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아빠로 산다는 것
큰딸은 낙천적인 아이다.
좋게 말하면 밝고,
웬만한 일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모습이 나는 아직도 의아하다.
긴 사춘기를 보낸 아이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 기 때문이다.
큰딸의 사춘기는 매우 길었다.
중학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 즈음 끝이 났다.
그때 큰딸은
자기 굴 안에 숨어 있던 아이였다.
문은 항상 닫혀 있었고,
대답은 언제나 짧았으며
눈은 오래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그 문 앞에서
참 오래 서 있었다.
그 아이가 지금은
"괜찮아." 하며 늦잠을 자고 있다.
재수를 결정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정확히는
'늦잠'이 아니라
그냥 잠이 많은 쪽에 가깝다.
알람이 울려도
큰딸은 눈을 뜨지 않는다.
알람이 두 번, 세 번을 울려도
큰딸은 자세만 바꾼다.
엄마는 재수생이 집에 있으면
아이의 하루가 흔들릴까 봐 그 흔들림을
미리 잡아두려 한다.
그날 아침도 평소와 같이 조용했다.
조용한데
평화로운 조용함이 아닌
태풍의 눈과 같은 조용함이었다.
부엌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또렷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큰딸 방문을 한 번 봤다.
아내도 봤다.
그리고
아내가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일어나"
큰딸 방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응'은 나왔는데
몸은 나오지 않는다.
아내가 다시 말했다.
"지금 몇 시인지 뵈."
큰딸은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아침이잖아..."
그 말이
아내 속을 한 번 뒤집는다.
아내는 밝은 사람이다.
힘든 걸 크게 티 내지 않고
잘 참아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매일 같은 장면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아침이면 뭐 해. 너 재수생이잖아."
큰딸이 이불속에서 말했다.
"나도 알아..."
아내는 방문 앞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말을 다시 꺼냈다.
"알면 일어나.
일어나서 앉아...
딱 앉기만 해도 돼."
큰딸은 그제서야
이불을 걷어차며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는 산발이고
눈은 반쯤 감겨있다.
그리고 너무 태평하게 말했다.
"엄마,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야."
"나 어차피 할 거야."
그 말이
아내의 속을 또 한 번 뒤집는다.
"할 거야"는
대개 내일의 말과 같아서다.
아내가 물었다.
"언제?"
"오늘?"
"점심 먹고?"
"아님 저녁 먹고?"
큰딸은 하품을 길게 하고는
아주 낙천적으로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나는 그 대목에서
웃음이 날 뻔했다.
웃으면 아내가 더 화날 것 같아서
나는 물 한 모금 더 마셨다.
식탁에 앉으니
큰딸은 밥을 아주 잘 먹었다.
밥 먹는 태도를 보면
이미 대학에 합격한 사람이다.
큰딸이 말했다.
"엄마 나 스트레스 많이 안 받아."
"그래야 오래 하잖아."
아내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너의 시간을 믿지 않는 거야."
큰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시간이 왜?"
아내가 한숨을 내쉰다.
"시간은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그 문장은 큰딸에게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아내 자신에게도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그것을 안다.
아내가 예민해진 것은
큰딸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미안해서다.
남들처럼 비싼 채수학원을 보내주지 못하는 마음.
'뭐라도 잡아줘야'하는다는 마음.
그 마음이
아내의 말투를 빨라지게 만든다.
"너 그냥... 아침 10시에만 일어나자."
큰딸이 태평하게 웃는다.
"응, 10시는 무조건 일어나지."
아내는 큰딸의 그 말에 조금 풀리는 얼굴이다.
나는 그사이에 큰딸의 얼굴을 한번 본다.
사춘기 때 굴에 숨어 있던 그 아이가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다.
그 모습이 딸아이의 게으름조차 ‘괜찮은 신호’처럼 보이게 만든다.
큰딸이 나를 보며 말한다.
"프렌치 토스트 해줘"
"나 그거 먹으면 공부 잘 될 것 같아."
그냥 하는 말인 데도 그 말이 아내에게는 가끔 힘이 된다.
오늘도 아이들은 자라고
그들의 세계는 점점 더 커가고 있다.
이 집의 아침은 시끌시끌하게
하루를 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