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괜찮아요, 누나?”
뒷좌석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여인은 시동을 걸지 못한 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초점 없이 허공에 머물러 있었고, 머릿속에는 조금 전 개고기 시위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겪었던 장면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계속 맴도는 듯했다.
차 안에는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잔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그녀는 작게 숨을 내쉬며 현실로 돌아온 듯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차키를 다시 돌리기 전까지, 그 짧은 멈춤은 묘하게 길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쌤 그냥 좀 충격받아서 그래요.”
사내가 머쓱하게 웃었다.
“제가 운전할 줄 알면 대신했을 텐데”
여인이 눈물을 닦으며 작게 웃었다.
“어머 쌤. 자기 차 운전대는 아무한테나 맡기는 거 아니에요.”
“아하 그런가요?”
“그럼요.”
여인은 물티슈로 눈가를 정리한 뒤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잠시 후 시동이 걸렸다.
“갈까요?”
“네.”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채 여인은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회장님, 저예요.”
[어쩐 일이세요, 한 선생님?]
“저희 지금 볼 일 보고 들어가는 길인데 속 좀 상했고 해서 술 한잔 하려고요. 회장님도 오실래요?”
[그럴까요?]
“네. 늘 가던 곳으로요. 5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준비해서 갈게요.]
여인은 통화를 마치고 조용히 핸들을 잡았다.
차는 부드럽게 움직이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도로 위 차량들 사이를 따라 흐르듯 달리던 승용차는 곧 신호에 걸려 멈춰 섰다.
여인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차도 다른 차들도 빨간 불 아래, 신호를 지키며 줄지어 서 있었다. 물론 신호를 받은 다른 차들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인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여인은 백미러로 슬쩍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아까보다 표정이 조금 풀려 있었다.
생각은 많은데, 꼭 우울해 보이지는 않는 얼굴.
“글 쓰시는 거 힘드시죠?”
여인이 가볍게 물었다.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뇨”
그리고는 웃었다.
“재밌어요. 몇 번 쓰다 보니까 그냥 생활이 돼버렸어요.
양치하듯이, 커피 마시듯이.”
“그 정도예요?”
“네. 안 쓰면 오히려 찝찝해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쓰다 보니 재미도 붙고요.”
잠시 창밖을 보더니 덧붙였다.
“이것 말고는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요.”
신호는 아직 빨간색이었다.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가끔은 너무 심각해 보이세요.”
사내가 피식 웃었다.
“그건요 아이디어 잡을 때 그래요. 머릿속에서는 늘 회의 중이거든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받아 적는 것도 어렵겠어요.”
“그럼요. 등장인물들이 저보다 더 말이 많거든요.”
여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자기 차례 기다리면서 [내가 먼저야] 하고 싸우는데 정말 웃긴다니까요”
여인이 또 한 번 크게 웃는다.
“그럼 쌤 머릿속은 항상 전쟁터겠네요.”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항상 머릿속에 자기 차례라면서 싸우는 등장인물들을 설득하면서 중재하느라 정신없다니까요. 안 그러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요.”
여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쌤은 작가가 아니라 관리인이네?”
사내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등장인물 민원 처리반.”
“민원이 많겠는데요?”
“하루에도 수십 건이요. [왜 내 대사를 줄였냐]부터 시작해서”
여인이 웃다가 운전대를 톡톡 두드렸다.
“쌤도 어지간히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겠어요.”
“그럼요.”
“더 좋은 취미만 생기면 쓰레기통에 집어던져버릴 거예요.”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어머. 그렇게 막말해도 돼요? 등장인물들이 들으면 단체로 파업하겠는걸요?”
사내가 웃었다.
“이미 몇 명은 파업했어요. 말을 안 해요. 입 꾹 다물고 저 째려봐요.”
“무섭다”
“그래서 제가 가끔 회유도 해요.”
“어떻게요?”
“야, 이번 화는 네가 주인공이야. 진짜야.
