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큰딸은 너무 잘 잔다.

딸 셋 아빠로 산다는 것

by HIPE

큰딸은 낙천적인 아이다.


좋게 말하면 밝고,

웬만한 일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모습이 나는 아직도 의아하다.

긴 사춘기를 보낸 아이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 기 때문이다.


큰딸의 사춘기는 매우 길었다.

중학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 즈음 끝이 났다.

그때 큰딸은

자기 굴 안에 숨어 있던 아이였다.

문은 항상 닫혀 있었고,

대답은 언제나 짧았으며

눈은 오래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그 문 앞에서

참 오래 서 있었다.


그 아이가 지금은

"괜찮아." 하며 늦잠을 자고 있다.

재수를 결정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정확히는

'늦잠'이 아니라

그냥 잠이 많은 쪽에 가깝다.

알람이 울려도

큰딸은 눈을 뜨지 않는다.

알람이 두 번, 세 번을 울려도

큰딸은 자세만 바꾼다.


엄마는 재수생이 집에 있으면

아이의 하루가 흔들릴까 봐 그 흔들림을

미리 잡아두려 한다.


그날 아침도 평소와 같이 조용했다.

조용한데

평화로운 조용함이 아닌

태풍의 눈과 같은 조용함이었다.


부엌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또렷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큰딸 방문을 한 번 봤다.

아내도 봤다.

그리고

아내가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일어나"

큰딸 방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응'은 나왔는데

몸은 나오지 않는다.


아내가 다시 말했다.

"지금 몇 시인지 뵈."

큰딸은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아침이잖아..."


그 말이

아내 속을 한 번 뒤집는다.


아내는 밝은 사람이다.

힘든 걸 크게 티 내지 않고

잘 참아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매일 같은 장면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아침이면 뭐 해. 너 재수생이잖아."

큰딸이 이불속에서 말했다.

"나도 알아..."

아내는 방문 앞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말을 다시 꺼냈다.

"알면 일어나.

일어나서 앉아...

딱 앉기만 해도 돼."


큰딸은 그제서야

이불을 걷어차며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는 산발이고

눈은 반쯤 감겨있다.

그리고 너무 태평하게 말했다.

"엄마,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야."

"나 어차피 할 거야."


그 말이

아내의 속을 또 한 번 뒤집는다.


"할 거야"는

대개 내일의 말과 같아서다.


아내가 물었다.

"언제?"

"오늘?"

"점심 먹고?"

"아님 저녁 먹고?"


큰딸은 하품을 길게 하고는

아주 낙천적으로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나는 그 대목에서

웃음이 날 뻔했다.

웃으면 아내가 더 화날 것 같아서

나는 물 한 모금 더 마셨다.


식탁에 앉으니

큰딸은 밥을 아주 잘 먹었다.

밥 먹는 태도를 보면

이미 대학에 합격한 사람이다.


큰딸이 말했다.

"엄마 나 스트레스 많이 안 받아."

"그래야 오래 하잖아."

아내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너의 시간을 믿지 않는 거야."

큰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시간이 왜?"

아내가 한숨을 내쉰다.

"시간은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그 문장은 큰딸에게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아내 자신에게도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그것을 안다.

아내가 예민해진 것은

큰딸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미안해서다.


남들처럼 비싼 채수학원을 보내주지 못하는 마음.

'뭐라도 잡아줘야'하는다는 마음.

그 마음이

아내의 말투를 빨라지게 만든다.


"너 그냥... 아침 10시에만 일어나자."

큰딸이 태평하게 웃는다.

"응, 10시는 무조건 일어나지."


아내는 큰딸의 그 말에 조금 풀리는 얼굴이다.

나는 그사이에 큰딸의 얼굴을 한번 본다.

사춘기 때 굴에 숨어 있던 그 아이가

지금은 이렇게 웃고 있다.

그 모습이 딸아이의 게으름조차 ‘괜찮은 신호’처럼 보이게 만든다.

큰딸이 나를 보며 말한다.

"프렌치 토스트 해줘"

"나 그거 먹으면 공부 잘 될 것 같아."

그냥 하는 말인 데도 그 말이 아내에게는 가끔 힘이 된다.


오늘도 아이들은 자라고

그들의 세계는 점점 더 커가고 있다.

이 집의 아침은 시끌시끌하게

하루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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