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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Feb 13. 2024

만만해 보이는 않는 이유

관계 9

조직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만만해 보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에는 항상 아물지 못한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었고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세월은 그렇게 여물지 못했던 내 마음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사실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언제나 세상의 중심에 서서 당당히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기회가 되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마음과 몸이 움츠러든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본다는 생각과 내가 나를 만만하게 본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나도 모두 나를 만만하게 보는데 내가 어떻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 돌아보면 내가 만만해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래서 만만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다.      


첫째, 카리스마(charisma) 있는 외모이다. 일단 사람들은 카리스마 있는 굵은 선을 가진 얼굴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러한 외모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불변의 법칙이다. 물론 성형수술을 통해 얼굴을 바꿀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카리스마 있는 얼굴을 얻기는 쉽지 않다. 살면서 가장 부러운 것이 얼굴에 카리스마 또는 아우라(aura)가 있는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은 크고 몸은 작고 얼굴은 동그랗고 코는 파묻혀 있는 나는 얼굴로 카리스마를 얻기는 힘들다. 그래서인지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만만히 보고 내 마음을 떠본다. 나를 겪어본 사람들은 나를 함부로 대하면 혼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나의 외모만으로는 나의 성정(性情)을 알기가 어렵다. 여하간 타고난 얼굴만으로도 카리스마가 풍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가끔 외모가 안 되니 신보다 위에 있는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자동차와 명품을 과시하며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실제로 금수저가 아니라면 금수저 흉내는 금방 탄로 난다. 거짓이 탄로 나면 그나마 있던 인간으로서의 존중도 사라진다.      


둘째,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 직장에 다닐 때는 무조건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승진도 있지만 부드러운 직장 생활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행동이 상사와 친해지기 위한 친절과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사는 그런 행동을 그저 약자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나를 볼 때마다 짜증 내며 지적질만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의 친절과 배려는 그의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에게 당연해 보이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사람들을 만나도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셋째, 말수를 줄이는 것이다. 얼굴로 카리스마를 얻지 못해도 말수를 줄이면 어느 정도 존중받을 수 있다. 말이 많으면 자기가 불안하다는 신호로 비쳐 만만 보일 수 있다. 또한 말이 많으면 가볍게 보여 자기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나는 사람들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의 말은 무게를 잃고 대화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나의 말에 힘이 없으니 나 자신도 만만해 보이는 것이다.      


넷째, 아무리 힘들어도 약점은 얘기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모든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고 착각한다. 자기가 상대방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면 진실로 친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기가 될 수 없고 자기가 상대방이 될 수 없으니 인간관계는 언제나 변한다. 자기가 내뱉은 약점은 사람들의 입을 떠돌아다니며 자기의 존중을 갉아 먹는다. 진심을 보이기 위해 입 밖으로 나온 약점이 비수(匕首)가 되어 자기 가슴에 꽂힌다. 그 약점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만만하게 대해도 된다는 믿음을 준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힘든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힘든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잘 먹고 잘산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만해 보이는 것보다 차라리 그 착각이 더 나은 것 같다.      


다섯째, 거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때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인간관계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사람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끓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그런 사람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가슴에 화를 안고 살 수 있다. 위선자(僞善者)는 다른 사람의 약한 마음을 이용하여 남의 인생을 빼앗는 나쁜 사람이다. 그들은 부탁받는 사람을 치켜세우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끝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욕한다. 위선자는 부탁받은 사람을 호구로 취급할 수도 있다. 거절은 만만해 보이지 않는 방법이다.    

  

여섯째, 실력을 갖춰야 한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은 시기와 질투는 받아도 무시는 당하지 않는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화식열전>에서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배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며, 100배 뛰어난 사람을 두려워하며, 1,000배 뛰어난 사람의 심부름을 하며, 10,000배 뛰어난 사람의 하인을 자청한다고 했다. 위선자는 실력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실력보다 인맥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한 실력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싸움을 피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살면서 이해의 충돌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때마다 싸움이 두려워 피한다면 만만한 사람이 된다. 비난받거나 상처를 입어도 눈 부릅뜨고 싸움에 마주해야 한다. 군대 시절 고참(古參) 하나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겨 괴롭힌 적 있었다. 한마디로 나를 자기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고 하였다. 하루는 바른말로 대들었더니 고참이 나를 때렸다. 고참에게 맞으면서도 눈 부릅뜨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후로 고참은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상사의 괴롭힘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을 본다. 언제부턴가 우리 마음에는 생계가 죽음보다 더 큰 두려움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직장을 때려치우면 상사는 그냥 나랑 상관없는 동네 아저씨이다. 종이 한 장의 생각 차이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오히려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면 생계는 더 단단해질지도 모른다.     

        

만만해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래도 답을 찾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직장에서 생계를 들먹거리는 인간들에게 약해지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우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자기를 만만하게 보든 말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고 자기는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세상의 모든 것이 떠나가도 자기 자신은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그래도 마음이 불안하다면 혹시 자기가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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