그러면 또 금방 풀려요.”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쌤 완전 정치인이네.”
“작가가 아니라 선거캠프죠.”
“공약은 잘 지켜요?”
사내가 잠깐 뜸을 들였다.
“웬만하면요.”
“거짓말.”
“가끔은 스토리가 우선이니까요.”
여인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놓고 취미 바뀌면 쓰레기통에 던진다고 하셨어요?”
“근데 막상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려고 하면 못 버릴 것 같기도 해요.”
“왜요?”
사내가 창밖을 힐끗 보며 말했다.
“다 제 머릿속에서 나온 애들이잖아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가,
여인이 작게 웃었다.
“에이, 결국 애정이네.”
"그럼요. 이래서 정이 무섭다니까요"
사내도 여인도 함께 웃는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가,
여인이 작게 웃었다.
“에이, 결국 애정이네.”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요. 이래서 정이 무섭다니까요.”
“버린다면서요?”
“말은 그렇게 해도 막상 삭제 버튼 누르려하면 손이 안 떨어져요.”
“결국 다시 살리겠네.”
“네. 휴지통에서 복구하는 게 일상입니다.”
여인이 피식 웃었다.
“등장인물들이 알면 감동하겠어요.”
“아뇨. 걔들은 당연한 줄 알아요.
‘내가 주인공인데 왜 버려?’ 이런 태도죠.”
“와 쌤 머릿속에 등장인물들 성격 세다.”
“그래서 제가 만들어 놓은 애들이지만, 비위를 맞추기 정말 힘들어요.”
차 안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그때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여인은 자연스럽게 액셀을 밟으며 말했다.
“그래도 계속 쓰는 거 보면 진짜 좋아하긴 하나 봐요.”
사내는 잠시 창밖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솔직히 하는 말이지만.”
“뭔데요?”
“이거 아니면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는 게 없어요.”
여인이 힐끗 그를 봤다.
사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그냥 계속하는 거죠. 싸우든, 파업하든 데리고 가는 거예요.”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관리인이네.”
“그럼 뭐해요. 최저임금도 못 받는 관리인이요.”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하시는 쌤이 존경스러워요.”
사내가 씩 웃었다.
“이러면서 하루하루 버텨 나가는 거죠.”
여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쓴 글이 대박 나기를 바라며”
“그건 인정.”
차는 다시 도로 위 흐름에 섞여 부드럽게 나아갔다.
“어서 쌤이 글로 인정받고 성공하는 유명한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왜요?”
“그래야 제가 나중에 정말 대통령이 되면 쌤을 스카우트할 때 뒤탈이 없겠죠?”
“누나 말도 그럴싸한데요?”
여인이 피식 웃었다.
“미리 인맥 관리하는 거예요.”
사내가 눈썹을 들썩였다.
“와 벌써 정치인이네.”
“정치는 타이밍이죠.”
“그럼 저는 뭐예요?”
“미래의 문학 특보 장관이요.”
“벌써 자리까지 줘요?”
“능력 있으면 써야죠.”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가 그릇이 그렇게 크진 않은데요.”
“괜찮아요. 키워 쓰면 되죠.”
“무섭네 완전 장기 프로젝트.”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쌤이 대박 나면 제가 인터뷰할 거예요.”
“뭐라고요?”
“‘무명 시절부터 제가 알아봤습니다.’”
사내가 터져 웃었다.
“지분 주장하시네.”
“당연하죠. 초기 투자자입니다.”
“투자한 거 없잖아요.”
“응원은 했잖아요.”
“그건 인정.”
잠깐 웃음이 잦아들었다.
여인이 부드럽게 덧붙였다.
“진짜예요. 잘됐으면 좋겠어요.”
사내는 잠시 창밖을 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럼 누나 대통령 되는 날까지는 써야겠네요.”
“약속했어요?”
“네. 그때까지 계속 글 써볼게요.”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국가 프로젝트네.”
