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54

6화

by 가비

[딸랑]

카페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맑은 소리를 냈다.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은은한 커피 향과 함께 따뜻한 음식 냄새가 공기를 채웠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이라 카페 안은 한산했고, 창가 근처 테이블에는 갓 차린 식사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김이 은근히 올라오는 국과 따뜻한 밥, 직접 만든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인 모습은 마치 집에서 막 상을 차린 듯 정성이 느껴졌다.

테이블 옆에서 앞치마를 정리하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사내는 식탁을 보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예전에도 한 번 이런 대접을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누나… 또요?”

여인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뭐가 또예요.”

“아니… 누나한테 식사 대접받은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신경 쓰지 말고 와요.”

사내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날씨도 덥고, 오늘 오래 서 있을 수도 있잖아요. 빈속이면 금방 지쳐요.”

여인은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앉아요. 든든히 먹고 가요.”

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리에 앉았다.

“누나 진짜… 너무 잘 챙기시는 거 아니에요?”

“다른 의미 없어요. 힘든 일 하기 전에 든든히 먹고 가자는 거예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밥그릇을 건넸다.

사내는 한 숟갈 떠 입에 넣었고, 곧 표정이 풀렸다.

“와…”

“왜요?”

“집밥 느낌이에요.”

여인은 작게 웃었다.

“집밥 맞죠. 카페라고 못 만들 이유는 없잖아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카페 안에는 조용한 음악과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만 은은하게 흘렀다. 바깥의 여름 더위와 달리 이곳은 따뜻하고 안정된 분위기였다.

몇 숟갈 더 먹은 사내가 말했다.

“시위 가기 전에 이런 밥 먹으니까… 괜히 든든해지네요.”

“그래서 준비한 거예요.”

“전투 전에 체력 보충 느낌인데요.”

“정신적으로는 전투 맞죠.”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허기가 채워질수록 긴장도 조금씩 풀렸다.

식사가 끝나자 여인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괜찮아요?”

“네. 정말 충전됐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가죠.”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누나 덕분에 시작부터 든든하네요.”

여인은 식탁을 정리하며 웃었다.

“그럼 됐어요.”

따뜻한 실내 공기를 뒤로하고 아직 이른 여름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사내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이제 가는 건가요?”

여인은 짧게 웃었다.

“네, 쌤. 오늘 잘 부탁해요.”

“그럼요. 이렇게 근사한 식사까지 대접받았는걸요.”

여인은 카페 문단속을 마치고 두 사람은 나란히 밖으로 나섰다.

[딸랑]

종이 다시 맑게 울렸다.

카페 앞에 세워진 고급 세단으로 향한 여인은 자연스럽게 운전석 문을 열었다. 사내는 잠시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뭐 해요, 쌤? 안 타고?”

“아, 네… 누나.”

사내는 머쓱하게 웃으며 보조석에 앉았다. 곧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사내는 여인의 운전을 보며 감탄했다.

“정말 운전 잘하시네요. 웬만한 사람들도 누나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차들 사이의 작은 빈틈도 놓치지 않고 침착하면서 과감하게 파고드는 운전이었다. 흐름을 정확히 읽는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진짜 안정적이에요. 옆에 앉아 있으니까 마음이 편하네요.”

그의 솔직한 칭찬에 여인은 살며시 웃었다.

“그럼요. 저 카레이스 동호회 회원이에요.”

“와… 멋지네요, 누나.”

여인은 웃으며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사내는 괜히 말을 걸어 방해하고 싶지 않아 차창 밖을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신호에 걸리자 여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쌤은… 딸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사내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종교 문제로 이혼하면서… 마음을 정리했어요.”

“하필 종교 문제였군요…”

“처음엔 산후 우울증인 줄 알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졌죠. 잔소리가 싸움이 되고… 결국 이혼까지 갔어요.”

여인은 조용히 말했다.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래도 딸 때문에 자주는 봐요. 부부로서의 정만 정리된 거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여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 아들? 일어났어? 밥 챙겨 먹고… 엄마 오늘 늦어. 사랑해.”

통화를 마치자 사내가 물었다.

“아들이에요?”

“네, 작은 아들이요.”

“부럽네요.”

“부러울 게 뭐 있어요?”

사내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친어머니 얼굴도 모르거든요.”

여인의 표정이 잠시 무거워졌다.

“죄송해요…”

“괜찮아요, 누나.”

분위기는 서서히 풀렸다.

“근데 운전 정말 잘하시네요.”

여인은 웃었다.

“하다 보면 늘어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운전 가르쳐주세요.”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쌤.”

사내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궁금한 표정으로 운전 중인 여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개고기 문제로 데모하러 자주 다니세요?”

여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강의실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건 익숙하지만… 이렇게 현장에 나오는 건 저도 처음이에요.”

