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만나 다행인 이유

청춘 22

by 박범진 작가

군대에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그리고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 잊지 못할 사람은 단연코 C 병장이다. C 병장은 서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시골 촌놈인 나보다 세상 이치(理致)에 더 빠삭했다.

어느 날 C 병장은 내무반이 삭막하다며 오디오를 사자고 제안하였다. 내무반에는 최고 고참인 C 병장의 뜻을 거스를 자가 없었다. 1992년에 병장 월급은 10,900원 정도였고, 이병은 7,800원이었다. 그때 당시 스테레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사려면 못해도 5만 원 이상은 주어야 했다. 그는 내무반원에게서 10만 원 이상을 걷어 갔지만 돌아온 것은 5만 원 정도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였다. 그마저도 그가 제대할 때 함께 사라졌다.

한번은 내무반에서 먹고 자는 것도 인연인데 기념 반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몇천 원씩 내면 한 달에 한 명씩 기념 반지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반지는 자기가 휴가를 갔다 올 때 가게에서 만들어 오겠다고 했다. 그다음 달부터 C 병장은 휴가를 갔다 올 때마다 반지를 들고 왔다. 반지는 굵기도 그렇지만 함량이 미달인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따질 수 없었다.


또 한번은 크리스마스 때였다. C 병장은 내무반 분위기를 위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자고 했다. 그리고 후임병들에게 장교 테니스장에 있는 전나무를 잘라 오라고 시켰다. 걸리면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고 했다. 점호가 끝나고 후임병들은 몰래 테니스장으로 가서 전나무를 베어 왔다. 며칠 후 테니스장을 둘러보던 선임하사는 윗부분이 없어진 전나무를 보고 몹시 화를 냈다. 또 며칠 후 내무반에 들른 선임하사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아보니 책임지겠다는 놈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제명대로 못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대꾸하면 하극상(下剋上)이라고 몰아붙이던 C 병장은 군대 체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C 병장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대하고 나도 여전히 그런 인간을 주변에서 본다. 소도둑이 되었을지 모를 C 병장을 차라리 군대에서 만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2001년 6월 27일 수요일 올해 7년 차 예비군 훈련을 마쳤다. 나의 군대 생활은 오전 6시 반에 기상하여 오후 6시에 퇴근하는 회사원 생활과 같았다. 어떻게 똑같은 일을 31개월하고도 15일을 더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시간은 항상 제자리에 있다는 착각 속에 3년이 지나갔다. 병장 말년에는 북한 김일성의 사망으로 전군이 전시 태세에 들어갔었다. 제대가 며칠 안 남은 나에게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제대하는 전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벅찬 감정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부대 정문을 나섰다.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돌아서면 졸병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 인생에서 그들의 기억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벌써 일곱 해나 지나 예비군 훈련도 마치고, 민방위로 편성되었다. 이제는 군복을 입을 일도 없어서 기쁘다. 그러나 그만큼 멀어져 간 젊음에 아쉬움이 밀려온다.


또 한 번의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벌써 오십을 넘었다. 바보같이 가만히 있다고 나를 그렇게 대해도 되는 줄 알던 인간들이 뇌리를 스친다. 그들과 죽도록 싸우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안다. 그러나 세월은 나에게서 젊음을 가져갔지만, 못돼먹은 인간들을 피할 수 있는 혜안(慧安)을 주었다. 이제는 싫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단단한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지나간 기억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세월은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찾아낼 힘과 나쁜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어 낼 힘을 주었다. 우리는 그 힘으로 남은 인생을 지나온 인생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때 만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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