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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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초의 철학
2011년, 스탠퍼드 대학 기숙사.
에반 스피겔은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왜 우리가 보내는 모든 사진이 영원히 남아야 하지?"
페이스북에 올린 민망한 사진, 트위터에 남긴 흑역사 발언들. 디지털 세상은 모든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건 때로 우리를 옭아맸다.
스피겔의 답은 단순했다.
"사라지게 만들자."
그렇게 스냅챗이 태어났다. 사진을 보내면 10초 후 사라지는 앱. 당시 사람들은 비웃었다. "누가 사라지는 메시지를 보내? 그냥 카톡 쓰지."
하지만 2025년 현재, 스냅챗은 하루 4억 5천만 명이 사용하는 플랫폼이 됐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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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하지 않아서 진짜다
인스타그램을 열어보자.
완벽하게 보정된 셀카, 멋진 레스토랑 사진, 여행지 풍경. 모두가 자신의 "최고의 순간"만 보여준다. "나 이렇게 멋지게 살아!"라고 외치는 무대다.
틱톡은 어떤가?
중독적인 숏폼, 바이럴 챌린지, 완벽하게 편집된 15초 영상들. 알고리즘은 당신을 끝없이 스크롤하게 만든다. 멈출 수가 없다.
그럼 스냅챗은?
스냅챗에는 "좋아요" 숫자가 없다. "팔로워 수" 경쟁도 없다. 그냥 친구들과 지금 이 순간을 공유할 뿐이다.
침대에 누워서 찍은 맨얼굴 셀카, 점심으로 먹은 라면 사진, 심심해서 찍은 하늘.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다. 24시간 뒤면 사라지니까.
2023년 UCLA 연구에 따르면, Z세대는 스냅챗을 "가장 진솔한 SNS"로 꼽았다. 인스타는 "과시용", 틱톡은 "킬링타임용", 하지만 스냅챗은 "진짜 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답했다.
이게 스냅챗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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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세대는 왜 스냅챗을 떠나지 않나?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하다.
미국 13-24세의 90%가 스냅챗을 사용한다.
인스타그램도 쓰고, 틱톡도 본다. 하지만 스냅챗은 절대 지우지 않는다.
왜?
1. 친구들과의 사적인 공간
스냅챗의 핵심은 1대 1 메시지와 작은 그룹 채팅이다.
공개 타임라인이 아니라, 나와 내 친구들만의 공간이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회사 상사도 없는 곳. 오직 내 또래만 있는 곳.
Z세대에게 이건 엄청난 가치다. 인스타그램은 이미 "엄마도 보는 SNS"가 됐다. 틱톡은 전 세계가 보는 무대다.
스냅챗은? 오직 내 친구들만.
2. Snap Map: 친구가 지금 어디 있지?
스냅챗의 Snap Map 기능은 천재적이다.
지도를 열면 친구들의 실시간 위치가 보인다. "아, 지훈이 지금 강남역에 있네?" 그럼 바로 메시지. "야 나도 거기야, 만날래?"
즉흥적인 만남의 도구.
인스타그램은 "어제 여기 갔었어"를 보여주지만, 스냅챗은 "지금 여기 있어"를 공유한다.
현재 Snap Map 사용자는 2억 5천만 명이상.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Z세대를 묶어둔다.
3. AR 필터: 재미는 덤
토끼 귀 필터, 얼굴 바꾸기, 나이 변환... 스냅챗의 AR 렌즈는 그냥 재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상의 일부가 됐다.
친구에게 메시지 보낼 때 그냥 내 얼굴? 아니, 강아지 필터 씌워서 보낸다. 이게 자연스럽다.
매일 3억 명이 스냅챗의 AR 기능을 사용한다. 이건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스냅챗의 언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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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 구도: 왜 스냅챗은 안 죽었나?
솔직히 말하자. 스냅챗은 여러 번 죽을 뻔했다.
2016년: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베끼기
스냅챗이 만든 "스토리" 기능(24시간 후 사라지는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이 그대로 복사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대놓고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베껴야지."
