 전 세계 테슬라가 공유하는 것이었다.
"플릿 러닝(Fleet Learning)"이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따라 할 수 없는 테슬라만의 경쟁력이었다.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운행 거리가 늘어날수록 테슬라의 AI는 더 똑똑해졌다.
♤ FSD: 완전자율주행의 꿈과 현실
2016년, 머스크는 또 다른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2017년 말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완전자율주행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FSD(Full Self-Driving)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테슬라는 기존 자동차 업체들과 다른 방식을 택했다. 라이다(LiDAR) 대신 카메라와 AI에만 의존하는 '비전 온리(Vision Only)' 접근법이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웨이모, 크루즈 같은 경쟁사들은 모두 값비싼 라이다 센서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확신했다. "인간도 두 개의 눈으로 운전한다. AI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2021년, 테슬라의 FSD 베타가 실제로 도시 도로에서 자율주행을 시작한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신호등을 인식하고, 좌회전을 하고, 보행자를 피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 구독료의 현실: 숨겨진 비용
하지만 여기서 테슬라 오너들이 마주한 현실적 문제가 있었다. FSD 기능을 사용하려면 별도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번만 내면 되는 옵션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계속 올랐다. 3,000달러에서 시작해서 5,000달러, 8,000달러, 심지어 15,000달러(약 2,000만 원)까지 올랐다.
그러다 2022년부터는 월 구독제가 도입되었다. 월 199달러(약 26만 원). 연간 300만 원이 넘는 비용이었다.
"차값은 5,000만 원인데 자율주행 구독료가 연 300만 원이라고?"
실제로 테슬라를 산 후 이런 현실을 알고 당황하는 오너들이 속출했다. 더구나 FSD는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거나, 이상한 곳에서 멈추는 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숨겨진 비용들이 있었다:
- 프리미엄 커넥티비티: 월 9.99달러 (스트리밍, 위성지도 등)
- 슈퍼차저 충전비: 완전 무료가 아님 (kWh당 400-500원)
- 타이어 교체: 퍼포먼스 모델은 특수 타이어로 비쌈
♤ 수리비의 현실: 애플 생태계와 닮은 꼴
더 큰 문제는 수리비였다. 테슬라는 마치 애플처럼 폐쇄적 생태계를 구축했다. 테슬라 공식 서비스센터에서만 수리가 가능했고, 부품도 테슬라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실제 사례들:
- 앞범퍼 스크래치 수리: 200만 원
- 문짝 교체: 500만 원
- 배터리팩 교체: 3,000만 원
"벤츠나 BMW 수리비보다 더 비싸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더구나 서비스센터가 부족해서 예약도 힘들었다.
한 테슬라 오너는 이렇게 말했다: "차는 좋은데 마치 애플 제품 쓰는 느낌이에요. 성능은 좋지만 종속되는 기분이랄까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가치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테슬라 오너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왜일까?
첫째, 계속 발전하는 경험이었다. 다른 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가지만, 테슬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똑똑해졌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 성능이 향상되고, 사용자 경험이 개선되었다.
둘째, 압도적인 편의성이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차를 미리 시동 걸고, 에어컨을 켜고, 심지어 원격으로 주차까지 할 수 있었다.
셋째, 환경에 대한 가치였다. 비싼 유지비를 내더라도 "지구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 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
2015년, 머스크는 또 다른 깜짝 발표를 했다. 테슬라가 자동차뿐만 아니라 에너지 사업에도 본격 진출한다는 것이었다.
"테슬라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회사입니다."
첫 번째 제품은 파워월(Powerwall)이었다. 가정용 배터리 저장 시스템으로,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저장했다가 밤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제품이었다.
이어서 파워팩(상업용 대용량 배터리), 솔라루프(태양광 지붕타일), 슈퍼차저 네트워크까지... 테슬라는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공급하는 통합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 텍사스 대정 전 사건: 에너지의 힘
2021년 2월, 텍사스에 한파가 몰아쳤다. 전력망이 마비되면서 수백만 가구가 정전에 시달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테슬라 파워월을 설치한 집들은 멀쩡했다. 심지어 이웃집에 전기를 나눠주는 경우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테슬라 차량들이 움직이는 발전소 역할을 한 것이었다.
V2G(Vehicle-to-Grid) 기능으로 차량의 배터리 전력을 집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한 테슬라 오너는 3일 동안 차량 배터리로 집 전체 전력을 공급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깨달았다. 테슬라는 단순한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 회사라는 것을.
♤ 가상발전소의 꿈
테슬라의 에너지 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만 대의 테슬라와 파워월을 연결해 거대한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를 만드는 계획이었다.
낮에는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어 배터리에 저장하고, 밤에는 저장된 전기를 그리드에 판매하는 것이다. 개별 가정이 전력 생산자가 되는 셈이었다.
실제로 호주 남부에서는 5만 가구의 파워월을 연결한 가상발전소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기존 발전소 하나에 맞먹는 용량이었다.
"모든 건물이 발전소가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
머스크의 이 비전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 전력망을 바꾸는 메가팩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은 가정용을 넘어 산업용으로도 확장되었다. 메가팩(Megapack)이라는 대용량 배터리 시스템으로 전력망 안정화에 나선 것이었다.
2021년 캘리포니아에 설치된 빅토리아빌 메가팩은 정전 위기를 막는 역할을 했다.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 저장해 둔 전력을 즉시 공급해 정전을 방지한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수익성이었다. 전력이 싸질 때 사서 저장해 두었다가 비쌀 때 팔면 되니까, 메가팩 자체가 돈을 버는 자산이 되었다.
♤ 석유회사들의 위기감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이 본격화되자 기존 에너지 업체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석유회사들의 위기감이 컸다.
쉘(Shell)은 전기차 충전 사업에 뛰어들었고, BP는 울트라패스트 충전소를 구축했다. 엑손모빌도 탄소중립 기술에 투자를 늘렸다.
하지만 테슬라는 이미 수년 앞서 나가고 있었다. 슈퍼차저 네트워크는 세계 최대 규모였고, 배터리 기술도 압도적이었다.
"10년 후에는 석유회사가 배터리 회사가 될지도 모른다."
에너지 업계의 한 전문가의 말이었다.
♤ AI와 로봇: 다음 도전
2021년, 머스크는 또 다른 충격적 발표를 했다.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옵티머스(Optimus)"라고 명명된 이 로봇은 테슬라의 AI 기술을 활용해 인간을 대신해 반복 작업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테슬라 공장에서 사용하고, 나중에는 일반 가정에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표했다. "자동차 회사가 로봇까지?"
하지만 머스크의 논리는 명확했다.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은 AI다. 그 AI는 로봇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실제로 테슬라의 FSD 기술은 복잡한 실시간 판단을 요구하는 고난도 AI 기술이었다. 이를 로봇에 적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 소프트웨어가 만든 새로운 게임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혁명은 자동차 산업의 게임 룰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기존에는 '한 번 사면 끝'이었다면, 이제는 '계속 발전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기존에는 '이동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연결된 디바이스'가 되었다. 기존에는 '기계'였다면, 이제는 '서비스'가 되었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테슬라가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전기차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새로운 모빌리티의 미래였다.
하지만 혁신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높은 구독료, 비싼 수리비, 폐쇄적 생태계... 이런 단점들을 감수할 만큼 테슬라의 가치가 있을까?
그 답은 경쟁에서 나올 것이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이 테슬라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니면 테슬라가 계속 앞서갈까? 그리고 머스크라는 변수는 테슬라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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