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이유

청춘 20

by 박범진 작가

자유시간은 말 그대로 자유시간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자유시간은 힘들게 일해야 하는 시간보다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이 모두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한 심리학자의 얘기를 들어 보니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왜 불안함을 느낄까? 그것은 뇌에 화석처럼 박혀 있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위키백과는 고정관념을 어떤 집단이나 사회적 범주 구성원들의 전형적 특징에 관한 신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신념은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뇌는 백지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뇌에 무언가가 자꾸 주입되면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뇌는 그 고정관념대로 우리를 움직이고 생각하게 만든다. 즉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불안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정관념은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니 부모의 영향이 클 것이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어렸을 때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을 주입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네가 장남이니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끼고 저축하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한다.”


이런 말들이 나의 뇌에 주입되면서 고정관념이 생긴 것이다. 그 고정관념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대부분 부모는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라고 채근한다. 어른이 되어 보니 그때의 아이들은 부모의 걱정과 달리 어딘가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잘살고 있다.


내가 이런 불안을 느끼는 것은 나이를 먹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다.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산에 설치된 확성기에서는 아침마다 새마을운동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를 들으면 얼른 일어나 일해야 할 것 같았고, 늦잠을 자면 죄인이 되는 것 같았다. 또한 저녁에 국기 하강식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를 들으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멈춰 서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국심이 없는 죄인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여하간 그때는 열심히 부지런히 살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는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보낸 나의 뇌에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고정관념이 생겨났다. 그래서 가끔의 여유시간에도 ‘내가 이렇게 있어도 되나?’ 하며 자꾸 나 자신을 괴롭힌다. 가만히 있으면 경쟁자들이 나를 치고 올라올 것 같았고, 경쟁자가 나를 앞지르면 나는 영원히 패배자가 될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나의 불안감은 하나의 정신병일지도 모른다. 요즘 MZ 세대들은 내가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는 그런 나의 불안감을 공감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도 나와 같은 시절을 보냈기에 그들에게 죄책감의 주문을 걸어놨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여전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행동을 자세히 뜯어보면 여유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기타도 치고 글도 쓰며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불안해하는 이유는 그 일이 돈이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열심히 부지런히 해야 하는 일은 모두 돈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의미 없는 일로 인식되어 버린다. 그래서 놀면서 돈만 쓰면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미친 듯이 돈이 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을 심어줄 보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전자의 방법은 고정관념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불안하지 않다. 그러나 후자는 고정관념을 부정하고 돈이 되지 않는 일에도 의미를 부여할 보상을 찾아야 한다. 그 보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을 체력을 회복하는 중요한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인생에 가장 행복한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얻게 된 고정관념을 의심하지 않고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불안해 할 것이다. 요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뒤집어 내가 보낸 시간 속에 내가 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행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 하루도 내 인생에서 의미 없었던 날은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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