차 안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여인의 차와 도로 위의 차량들은 일정한 속도로 조용히 흐르며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운명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왜요?”
“만약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누나와 이렇게 이야기할 기회도 생기지 않았겠죠.”
“그런가요?”
“네. 저는 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니까.”
“그거 정말 심오한 말이네요 쌤.”
“그래서 저도 제가 저를 보면 신기하다니까요?”
“신기하다니요? 저는 그런 쌤이 멋지고 좋은데요?”
“원래 나라는 존재는 이렇게까지 깊은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사람으로 변질돼 있다는 거예요.”
“어머 쌤 변질이라니요.”
“진짜 저는 글 쓰기 전과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면 진짜 변질된 거 같아요.”
“쌤도 참.”
“그래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 의지 하나로 13년이나 걸쳐서 책 한 권 완성한 나 자신이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요.”
“그거 정말 대단한 거예요 쌤 다른 사람들은 글 쓰다가 포기하는 게 다반사예요”
“그래요?”
“그럼요. 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잖아요.”
사내가 조용히 웃었다.
“맞아요. 누구랑 싸우는 줄 알았는데 결국 저랑 싸우고 있더라고요.”
“어떤 걸로요?”
“의심이요. 이게 맞나, 계속 써도 되나, 아무도 안 읽으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들이요.”
여인은 잠시 말을 고르고 말했다.
“그래도 13년이면 이미 답은 나온 거 아닌가요?”
“무슨 답이요?”
“포기 안 했다는 거요.”
사내가 잠깐 말을 멈췄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13년 이 면요, 그냥 취미가 아니에요. 거의 인생이죠.”
“그렇게까지요?”
“그럼요. 13년 동안 한 가지를 붙들고 있었다는 건 그건 그냥 좋아서 되는 게 아니에요.”
사내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결국은 계속 쓸지 말지 항상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이상한 건 어느 순간부터 안 쓰면 찝찝해지더라고요.”
여인이 피식 웃었다.
“그게 제일 무서운 거죠. 안 쓰면 마음이 불편한 거.”
“그래서 쓰는 거예요. 쓰기 싫어도 글이 저는 붙들고 있다니까요.”
“그래도 13년 이 면요, 그건 이미 사명감이에요.”
사내는 잠깐 생각하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가끔은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지 싶다가도”
“하다 보면?”
“다시 쓰고 있어요.”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미 답 나온 거네요.”
“뭐가요?”
“쌤은 결국 계속 쓸 사람이라는 거.”
“그럴지도요.”
사내가 웃었다. 그리고 그는 여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누나는요?”
“네?”
“왜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여인이 피식 웃었다.
“제가 진짜 될 것처럼 말하네요?”
“아까 스카우트 얘기까지 나왔잖아요.”
여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요 세상에 불공평한 게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바꾸고 싶다?”
“거창하죠?”
“아니요. 멋있어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차는 일정한 속도로 도로를 따라 나아가고 있었다.
사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우리 둘 다 좀 위험한 사람들이네요.”
“왜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잖아요.”
여인이 살며시 웃었다.
“그럼 우리 둘 다 성공하면 신문에 나겠는데요?”
“문학으로 세상을 흔든 작가와 대통령의 은밀한 관계.”
사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누나 제목 뽑는 센스 있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먼저 알아본 거라니까요.”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래도요.”
“네?”
“13년은 진짜 저도 가끔 놀라요. 어떻게 버텼는지.”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운명이었나 보죠.”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선명해지는 사이, 어느새 여인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차도 목적지에 도착한 듯했다.
부드러운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춰 섰고, 여인은 주차를 마치자 자연스럽게 시동을 끄고 차키를 뽑았다.
“내려요, 쌤.”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한 거예요?”
“그럼요 얘기하다 보니까 금방이죠?”
“네. 누나.”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 역시 벨트를 풀며 문을 열었고, 밤공기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방금까지 이어지던 대화의 온기가 서서히 식으며, 두 사람은 나란히 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