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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Apr 07. 2024

감정의 골이 시간에 비례하는 이유

관계 27

감정의 골이 시간에 비례하는 이유는 뇌가 나쁜 감정을 일으킨 사건을 잊지 않으려고 되뇌기 때문이다. 살아보니 좋은 기억은 잘 잊히는데 나쁜 기억은 나쁜 감정을 만들어 마음의 앙금으로 남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쁜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살아남을 확률을 더 높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인간은 해로운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그 친구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경험은 살아남기 위해 간직해야 할 기억이 된다.

반면에 좋은 기억은 생각보다 빨리 잊힌다. 그 이유는 좋은 기억이 행복감은 주지만, 없다고 해서 생존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의 용량에 한계가 있다면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기억을 더 많이 저장할 것이다.     


이제 인간은 동물보다 인간에게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사람과 나쁜 기억을 심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좋은 감정을 안겨준 사람은 만나고 싶고, 나쁜 감정을 안겨준 사람은 피하고 싶다. 

문제는 나쁜 감정을 안겨준 사람이 가족일 때 매우 괴롭다. 서로를 끌어안으려고 노력할수록 나쁜 감정을 만든 나쁜 기억만 더 또렷해진다. 나쁜 기억은 고요했던 감정의 바다에 폭풍이 휘몰아치게 한다. 잊으려고 일찍 누운 잠자리는 밤새도록 감정의 폭풍에 시달리고, 어느덧 창가에 비친 아침햇살은 분노의 감정을 극에 달하게 만든다. 

행복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애초부터 나쁜 기억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복잡한 감정을 추슬러 좋은 기억으로 봉합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나쁜 기억을 더 되뇌므로 감정의 골은 깊어져 간다. 때를 놓치면 상처받은 감정을 봉합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이 요구될 수 있다. 어쩌면 시간을 투입해도 아픈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까워져야 한다면 왜 지금 가까워지려고 하는가? 그때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틀어진 감정을 봉합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존심보다 가족이 더 소중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흘렀고 그때의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모든 일을 없던 일처럼 돌리기는 어렵다.

가슴에 박힌 가시로 서로가 다가갈 수 없다면 마음은 아프지만, 거리를 두며 잘살고 있음에 감사하면 좋겠다. 감정의 골은 지나온 시간만큼 인생을 돌리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시간의 산물이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다른 사람은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말처럼 쉽지 않다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존심만 내세우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뇌리에 화석처럼 박힌 나쁜 감정을 걷어 내는 것은 해결하기 힘든 과제이다몇 마디의 말과 몇 푼의 돈으로 나쁜 감정을 지우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오만함이다감정의 골을 되돌릴 수 없다면 먼발치에서 앞날의 행복을 빌어주며 놓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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