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임시)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여인에게 식사를 대접받은 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하늘에는 어스름이 내려앉으며 낮의 흔적이 천천히 지워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번진 어스름이 카페 안까지 스며들며 공기를 눌렀다.
카페 안에는 오래된 재즈가 낮게 흐르고 있었고, 커피 향 뒤로 묘하게 금속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누군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시간은 숨을 죽인 채 멈춰 있는 듯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중년의 남성이 들어섰다. 큰 키와 농구공도 한 손에 쥘 법한 손. 단정한 이목구비와 달리, 정리되지 않은 머리와 콧수염이 거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그러나 바닥을 밟을 때마다 공간의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오래 이 바닥에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가진, 설명하기 힘든 압박감이었다.
구석 자리에서 책을 읽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오셨군요, 회장님.”
그녀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남성은 잠시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주변을 훑었다.
“냄새가 좋네요.”
“식사 대접했습니다.”
그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환심은 좀 샀습니까?”
질문은 가볍게 던진 듯했지만, 그 속에는 시험하듯 날 선 기색이 묻어 있었다. 여인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여인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쉽진 않네요.”
“그럴 사람으로 보였죠.”
잠깐의 침묵.
“그래도… 진전은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공기가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하지만 방심할 수 있는 종류의 평온은 아니었다. 언제든 다시 조여들 수 있는 팽팽함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남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회장님.”
“글쎄요. 이 바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바닥도 아니고, 그 사람 스스로 버틸 수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회장님.”
남성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달라졌다. 사업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다른, 무언가 계산하고 재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 사람 원고 전체적으로 안 보셨지요?”
“저는 워낙 바쁘다 보니 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세계의 정세가 그 책 한 권에 다 담겨 있었습니다.”
카페의 조명이 순간 더 어두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말하는 이의 목소리 끝에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다.
“3차 대전이 일어나고, 그 틈에 북한이 한국을 침략하고, 중국이 미국에게 2차 한반도 전쟁에 개입하면 한반도에 핵을 터뜨리겠다고 협박하고, 미국은 중국의 압력을 못 이기고 철수하고, 그렇게 중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잡게 될 거라는 흐름이 정확하게 적혀 있었어요.”
“그런 내용이 있었나요?”
“네. 그것도 그걸 스무 살 때 미리 예측한 거예요. 그리고 그걸 글로 경고한 겁니다, 회장님.”
“그 부분은 정말 예상 외네요.”
“거기에 더 무서운 건, 아시잖아요.”
“2016년 막 가을이 맞이했을 때, 18대 정권이 문제점이 생기기 전에 이미 탄핵을 당할 거라고, 두 달 동안의 무정부 상태가 들어설 거라는 것을 예측했어요.”
예측이라는 말로 넘기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 우연이라고 치기엔, 이 바닥 사람들의 감각이 먼저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 점은 저도 높이 사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점은 그 예측한 것을 그대로 자신의 원고를 책으로 출판한 출판사에 보냈다는 점이에요. 당당하게.”
잠시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카페 밖에서는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이 테이블 위에는 다른 시간대가 흐르는 듯했다. 어떤 선택이든, 여기서부터는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묵직한 예감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의 생각은요?”
“이 사람은 놓쳐서는 안 될 거라는 확신은 섰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내려앉는다.
“근데 이 사람에 대한 정체는 확신을 못 하겠습니다.”
“정체를 확신 못 한 다니요?”
“귀신인지 사람인지 도무지 분간을 못 하겠어요.”
“음…?”
“어쩌다 보면 우리를 내면 속 깊은 곳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때가 있어요.”
“그건 정말 무서운 이야기네요.”
“분명 단순히 삼류 판타지 소설 글 따위나 쓰는 글쟁이가 맞는데, 어떻게 보면 글 뒤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악마보다 더한 힘을 가진 악마 같은 존재로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만큼 뭔가 우리가 속고 있다는 말인가요?”
“네, 회장님.”
“그 말은 우리가 그를 이용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것 같지만, 그가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래도 우리는 세력입니다. 한 사람에게 휘둘릴 수는 없지요. 그가 아무리 강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세력을 이기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도박을 해보겠다는 건가요?”
“완전하게 우리 세력으로 끌어들인다면, 그의 재능과 능력은 우리 세력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합니다.”
“근데 문제는 그 사람이 숨기는 게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다는 거죠?”
“네, 회장님.”
“그럼 정리하세요.”
여인이 회장이라는 남성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회장님!?”
“어차피 끌어들여도 확실하게 우리 세력에 완전히 동화될 것 같지도 않은데, 끌어들였다가 배신이라도 하면 속상합니다.”
“아직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이릅니다. 우리도 그를 탐색하는 중이고, 그건 쌤 입장에서도 우리를 탐색 중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 숨기는 게 많으니, 그게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선생님?”
“일단 이야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 유능합니다. 그리고 너무 독특하고 특이한 케이스예요.”
“안 그래도 이 나라가 시끄러운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갑자기 툭하고 나타나버린 건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온몸에 소름이 돋기는 하네요.”
“단순히 자신을 삼류 판타지 소설 따위나 쓰는 글쟁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어요.”
“너무 그 쌤에 대해서 과민반응처럼 감정 이입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좋겠네요.”
“문제는 그 내용을 계속 해외로 내보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 내용을 해외로 내보내려고 한다니요?”
“그분의 책 안에 있는 내용이요.”
“그거 진짜입니까?”
“네”
“그건 정말 무서운 이야기네요.”
“단지 국내에서 반응이 없고 안 팔리는걸 자체를 다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설마요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요?”
“아뇨 이미 계획까지 세워 놓았더라고요. 3차 대전이 일어나고 2차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고 미국이 중국 압력 때문에 한반도에서 군대를 빼는 그 내용을 계속 해외로 넘기려고 간을 보고 있었어요.”
“이건... 그냥 가만히 두고 볼 문제는 아니군요?”
“뭔가를 계속 꾸미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쌤에 대한 정체를 알 수가 없다고 한 거예요.”
“이제야 왜 우리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그 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도 가네요.”
“제가 조금 더 알아볼게요.”
“이번에 안 되면 제가 움직이겠습니다.”
“네, 회장님.”
대화가 끝나자 카페 전체에 흐르던 긴장감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하지만,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형태를 바꿔,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공간에 눌러앉아 있을 뿐이었다.
남성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짧게 숨을 내쉬며 카페 밖을 바라봤다. 어둠은 어느새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여인은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책을 펼쳤다. 책을 쥐고 있는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표정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선택은 내려졌고, 이제 남은 건 시간
“우리 선생님의 원하는 대로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요 회장님”
짧은 대화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다음 움직임을 예고하는 무언의 약속이 담겨 있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중년의 카페를 떠나는 것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카페는 다시 평소의 분위기를 되찾는 듯했다.
그리고 카페는 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용히 침묵과 고요함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