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반 스피겔과 '인간 중심 테크'의 조용한 반란
"기억보다 순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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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거꾸로 본 청년
2011년, 스탠퍼드 대학 기숙사.
모두가 페이스북에 완벽하게 보정된 사진을 올리고, 트위터에 영원히 남을 말들을 쏟아내던 시절. 한 청년은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가 보내는 모든 것이 영원히 남아야 하지?"
디지털 세상은 모든 것을 기억했다. 10년 전에 올린 민망한 사진, 5년 전에 남긴 후회스러운 댓글.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에 붙잡혀 살았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우리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때로는 공격하는 무기가 됐다.
애반 스피겔(Evan Spiegel)은 그 순간, 세상을 거꾸로 보기 시작했다.
"사라지는 사진이야말로 진짜 인간의 소통이다."
그렇게 스냅챗(Snapchat)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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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이 아니라 순간
실리콘밸리의 거의 모든 회사들은 "더 많은 데이터"를 외쳤다. 사용자의 행동을 추적하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이 곧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스피겔은 반대로 걸었다.
"우리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최소한만 수집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표는 감시가 아니라 소통이니까요."
스냅챗에는 "좋아요" 숫자가 없다. 누가 몇 번 봤는지 과시할 수도 없다. 24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이건 단순한 기능이 아니었다. "철학"이었다.
인스타그램이 "나의 최고의 순간"을 기록하는 앨범이라면, 스냅챗은 "지금 이 순간"을 나누는 대화다.
사진을 찍는다. 친구에게 보낸다. 10초 후 사라진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인간이 원래 소통하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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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보다 인간을 먼저 본 CEO
2014년,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스냅챗 인수를 제안했다. 금액은 30억 달러.
당시 스냅챗의 매출은 거의 없었다. 23살의 청년 CEO에게 30억 달러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다.
모두가 "당연히 팔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반 스피겔은 거절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만든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진짜로 소통하는 방법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월스트리트는 그를 "오만한 청년"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스피겔에게 기술은 목적이 아니었다. "수단"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말한다.
"우리는 인간을 기술에 맞추는 게 아니라, 기술을 인간에 맞추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스냅챗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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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이라는 철학: 현실을 대체하지 않고 확장한다
2016년, 스피겔은 스냅챗을 "카메라 회사"로 재정의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SNS 회사가 왜 카메라 회사?"
하지만 그에게 카메라는 단순한 렌즈가 아니었다.
"카메라는 인간의 확장된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 그게 증강현실(AR)이었다.
스피겔은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명확히 구분한다.
"VR은 현실을 벗어나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AR은 현실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기술이죠."
메타가 VR 헤드셋으로 가상세계를 만들 때, 스냅챗은 AR 렌즈로 현실을 아름답게 꾸몄다.
친구 얼굴에 강아지 귀를 씌우고, 하늘에 무지개를 그려 넣는 것. 겉보기엔 재미있는 필터였지만, 그 안에는 깊은 철학이 있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현실 위에 마법을 더한다."
그리고 2024년, 스피겔은 마침내 AR 안경 'Spectacles 5세대'를 공개했다. 11년간 3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은 프로젝트.
2026년, 일반 소비자용 'Specs'가 출시된다.
메타보다 1년 빠르다. 애플보다 2년 빠르다.
"우리는 스마트폰 이후의 세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면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는 대신, 세상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미래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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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것은 무능이 아니라 철학이다
스냅챗은 느리다.
메타처럼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하지 않는다. 구글처럼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돌리지 않는다.
2024년 기준, 스냅챗의 연 매출은 54억 달러. 메타의 1,600억 달러에 비하면 30분의 1도 안 된다.
그리고 여전히 적자다. 11년이 지났는데도.
월가는 계속 묻는다. "언제 흑자 전환하나요?" "경쟁에서 이길 수 있나요?"
하지만 스피겔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단기 수익보다 장기 가치를 봅니다. Z세대는 우리를 믿고, 매일 4억 5천만 명이 스냅챗을 사용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지표입니다."
실제로 미국 13-24세의 90%가 스냅챗을 쓴다. 인스타그램도 쓰고, 틱톡도 보지만, 스냅챗만큼은 절대 지우지 않는다.
왜?
스냅챗은 유일하게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걸 안다. 그래서 스냅챗에게 메타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준다. 매출은 30분의 1이지만, PER은 2배다.
