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아빠로 산다는 것
큰딸은 합격한 대학에 들어갔다가
자퇴를 결정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결정한 거면."
말은 쉽게 나왔다.
그 뒤에 따라오는 것들이
어려운 줄도 알면서...
재수를 한다고 했고,
큰딸아이의 시간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딸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재수생의 시간은
생각보다 잘 굴러가지 않는다.
학교처럼 정해진 종이 울리지 않고,
옆에서 끌어주는 친구들도 없으며,
의지는 매일 새로 꺼내야 하고,
그 의지는
생각보다 빨리 닳는다.
처음 며칠은
큰딸도 열심이었다.
책상 위에 계획표를 붙이고,
문에 시간을 적고,
휴대전화를 멀리 두겠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마음이 놓였다.
"그래, 이번에는 다르겠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큰딸의 아침이 느려졌다.
일찍 일어나는 날이 줄고,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짧아지고,
방 안에서는 필기소리 대신
영상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는 그것을 먼저 알아챘다.
아내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목소리가 낮아지면
집 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오늘은 공부 좀 했어?"
큰딸은 대답을 길게 하지 않는다.
"했어"
"얼마나?"
"그냥... 했어."
그 '그냥'은 대개 싸움의 시작이 된다.
엄마는 '얼마나'를 묻고,
큰딸은 '왜'부터 느낀다.
나는 그 사이에서
젓가락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밥은 그대로인데
식탁의 온도는 조금 식는다.
"너 지금 이러면... 나중에 더 힘들어."
엄마의 말은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은
가끔 가장 많이 아프다.
큰딸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알아."
"아는데 왜 안 해?"
그 질문이 나오는 순단
큰딸의 어깨가 딱딱해진다.
"엄마는 매일 그 말만 해."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해야 돼?"
큰 딸은 그다음 말을 삼킨다.
삼킨 말이
눈으로 나온다.
나는 그 눈을 보며
딸이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딸이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안다.
재수는
공부를 다시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매일 다시 세우는 일이다.
큰딸은 그것을
생각보다 빨리 배운 것 같다.
엄마는 그것을
생각보다 늦게 배운다.
아내는 버티는 사람이다.
버티는 사람은
버티는 법을 가르치려 한다.
큰딸은
그 가르침에 가끔 숨이 막힌다.
그날도 비슷했다.
식탁 위에 말이 몇 번 오가고,
큰딸은 밥을 반쯤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았는데,
나는 그 소리를
크게 들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가
손을 잠깐 멈췄다.
"내가 월 잘못하고 있나."
그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한테 하는 말이었다.
나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내가 준비하는 일도
가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의지만으로는
버텨지지 않는 날이 있다.
큰딸도 지금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문득
큰딸의 방 문을 바라봤다.
"내가 얘기해 볼게."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안에는
답답함과 미안함이 같이 들어 있었다.
나는 오십이 넘어서도
'다시 시작'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번 새로 배운다.
오늘도 아이들은 자라고
그들의 세계는 커가고 있다.
나는 그 커지는 세계 앞에서
아빠가 해야 할 말을 조용히 고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