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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Mar 07. 2024

그 사람이 기분 나쁜 이유

관계 16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기분 나쁜 이유는 나의 선한 마음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취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죽고 못 살 것 같아 붙어 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잊힌 사람도 있지만 멀어졌는데도 생각만 하면 기분 나쁜 사람이 있다. 그때는 간도 쓸개도 다 내어 줄 것 같던 그 사람이 좋아 나 역시 그에게 최선을 다했다.     


다니던 회사가 무너지고 있을 때 갓 태어난 둘째 아이는 멀뚱멀뚱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학교로 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절박함을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학교로 갈 수 있다며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논문에 자기 이름을 얹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학교에서는 외국 학회에 논문을 실어야 승진할 수 있었다. 회사원으로 삼십 대를 보낸 내가 영어를 잘할 리 만무했다. 우연히 알게 된 호주의 한 교수는 이런 나의 절박함을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했다. 그에게 논문을 같이 쓰자고 제안했더니 진행되는 상황을 보며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1차 논문심사에서 ‘대폭 수정’ 의견을 받아 연락했더니 그는 바쁘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나 2차 논문심사에서 ‘소폭 수정’ 의견을 받아 연락했더니 그는 갑자기 적극적으로 논문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그의 태도에 실망했다. 그러나 한때 그 사람을 믿었기에 마음은 아팠다.     


학교에서 그 사람이 좋아 동아리에 가입했었다. 그 사람은 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고맙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보니 그 사람이 베푼 호의는 나를 똘마니로 만들려는 미끼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고 보면 기분 나쁜 사람들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꿈과 희망을 줘서 학교에 올 수 있었고, 그 사람이 외면했기에 혼자 힘으로 논문을 쓸 수 있었고, 그 사람이 호의를 베풀었기에 지금 잘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 환경도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그때는 좋았던 것이 지금은 싫어질 수 있고, 그때는 싫었던 것이 지금은 좋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때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다. 내가 굳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때 그 사람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정도가 아니라면 마음이 상처받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났기에 지금 내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그렇게 기분 나쁜 것도 아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그 사람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만 나 역시 그 사람에게서 얻은 것이 있으니 그 사람을 미워할 필요 없다자기가 잃은 것만 생각하면 세상 사람이 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만자기가 얻은 것을 생각하면 세상 사람이 다 나쁜 것도 아니다그러니 굳이 기분을 나쁘게 해서 자기 마음만 손해 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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