투자자들은 스피겔의 느림이 무능이 아니라 철학임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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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압박하지 않는 기술
2023년, 스피겔은 AI 챗봇 'My AI'를 출시했다.
다른 회사들이 AI로 사용자 데이터를 긁어모을 때, 스냅챗은 다르게 접근했다.
"My AI는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조언을 구하고, 아이디어를 얻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죠."
My AI는 광고를 강요하지 않는다. 사용자를 추적하지 않는다. 그냥 대화한다.
그리고 5억 명이 100억 개의 메시지를 My AI에게 보냈다.
스피겔은 말한다.
"기술은 인간을 압박해선 안 됩니다. 기술이 인간을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 그 기술은 이미 영혼을 잃은 거예요."
이게 스냅챗이 광고를 최소화하고, 알림을 자제하고,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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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반란가, 에반 스피겔
실리콘밸리는 시끄럽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사서 매일 논란을 만든다.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버스를 외치며 수조 원을 쏟아붓는다. 샘 알트먼은 AGI(인공일반지능)를 약속한다.
그들은 모두 "세상을 지배하겠다"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에반 스피겔은 조용하다.
그는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 한다.
"저는 기술이 사람들의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지배하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거죠."
그가 꿈꾸는 미래는 거창하지 않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만나, AR 안경으로 추억을 공유한다. 여행지에서 렌즈를 통해 실시간 번역을 보고, 맛집 정보를 띄운다. 집에서 친구와 같은 AR 게임을 하며 웃는다.
그냥, 일상.
화려하지 않다. 혁명적이지 않다. 하지만 따뜻하다.
그게 스피겔이 만들고 싶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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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지만 반드시 닿는 진심
2017년 상장 당시, 스냅챗 주가는 $17이었다. 2021년, $83까지 올랐다.
그리고 2022년, $5까지 폭락했다.
모두가 "스냅챗은 끝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스냅챗은 여전히 살아있다. 주가는 $8.5. 여전히 고점 대비 -90%지만, 죽지 않았다.
DAU는 4억 5천만. 전년 대비 +9%.
Snapchat+ 구독자는 1,500만. 전년 대비 +75%.
AR 안경 Specs는 2026년 출시 예정.
느리지만, 멈추지 않았다.
에반 스피겔은 2024년 주주 서한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시장의 단기 압박보다, 사용자의 장기 신뢰를 선택합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보다, 올바르게 성장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그의 철학이다.
월가는 그를 비판한다. "너무 느리다." "수익성이 없다." "경쟁에서 밀린다."
하지만 Z세대는 그를 믿는다. 매일 4억 5천만 명이 스냅챗을 연다.
왜?
에반 스피겔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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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짐의 미학
10초 후 사라지는 사진.
그게 스냅챗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기능이 아니었다. 삶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록하려 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완벽한 사진, 링크드인에 남을 빛나는 경력, 유튜브에 영원히 저장될 영상.
하지만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기록되지 않는다.
친구와 나눈 웃음. 연인과 본 노을. 가족과 먹은 저녁.
그 순간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지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에반 스피겔은 그걸 안다.
"기억보다 순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라지는 사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철학으로 11년을 버텼다.
메타처럼 거대하진 않지만, 틱톡처럼 중독적이진 않지만, 스냅챗은 인간적이다.
그게 에반 스피겔이 만든 사라짐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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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AI 시대에 잃지 말아야 할 것
AI는 빠르다. 너무 빠르다.
ChatGPT는 1억 유저를 2개월 만에 모았다. 미드저니는 상상을 1초 만에 그림으로 바꾼다.
세상은 점점 빨라진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은 여전히 느리다.
사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우정을 쌓는 데 시간이 걸린다. 신뢰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
에반 스피겔은 그 느림을 존중한다.
그는 AI 시대에도 "인간의 속도"를 지키려 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보다,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진짜 가치를 만드는 것.
세상을 지배하는 것보다, 사람들 곁에 머무는 것.
그게 에반 스피겔의 철학이다.
느리지만 반드시 닿는 진심.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인간의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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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 예고
이제 스냅챗이라는 기업을 속속들이 파헤쳐보자.
- 1화: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 - 스냅챗의 정체성
- 2화: AR 세상을 만드는 회사 - 비즈니스 모델
- 3화: 스냅챗의 진짜 가치 - 투자 판단
에반 스피겔의 철학이, 회사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그리고 그게 투자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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