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가 행운인 이유

청춘 23

by 박범진 작가

지금 이 자리가 행운인 이유는 나보다 훨씬 더 고생하고 훨씬 더 노력했던 사람들이 꿈꿔온 자리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가 당연해 보인다면 보잘것없는 소유물이 되지만, 지금 이 자리가 누군가의 처절한 꿈이라면 믿기 힘든 행운이 된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감사하지 못해서 불행한 것이다.


경기 불황으로 힘들다지만 막상 거리를 나가보면 술집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백화점은 불야성을 이루고 공항은 관광객들로 미어터진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돈으로 이렇게 돌아다니는지 궁금하다. 아마 답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돈 많은 사람이 이곳저곳 돈을 쓰며 돌아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돈 없는 사람이 대출받아 이곳저곳 돈을 쓰며 돌아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만 해도 사람들은 빚을 지며 소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한산했고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직장인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은 대우증권을 다니다가 구조조정으로 그만두고 목포의 한 대학교에 직원으로 근무하셨다. 그분은 교수의 꿈을 위해 매주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다니셨다. 그분이 지출한 교통비만 해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당시 대우증권은 증권사관학교라고 불릴 만큼 증권맨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했던 회사였다. 더구나 그분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S대 출신이다. 그러나 S대 출신도 외환위기의 파고(波高)를 넘지는 못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그분은 가끔 삼겹살과 소주를 사주며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그분과 연락이 끊겼다. 그때 당시 그분의 나이가 사십 대로 보였으니 지금은 육십 대가 넘었을 것이다. 이제 인생의 뒤안길을 바라보며 노후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질곡(桎梏)의 세월을 편안하게 보내셨는지 궁금하다.


나는 증권회사를 거쳐 대학교로 왔다. 그때의 그분도 외환위기를 겪었고, 나 역시 외환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나는 운 좋게도 외환위기를 정통으로 얻어맞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분은 진정 원하는 꿈을 이루셨는지 궁금하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렀고 그분의 꿈은 빛바랜 사진처럼 보인다. 그분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 이 자리는 나에게 너무도 과분한 행운이다. 나는 지금 나보다 훨씬 더 아프고 훨씬 더 괴롭게 세월을 보낸 누군가의 꿈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없으니 무엇이든 당연하게 봐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았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나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사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는 모든 것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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