“날도 더운데… 마음 여린 누나가 고생 많으시네요.”

사내의 말에 여인은 살짝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세상에 먹을 것도 많은데… 왜 굳이 개고기를 먹는 걸까요.”

사내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예전에는 기근이 오면 살아남기 위해 뭐든 먹었잖아요. 그 과정에서 생긴 식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인육은 사라졌지만, 개고기는 음식으로 남은 셈이고요.”

그는 잠시 말을 고르고 다시 이어갔다.

“이제는 없어질 때도 됐다고 생각해요. 서양에서도 이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를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사내는 어깨를 으쓱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얼마 전에는 한국 연예인이 해외 행사에 갔는데, 소개 멘트가 꽤 충격적이었다더라고요.”

여인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했는데요?”

사내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개고기를 먹는 나라에서 온 유명 연예인’이라고 소개했다는 거예요. 관객들이 웃고 박수까지 쳤다더라고요.”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연예인도 많이 민망해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반려동물 문제에 민감한 문화라는 거겠죠.”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서양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대하는 분위기가 강해요. 법적으로도 보호가 많이 강화됐고요.”

사내는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언젠가는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정리하지 않겠어요? 세계 흐름에 맞춰 가려면 변화가 필요하죠.”

운전에 집중하던 여인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좋겠네요…”

사내는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은 다양한 입장이 있겠죠. 그래서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결국 사회가 천천히 바뀌는 과정이겠죠.”

여인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어느새 큰 교차로가 보이는 도심으로 들어섰다.

여인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어? 다 왔네요.”


어느새 차는 목적지인 구포에 도착했다.

보조석에 앉은 사내는 창밖을 둘러봤다. 시내 중심에 자리한 넓은 교차로에는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한쪽에는 인산인해를 이룬 거대한 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근데 누나?”

사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네?”

“오늘 사람들 많이 오나요?”

신호가 바뀌자 여인은 주변을 확인하며 차를 몰았다.

“글쎄요… 동아리 카페에서는 다 온다고 하던데, 가봐야 알죠. 주최자는 인천에서 내려와요.”

사내의 눈이 커졌다.

“인천에서 여기까지요? 대단하네요…”

여인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감탄할 일인가요?”

“그럼요. 이런 문제에 시간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여인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각자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현실이 조금씩 알려지는 거예요.”

사내는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나.”

“혼내려는 말 아니에요. 눈치 보지 마세요.”

그 말에 사내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차는 곧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가득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여인의 표정이 굳었다.

골목 양옆에는 개고기 식당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 뒤로 거대한 시장 입구가 이어졌다. 식당 앞에는 좁고 낡은 철창들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야윈 개들이 웅크린 채 갇혀 있었다. 일부 식당은 검은 비닐로 철창을 가려 두고 있었다.

사내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없이 굳었다.

철창 속 개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한 어미 개가 작은 새끼를 핥는 모습에 사내는 결국 시선을 돌렸다.

차는 식당 맞은편 주차장에 멈췄다.

“쌤, 가요.”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사거리 쪽으로 걸었다.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시장 입구 근처에는 이미 몇 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있었다. 여인은 밝게 인사를 건넸고, 주최자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왔다.

“더운 날씨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하죠.”

사내는 한쪽에 놓인 피켓들을 바라봤다. 투박하게 만들어졌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주최자는 노란 띠를 건넸다.

“이거 착용해 주세요.”

여인은 하나를 더 받아 사내에게 내밀었다.

“쌤, 이거 두르세요.”

사내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주최자가 확성기를 들었다.

“줄 맞춰 주세요. 시작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피켓을 들고 줄을 섰다.

“개고기!”

“반대!”

“반려동물을!”

“버리지 말자!”

작은 무리였지만 목소리는 분명했다.

지나던 사람들은 무심히 바라보거나 불편한 시선을 보냈고, 식당 주인들 중 일부는 비웃듯 철창 덮개를 걷어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땀이 흐르고 목이 쉬어가도 구호는 계속 이어졌다.

한 바퀴를 돌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주최자가 말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가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흩어졌다.

“우리도 가요, 누나.”

사내가 말했지만 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철창에 머물러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사내는 조심스레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

“괜찮아요?”

여인은 눈물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어린 소녀처럼 눈물을 글썽인 채, 힘겹게 주차된 승용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내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가요.”

구두 소리가 다시 울렸다.

여인은 힘겹게 걸음을 옮겼고, 사내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주차해 둔 차 앞에 멈춰 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쌤… 한잔하러 갈까요? 제가 살게요. 오늘은… 그냥 이대로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아요.”

사내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감정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 그럴까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충분했다.

여인은 작게 숨을 내쉬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사내도 조용히 보조석에 올라탔다. 차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오늘 겪은 무거운 감정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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