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67

15화

by 가비

어느새 하늘도 땅도 어둠으로 물들고 있었다. 가로등도 하나둘 켜지며 거리를 밝히기 시작했다. 낮의 소음은 사라지고, 침묵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의 죽음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를 살려 둘 수 없었던 현실이 더 원망스러운 것일까.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죄책감인지, 체념인지 그 감정의 정체는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운전대를 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는 온기를 잃은 채, 얼음처럼 식어 있었다. 어쩌면, 그녀와 함께 있던 그 남자에게 그 청년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죽음은 언제나 사람 안에 무언가를 남긴다. 그것은 그녀에게도 무언가를 남겼을 것이 분명했다.


한참을 운전하던 그녀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타이어가 짧게 울렸다. 도로 한가운데, 무언가가 보였다.

로드킬이라도 당한 것일까.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이제 막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작은 혀로 죽은 어미의 몸을 핥으며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새끼 고양이가 등을 세웠다.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날 선 숨을 토해냈다.


하악—


겁에 질린 경계였다.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은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었다.

"괜찮아. 두려워하지 마."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널 해치지 않아."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새끼 고양이는 등을 더 세웠다. 작고 가느다란 이빨을 드러내며 날 선 숨을 토해냈다.


하악—


뒷걸음질 치는 발끝이 위태롭게 떨렸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도망치려는 존재와, 붙잡으려는 손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포기하는 법을,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녀는 이미 식어버린 어미 고양이의 몸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차갑게 굳은 털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낮게,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나랑 가자."


그러나 새끼 고양이는 물러섰다. 여전히 날 선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제발.. 너를... 도와주고 싶어."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쉽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어미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젖어들었다. 굵은 눈물이 떨어져 이미 식어버린 털 위로 스며들었다.


"한 번만… 기회를 줘."


그 순간, 새끼 고양이의 경계 어린 숨이 잠시 멎었다.


새끼 고양이의 날 선 숨이 점점 잦아들었다. 등을 세우고 있던 작은 몸이, 아주 천천히 풀렸다. 경계 어린 눈동자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도망칠 기회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손을 내민 채, 그저 기다렸다.


잠시 후,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한 발, 또 한 발 앞으로 옮겨졌다. 작은 코가 그녀의 손끝을 스쳤다. 미약한 온기가 닿았다. 그 순간, 그녀의 숨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어미 고양이의 차가운 몸을 한쪽 팔로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른 팔로 새끼 고양이를 천천히 품에 안았다. 처음엔 버둥거렸지만, 이내 작은 몸이 그녀의 가슴에 붙었다. 아주 작고 연약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조용히 일어나 차로 향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한 손에는 식어버린 어미를, 다른 팔에는 아직 살아 있는 새끼를 안은 채. 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어미 고양이의 시체를 보조석에 눕혔다. 그리고 어린 새끼 고양이는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그 모습은 마치 이 아이만큼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마저 보였다.


엔진이 다시 켜졌다. 헤드라이트가 어두운 도로를 가르며 빛을 뿜었다. 오늘, 그녀는 하나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또 하나의 생명은 지키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그녀는 다시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지그시 밟았다. 다만, 이번에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이 떨리지 않았다. 목적지를 향하는 그녀의 차는 어둠을 가르며 도로 위를 달렸다. 마치 오늘 겪었던 일을 영원히 잊으려는 것처럼.


도로 위를 달리던 그녀의 차가 멈췄다. 마치 더는 나아갈 곳이 없는 것처럼. 어느새 집 앞이었다.


그녀는 문을 열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은 채,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을 한참 바라보았다. 차는 멈춰 있었고, 그녀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그녀의 시선이 보조석에 놓인 어미 고양이의 시체와 품에 안긴 새끼 고양이에게 머물렀다.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두 존재를 한 번 더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들을 끌어안은 채 문을 열고 내렸다. 집 안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열리자, 안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 와 있었다. 부모님일 리는 없었다. 침입자일 가능성도 없었다. 그녀의 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 빨랐다.


"어서 와, 므아."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의 숨이 무너졌다.


그녀를 반기는 남자는 군복 차림이었다. 벗지 못한 군복의 어깨선은 반듯했고, 단추는 끝까지 채워져 있었다. 밝은 거실 조명 아래에서 계급장은 선명하게 빛났다. 정확히 무슨 계급인지는 몰라도,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위치라는 것은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낯설지 않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정이 가는 인상이었다. 핏기는 옅었지만, 눈빛만큼은 차분했다.


어미 고양이의 시신과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나 좀... 도와줘, 카즈마."

그 말과 함께, 긴장이 끊어지듯 풀렸다.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카즈마가 다급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품 안을 보고 멈칫했다.

"므아... 너...?"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오늘…"

숨이 떨렸다.

"한국의 미래... 물거품으로 만들고 왔어."

그녀의 얼굴이 힘을 잃고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녀는 안고 있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승환이도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카레스 명령이라서 어쩔 수 없었어. 난... 살려주고 싶었는데..."

카즈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는 젊은 청년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나 오늘... 죽이면 안 됐는데... 그 사람... 살아 있었어야 했는데.."

그동안 참고 있던 그녀의 감정이 무너졌다. 세상을 원망하듯, 그녀는 카즈마의 품에서 터져 나오듯 울기 시작했다.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살릴 수 없었다.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죽는 순간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이 막히도록 울었다.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카즈마는 그녀를 안은 채, 자신의 품에서 울다가 지쳐서 잠들 때까지 머리와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그 곁에서 새끼 고양이는 식어버린 어미를 멈추지 않고 핥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주제 파악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