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17
영화 ‘D.P’를 보면서 아직도 군대가 저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나 아직도 어딘가에는 부조리한 일들이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군대 생활은 지나고 보니 영화보다 즐거웠다.
군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승진이었다. 세월과 맞바꿔서 얻은 것이 승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의 부반장, 반장 그리고 회장은 제외하겠다. 엄마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으셨고, 나 역시 하는 놈만 늘 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흔히 승진이라고 하는 것이 시작된 곳은 군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인생은 승진의 역사이다.
군대에서 이병, 일병, 상병 그리고 병장으로 승진한 후 제대하였다. 물론 군대에 말뚝 박으면 더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군인 체질이 아니다. 대대장님은 가끔 나에게 말뚝 박으라고 권유하곤 했었다. 나는 행정병이었는데 대대장님께 커피를 타 드리는 일도 일과의 하나였다. 그때 그 커피가 맛있으셨나 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였다. 사원, 주임, 대리, 과장 그리고 차장까지 승진한 후 회사를 떠났다. 회사에서의 승진은 초조와 불안을 맞서야 하는 피똥 싸는 일이었다. 어렵게 학교로 와서 시간강사, 조교수, 부교수 그리고 정교수가 되었다. 학교에서의 승진도 쓰레기들과 싸워야 하는 힘겨운 여정이었다. 이제 어디로 더 올라가야 하는지 궁금하다. 계속 올라가다 보면 천국에 닿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오르기만 하다가 인생 오십 년이 흘렀다.
사회생활에서의 승진은 시험도 보고 실적도 필요하며 때로는 아부도 필요하였다. 그러나 군대에서의 승진은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하였다. 낮에는 행정병으로 일했고 밤에는 고참의 집사(執事)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취침 시간만 되면 선임은 나를 깨워 화장실로 데려갔다. 선임은 고참의 전투화가 깨끗하게 닦여 있지 않다는 둥, 내무반 침상의 걸레질이 개판이라는 둥, 이불의 각이 잡혀있지 않다는 둥 지적하며 괴롭혔다. 가끔은 군대 복무지침 등 외워야 할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카투사(KATUSA)로 복무했던 직장 동료는 밤마다 화장실에 끌려가 영어 단어를 외우지 못하면 맞았다고 했다. 똑같은 군대 생활인데 누구는 청소 못 한다고 혼나고, 누구는 영어 단어 못 외운다고 혼났다.
여하간 군대의 시계는 돌아갔고 때가 되면 승진했다. 이병에서 일병으로의 승진은 얼떨결에 되었고, 상병에서 병장으로의 승진은 대접받으며 점잖게 되었다. 그러나 일병에서 상병으로의 승진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며 고참들이 짓궂게 굴었다. 승진을 위해 내무반 고참들의 피와 땀이 담긴 축배(祝杯)를 마셔야 했다. 축배는 세숫대야에 담긴 물이었다. 고참들은 후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그 물에 하나씩 무언가를 넣었다. 그 종류는 스킨, 로션, 발가락 사이의 먼지, 겨드랑이털 그리고 먹다 남은 술 등 다양하였다. 특히 취사병 고참은 케첩, 마요네즈 그리고 식초 등 갖은양념을 섞은 마법의 소스를 넣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축배를 마시고 승진이나 제대를 못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하나하나가 모두 추억이다.
사실 나는 운(運)이 좋아 좋은 고참들을 만났다. 관사 관리병 고참은 주말이면 몰래 목욕탕에서 삼겹살을 구워주었고, 취사병 고참은 저녁마다 건빵을 튀겨 내무반으로 가져왔다. 같은 고향이라고 살갑게 대해 주던 고참은 휴가 때도 밖에서 만났다. 지금 그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세월이 지나서야 누군가와 함께 3년을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찰나(刹那)였다. 살면서 한 번쯤 마주칠 것 같던 인연들이 지나고 나니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머물러 있는 줄 알았던 청춘이 삼십 년 전의 일이 되었다. 군대 승진은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인생의 추억이기에 더 소중하고 그립다. 내무반에서 함께 했던 그들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