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60

9화

by 가비

[또각또각]

[또각또각]

여인의 구둣발 소리가 힘없이 바닥을 스쳤다. 오늘 겪은 일들이 발걸음마다 무겁게 느껴졌다.

“선생님 오셨어요?”

“그분은 아직 안 보이시네요.”

“곧 오실 거예요.”

식당 직원이 그녀를 안내하며 넓은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여인은 앉자마자 물과 손수건을 먼저 받아 들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오늘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 시위, 생각보다 심했네요. 참석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거의 안 오다니”

“정말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었어요. 오후 더운 시간대라 그런지 거의 안 나왔더라고요.”

“그래도 최소한 우리 목적을 알리긴 했겠죠?”

“글쎄요 개고기 장사하는 사람들은 아예 우리 무시하고, 지나가는 시민들 반응도 무관심했어요. 관심을 받았다고 하긴 힘들었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음식점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여인은 혹시나 하는 얼굴로 입구 쪽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여기에요”

중년의 남성은 여인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서둘러 사내와 여인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온 그는 여인의 옆에 조용히 앉으며 말했다.

“오늘 고생 많으셨네요.”

여인의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성이 사내와 여인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네. 예상보다 더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잘 마쳤습니다. 뭐, 오기로 한 사람들은 오지도 않았지만.”

"그거 참 상심이 컸겠어요 두 분 다."

회장은 테이블 위로 놓인 물과 손수건을 살피며, 여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시위 현장에서 겪었던 구체적인 상황과 느낀 감정으로 이어졌다.

"오늘 우리 쌤이 고생이 많으셨네요."

"전 그냥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간 거뿐입니다."

사내는 살며시 웃는다.

"그래도 같이 가준 게 어딥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인 저 초차도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는데."

"약속 있으셨던 거 아니었나요?"

"약속보다 우리 한 선생님을 돕는 일이 우선이었다면 같이 갔겠죠?"

"회장님!"

"농담입니다 농담. 한 선생님 저는 우리 쌤이 고생을 많이 했다는 걸 칭찬한 겁니다."

세 사람이 오손도손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주문한 음식이 준비되자, 종업원이 넓은 쟁반을 두 손에 올리고 조심스레 걸어왔다.

여인의 옆에 앉은 회장이 눈치를 살피며 미소 지었다.

“자, 이제 맛있는 거 나옵니다.”

종업원은 테이블 앞에 서서 주문한 음식들을 하나둘씩 테이블 위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먼저 신선하게 썰린 모둠회가 접시에 가지런히 담겨 올려졌다. 회의 윤기가 세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서 튀김, 각종 밑반찬, 작은 접시에 담긴 채소와 소스들이 정성스레 배열되었다.

각 접시는 서로 조금도 겹치지 않게, 마치 그림을 그리듯 테이블 위에 놓였다. 숟가락과 젓가락, 작은 접시까지 차례로 맞춰져, 한눈에도 정갈한 상차림이 완성되었다.

여인은 잠시 숨을 고르며 테이블 위를 바라봤다. 상심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여인의 눈앞에 준비된 음식들은 그리고 함께 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은 그녀에게 오늘 겪었던 고단함을 날려줄, 훌륭한 버팀목이었다.

여인이 살짝 감탄하며 말했다.

“우와..!! 오늘 상차림 정말 깔끔하네요."

사내는 눈을 반짝이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이렇게 정갈하게 놓여서 그런지 더 맛있어 보이네요.”

회장은 잔잔하게 웃으며 술병을 들어 사내에게 권했다.

“자, 오늘 고생 많았으니 한 잔 하시죠. 음식도 준비됐으니 즐기면서 이야기 나눠야죠.”

여인은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쌤, 끊으셨다고 안 했어요?”

사내는 손을 저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누나. 이렇게 음식이 맛있게 차려진 걸 보면, 한 잔 정도는 기분 좋게 마셔야죠.”

회장은 사내에게 술잔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자, 오늘 하루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 잔 하시죠.”

"감사합니다."

