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19
대부분 한국 남자는 군대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갔다 오라고 하면 죽어도 다시 가기 싫은 곳이 군대일 것이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군대를 면제받은 친구는 신의 자식이고 만기까지 꾹꾹 채워 제대한 친구는 어둠의 자식이라고 불렀겠는가?
막 제대하고 돌아본 군대 생활은 기억 속에 지우고 싶은 공허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군대 생활이 웃으며 농담할 수 있는 안줏거리가 되었다. 나는 제대한 후에도 한동안 군대에 다시 가는 악몽을 꾸었다. 생각해 보면 군대는 내 젊음을 원했던 것 같다. 이제는 군대가 나이 든 나를 꿈속에서조차 찾지 않는다. 세월은 그렇게 지우고 싶던 군대 생활을 머릿속에서 지워주었다. 그러나 문득문득 군대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세월은 잔인하게도 잘해줬던 선임병의 이름과 얼굴은 기억에서 앗아가고 못되게 굴던 선임병의 이름과 얼굴은 남겨 놓았다. 우리는 좋은 기억을 쉽게 잃어버려 늘 불행하다고 착각하나 보다.
며칠 전 책상 깊은 곳에서 먼지 쌓인 수양록을 발견하였다. 삼십 년 만에 넘겨지는 수양록은 ‘쩍’하는 소리와 함께 벌어졌다. 그때는 훈련소에서 수양록이라는 것을 써야 했다. 수양할 것도 없던 나이에 매일 일기를 써서 구 대장에게 결재받았다. 빛바랜 종이의 오른쪽 위에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구 대장의 서명이 남아 있다. 구 대장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수양록에는 훌륭한 군인이 되겠다는 다짐뿐이다.
겨울이 지난 3월이었고 남쪽 지방이라 춥지 않을 줄 알았다. 훈련소까지 따라와 배웅해 준 친구들이 있었는데 누구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정말 소중한 친구들인데 세월 속 어딘가로 묻혀버렸다. 입소 첫날부터 걸린 감기와 때늦은 폭설은 내 마음을 더욱더 얼어붙게 하였다.
1992년 3월 12일 목요일 6시에 기상했다. 게을렀던 몸뚱이가 이젠 이른 기상 시간에 익숙해졌다. 아침 구보로 새벽 공기를 가른다. 아침 공기는 상쾌할 뿐 춥지 않았다. 봄은 벌써 곁에 다가와 있었다. 7시 20분쯤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20분쯤 교육장에 갔다. 겨울의 흔적을 흙먼지 날리는 연병장에 털어버리고 군인의 참모습으로 도약해야겠다.
1992년 3월 18일 수요일 눈이 왔다. 아직 겨울은 우리를 놔주지 않는다. 비로 바뀐 눈은 몸을 몹시 움츠러들게 한다. 오전에 방독면 착용 및 휴대 방법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살을 에는 비수 같은 빗방울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부모님이 생각난다.
1992년 4월 9일 목요일 화생방 교육이 있었다. 가스실에 들어가 방독면을 벗고 몇 분을 버텨야 했다. 먼저 들어갔던 1중대 훈련병은 맵기가 최루탄의 10배라며 겁을 줬다. 가스실에서 못 참고 나가는 훈련병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전원 다시 가스 체험을 해야 한다. 가스실에 들어가니 처음에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몸에 난 모든 구멍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그리고 땀.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1992년 4월 15일 수요일 훈련소 퇴소식이 있는 날이다. 월급으로 6,790원을 받았다. 아버지께서 이 먼 곳까지 오셔서 감사했다.
훈련소에서 내 옆에 잤었던 그 친구가 생각난다. 나보다 두 살 더 많았지만 같은 동기라서 반말했다. 그래도 내가 동생이라고 생각했는지 짧은 기간에 나를 살폈다. 그는 훈련소에 직업군인인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가끔 그 친구로부터 초콜릿을 받곤 했다. 짬밥에 절어있던 훈련병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초콜릿이었다. 그는 초콜릿을 내무반 천장의 벌어진 틈에 숨겨놓았다. 취침을 위해 소등되면 몰래 일어나 그 초콜릿을 나에게도 나눠주었다. 그는 나와 너무도 짧은 인연이었지만 강렬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는 벌써 오십 대 중반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기를 바란다. 인생은 모든 사람을 마음속에 품기에는 너무도 짧다. 나를 스쳐 간 모든 분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다 가기를 기원한다.
지나고 보니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내 곁에 호인(好人)이 있었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것이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이제 나도 누군가의 호인이 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나 돌아본다. 굳이 나를 기억해 내지 못해도 누군가의 인생에 호인이 되고 싶다. 그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인생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에 용기와 희망이 될 수 있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