결과는? 인스타그램 스토리 사용자가 스냅챗을 넘어섰다. 많은 전문가들이 "스냅챗은 끝났다"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스냅챗은 살아남았다.
왜?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공개 방송"이지만, 스냅챗 스토리는 "친구들과의 공유"이기 때문이다. 용도가 달랐다.
2020년: 틱톡의 폭발적 성장
숏폼 비디오의 왕, 틱톡이 세상을 점령했다.
스냅챗도 급하게 "Spotlight"라는 숏폼 기능을 만들었다. 하지만 틱톡의 알고리즘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스냅챗은 살아남았다.
왜? 틱톡은 "바이럴을 노리는 크리에이터 플랫폼"이고, 스냅챗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경쟁 무대가 달랐다.
스냅챗은 인스타그램, 틱톡과 정면 승부하지 않는다.
대신 "친구들과 진짜로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지킨다.
그리고 이게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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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2억 유저의 의미: 틱톡이 없는 세상
2020년 6월, 인도 정부는 틱톡을 금지했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 이후, 안보 이유로 중국 앱 59개를 차단한 것이다. 당시 인도는 틱톡 사용자가 2억 명이었다.
세계 최대 시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누가 채웠을까?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물론 이들도 성장했다.
하지만 가장 극적으로 성장한 건 스냅챗이었다.
* 숫자로 보는 인도 시장
- 인도 스냅챗 유저: 2억 200만 명 (2024년 기준)
- 전 세계 스냅챗 유저의 36%가 인도인
- 2위인 미국(1억 600만)보다 2배 많다
더 놀라운 건 성장 속도다.
2025년 들어서만:
- Spotlight 게시물 4배 증가 (전년 대비)
- 콘텐츠 시청 시간 2배 증가
- Snap Stars(크리에이터) 수 1.5배 성장
틱톡이 사라진 자리에서, 스냅챗은 단순한 메신저를 넘어서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 왜 하필 스냅챗이었나?
인도 Z세대에게 스냅챗은 "서양 스타일의 쿨한 앱"이었다.
인스타그램은 이미 부모 세대도 쓰고, 페이스북은 "어르신 앱"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스냅챗은? 친구들만 쓰는, 트렌디한 앱.
거기에 AR 필터가 재미있고, 사라지는 메시지가 안전하게 느껴졌다.
틱톡 금지 이후, 인도의 10대들은 스냅챗으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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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냅챗의 본질: 기록이 아니라 순간
결국 스냅챗은 무엇인가?
순간을 공유하는 앱.
인스타그램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 릴"을 만들고, 틱톡은 "바이럴 영상을 찍게" 만든다.
하지만 스냅챗은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친구와 나눈다.
영원히 남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
이 철학은 단순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강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그렇게 소통하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서 얘기하면, 그 대화는 사라진다. 녹음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더 편하고, 더 진솔하다.
스냅챗은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의 자연스러움"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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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스냅챗은 특별한가?
네, 특별합니다.
스냅챗은 메타나 틱톡처럼 거대하진 않다. 하지만 대체 불가능하다.
Z세대에게 스냅챗은 "친구들과 진짜로 연결되는 곳"이다. 인스타그램을 지워도, 틱톡을 지워도, 스냅챗만큼은 남겨둔다.
인도 2억 유저는 이 철학이 문화를 초월한다는 증거다. 틱톡이 사라진 시장에서, 스냅챗은 단순히 빈자리를 채운 게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증명"했다.
물론 질문은 남는다.
"4억 5천만 명이 매일 쓴다는데, 왜 이 회사는 돈을 못 벌까?"
"AR에 수천억을 쏟아붓는데, 그게 정말 미래일까?"
"투자자로서, 이 회사를 믿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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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2화에서는 스냅챗의 비즈니스 모델을 해부한다.
"AR 세상을 만드는 회사"
- 광고 vs 구독 vs AR: 돈은 어디서 나오나?
- Spectacles(AR 안경)에 올인하는 이유
- My AI 챗봇의 전략적 의미
- 적자인데도 투자자들이 기다리는 이유
스냅챗이 꿈꾸는 미래는 무엇이고, 그 미래가 정말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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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기업 이해와 학습을 위한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