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있어도 결혼을 못 하는 이유
관계 17
능력이 부족해서 결혼을 못 한다는 사람은 결혼을 못 하는 이유를 이미 능력 부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결혼을 해야 할 다른 구실을 찾지 못한다. 반면에 능력이 있어도 결혼을 못 하는 사람은 능력을 만든 본전(本錢) 생각 때문에 저울질만 한다. 즉 결혼은 남녀 간에 사랑보다 조건이 더 결정적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할 수 있는 능력은 가정을 잘 꾸릴 수 있는 자질이다. 그러한 자질은 경제적인 자질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자질일 수도 있다. 경제적인 자질이라면 가족을 지탱할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반면에 정신적인 자질은 서로를 사랑하고 가정을 위해 희생할 마음가짐일 것이다.
물질 만능시대에는 남녀의 만남이 정신적 교감보다 경제적 조건에 지배되는 것 같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사람은 결혼하기 힘든 이유를 경제적 어려움에서 찾고 있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라는 어른들의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다. 원수지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너무도 터무니없는 허구처럼 들린다.
지금 세대는 N포 세대이다. 연애, 출산, 결혼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더 나아가 오포 세대 그리고 칠포 세대로 계속 확장하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경제적 불안을 이유로 미래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 결혼은 자기 선택이다. 그래서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결혼을 안 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결혼을 못 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상대가 가진 것이 자기가 가진 것보다 작게 느껴진다. 욕심에 눈이 멀면 자기가 가진 것이 항상 상대가 가진 것보다 크게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기 마음에 드는 상대가 없다. 그들이 친구에게 “왜 나는 결혼을 못 할까?”라고 물어보면 친구는 아마 “너는 눈이 너무 높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친구는 진실을 말했지만, 욕심으로 가득 찬 눈높이는 진실의 답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남녀 사이에 눈높이가 맞지 않을 때는 마법의 콩깍지인 “사랑”이 필요하다. 콩깍지는 반투명하여 눈에 대면 사물이 흐릿하게 보인다. 사랑은 본전 생각을 흐릿하게 만들어 사람만 보게 만든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말한다. 결혼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눈에 콩깍지가 씌어야 하는데 도무지 콩깍지가 씌지 않는다. 사랑이 돈을 뛰어넘지 못하고 돈이 있어야 사랑도 생기는 그런 세상이다.
2022년 혼인 건수는 19만 2,000건으로 1970년 통계를 시작한 이후 최저이다. 혼인 건수가 줄어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혼(事實婚)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대출, 세금 그리고 아파트 청약에서 미혼이 더 유리하여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부부가 허다하다. 그래도 이렇게 동거(同居)라도 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지금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아예 만남조차 시도하지 않는 것 같다.
돌아보면 살림살이가 빠듯했지만,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이 들어 찾아올 외로움을 생각하면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누군가는 결혼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 결혼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모르는 사람끼리 같이 살려면 경제적 조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제적 조건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을 붙여줄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은 퇴색될 수도 있지만, 경제적인 조건과 잘 섞이면 그 무엇보다 강력한 접착제가 될 것이다.
결혼도 인생에서 하나의 선택에 불과하다. 그러나 결혼을 고민하고 있다면 결혼하고 싶은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생각은 시간에 따라 바뀌니 인생에서 후회 없는 결정은 없다. 혹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책임지기 싫고 편안한 삶만 추구하려는 이기심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결혼하고 싶다면 결혼해야 할 이유가 많아질 것이고, 결혼하기 싫다면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아진다. 결국 모든 인생사의 결정은 마음속에 있으니 핑곗거리로 자신을 속이며 후회할 일을 만들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