중년의 남성은 가볍게 웃으며 사내의 술잔을 채워준다.

“오늘 힘든 두 분에게 있어서는 하루였겠지만,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맛있는 음식과 술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법이죠. 자, 건배!”

세 사람은 술잔을 부딪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잔잔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곧 사소한 농담으로 이어졌다.

사내가 회장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오늘 음식보다 술이 먼저 사라질 기세네요."

"사라진 술은 다시 잡아 오듯 주문하면 됩니다 물론 결제는 우리 한 선생님이 하실 거 거요."

"어머. 회장님."

여인은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사내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세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오고 가고 술 잔도 여러 번 채워지고 비워진다.

이제는 중년의 남성과 사내가 몇 잔 째 주고받은 것인지 횟수도 흐릿했다. 사내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중년의 남성은 회를 집어 들었고, 여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쌤, 천천히 드세요.”

사내는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누구입니까. 미래의 문학특보 장관 아닙니까.”

여인이 얼굴을 붉히자 중년의 남성이 웃으며 잔을 들었다.

“이야기가 거기까지 갔으면 한 잔 더 받아야지요.”

“감사합니다, 스님.”

사내의 술잔이 다시 채워졌다. 사내는 잔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단숨에 비웠다.

“스님이 그러셨죠. 제 책을 읽고 무슨 생각으로 이런 내용을 썼는지 모르겠다고.”

공기가 살짝 무거워졌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가난했고, 부모님들은 가난 때문에 이혼을 하셨죠.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졌습니다.

사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겨울이면 할아버지가 새벽마다 나무를 하러 산에 가셨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죠.”

그의 시선은 빈 잔에 머물렀다. 그리고 옅은 미소가 스쳤다.

“집에 한자로 쓰인 오래된 책이 많았어요. 그래도 저를 위해서 사놓으신 책들도 있었지요. 그중에 김유신 장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또 삼현파거든요?”

“하..!! 하..!!”

“혼란한 시대에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던 사람. 완벽한 인물이었죠. 적어도 그분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시선은 빈 잔에 머물렀다.

“그때 처음 생각했습니다. 나도 선조 김유신 장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사내는 천천히 자신의 비워진 술잔에 스스로 술을 따른다.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썼죠.”

잠시 멈춘 뒤, 낮게 이어졌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이 나라의 권력 구조 한가운데 성령의 방패가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요.”

여인의 표정도 중년의 남성의 표정도 동시에 굳었다.

“정치, 교육, 법, 이 나라는 겉으로는 분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얽혀 있죠. 국민이 쥔 주권이 의 성령의 방패권력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었습니다.”

사내의 눈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나라를 이끌어야 할 건 국민이지, 신의 권능을 대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중년의 남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쌤이 구세가 있으시구먼.”

중년의 남성은 천천히 사내를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방패와 정면으로 부딪치면.... 순교자가 생깁니다. 그러면 싸움은 명분을 잃어요.”

술이 다시 채워졌다.

“한국은 나라보다 성령의 방패에 충성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감정으로 건드리면 역풍이 옵니다. 혼란보다 질서가 낫습니다. 쌤.”

사내는 말없이 잔을 들어 비웠다. 비워진 술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는 그의 손이 조금 떨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분위기 무겁게 만들었네요. 죄송합니다. 먼저 가볼게요.”

휘청거리며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두 사람은 말없이 바라봤다.

중년의 남성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많이 취했네요.”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멀쩡해요.”

그녀는 남겨진 술잔을 들여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중년의 남성은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고 여인의 표정을 살핀다.

“정말. 너무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취한 척한 거예요. 아마. 결심을 숨기려고. 쌤과 이별을 준비해야 될 거 같아요.”

중년의 남성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여인은 남겨둔 술잔을 들었다.

“쌤은 머리가 너무 좋아요.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다 계산했을 거예요.”

잔을 비운 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머리 아파졌네요.”

여인의 두 눈에 맺힌 눈물은 여전히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중년의 남성은 여인을 위로하듯 마른 휴지를 여인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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