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2025년 12월 9일, 나는 아마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전 세계 누구라도 자신의 소설 원고를 무료로 올릴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동안 나는 아마존에서 어떤 장르가 읽히는지, 어떤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독자에게 도달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관심을 갖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을 뿐이다.
그렇게 늦은 시점에서, 낯선 이름들의 수많은 책을 넘기며 나는 불편한 깨달음 하나를 마주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진짜 작가들]을 보고 있었다.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상을 받은 작가도 아니다. 다만 이야기를 쓰고, 세상에 내놓고, 그에 대한 반응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 그들의 문장,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이야기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드러냈다. 나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좁은 세계 안에 가두고 있었다는 것.
내가 처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03년, 학창 시절에 마침표를 찍던 해였다. 그때 내가 느낀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쟁은 멈추지 않았고, 인간은 세대를 거듭하며 서로를 죽였다. 마치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처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우리는 싸워야 하는가? 왜 서로를 파괴해야 하는가? 정말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인가?
그 질문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명예나 돈 때문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불행의 고리를 잠시라도 끊어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쓰고 싶다는 마음과, 무엇을 쓸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1년 동안 주제를 찾았다. 쉬운 주제는 외면했고, 가벼운 이야기는 처음부터 배제했다. 내가 정하고 싶은 주제는 무겁고, 어렵고, 결코 친절하지 않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훌륭한 글이 필요했으며,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훌륭한 소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소재를 찾기 위하여 노력을 했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소재를 찾게 되었다.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주제로 어떻게 세상과 이야기할 것인가.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 나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그 질문들과 씨름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5년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내가 정한 소재를 붙잡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쓰인 적 없는 이야기였고, 어쩌면 쓰일 수조차 없는 이야기였다.
그냥 젊은 패기와 혈기만 믿고 세상아 덤벼라 세상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하는 그런 심정으로 써 내려갔다.
수많은 목숨과 거대한 시대를 다루지 않고서는 도전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이야기였다. 그때의 나는,
이 이야기는 오직 내가 써야만 한다고 믿었다. 적어도, 나 말고는 아무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쓰는 내내,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는 했지만,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의욕만 가지고 있었을 뿐, 경험은 없었다. 막상 글을 쓰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 앞에 멈춰 선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는 순간, 나 자신을 부정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이야기를 써내려 가야만 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 조차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서툴게, 반복해서. 그렇게 시간이 쌓였고, 마침내 형태가 생겨났다. 주제를 정하는 데 쓴 5년을 포함해 총 13년 만에 11만 자 분량의 원고가 완성되었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2016년, 나는 그 원고를 들고 한국의 여러 출판사를 찾았다. 하지만, 어느 곳도 나의 원고를 원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출판사를 다 찾은 것은 아니었다. 대형 출판사들은 나의 소설 원고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나는 자비출판을 선택했다. 제작비는 내가 부담했고, 인쇄와 재판은 출판사가 맡았다. 저작권은 내가 유지했고, 인세는 20%였다.
계약 조건만 놓고 보면, 나쁜 계약은 아니었다. 그래서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2024년 2월, 나는 결과를 마주했다.
참담했다. 투자한 돈은 단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나는 세상이 내 작품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진실은 훨씬 단순했고, 잔인했다. 뒤늦게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읽히지 않는 글을 썼던 것이다. 13년의 노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의 마음에 남은 것은 깊게 자리 잡은 패배 의식뿐이었다. 나는 실패라는 실에 매달린 꼭두각시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다시 흘렀다.
그리고 2025년 12월, 아마존은 내가 수년간 외면해 온 현실을 보여주었다. 수천 명의 작가들. 수천 권의 완성된 책들. 완벽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이야기들.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세상에 나온 이야기들.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이야기들. 그제야 나는 이해했다. 나는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다. 나는 무지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실패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뒤늦게나마 주제 파악을 했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첫 발을 내딛는다.
마치 아기 새가 처음 날개를 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