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부드러운 빛이 방 안을 천천히 채우며,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므아의 얼굴을 비추었다.
므아는 아직 깊이 잠들어 있었다. 햇살에 비친 그녀의 머리카락이 은은하게 빛났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숨결이 방 안의 평온함을 더 부드럽게 만든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는 군복을 입고 있는 카즈마는 잠들어 있는 므아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그의 옆에는 므아의 반려견 쭌도 자리를 잡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침 햇살이 그의 어깨와 쭌의 털 위에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쭌이 고개를 들어 카즈마를 한 번 올려다보더니, 다시 얌전히 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쭌이 바닥에 내려놓은 자신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충분히 편안하다는 듯이. 카즈마는 그런 쭌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카즈마의 걱정 어린 시선이 므아를 향했다. 하지만, 카즈마의 시선과는 반대로 잠들어 있는 므아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걱정에서 잠시 벗어난 사람처럼.
카즈마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레스가 ……대체 무슨 명령을 내렸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므아야...."
그는 낮은말로 중얼거린 뒤 옆에 얼굴을 바닥에 묻고 있는 쭌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쭌의 작은 귀를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
쭌이 고개를 들었다.
카즈마는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는 녀석의 코 끝을 툭 건드렸다.
쭌이 작은 발로 그의 손을 탁 쳐냈다. 카즈마의 입 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오호라? 해보자는 거지?"
므아가 잠들어 있는 것도 잊은 채 개와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카즈마가 조용히 웃으며 다시 손을 뻗었다. 마치 너 계속 까불면 앞으로 피곤해질 줄 알아?라는 느낌이었다.
[멍..!!]
결국 쭌이 몸을 꿈틀거리다가, 참지 못하고 짧게 짖었다. 그리고 결국 그 소리가 아침의 고요함 위에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떨어졌다.
침대 위에서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이불속에서 므아가 눈을 떴다. 그녀의 두 눈에는 아직도 피곤함이 가득했다.
"뭐야...? 정말... 사람 자는데..."
그녀는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미안, 쭌이 심심하다면서 놀자고 해서."
물론 거짓말이었다. 므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반려견 쭌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쭌이가 너한테 놀아 달라고 할 일이 뭐가 있다고."
그녀가 쭌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쭌 엄마한테 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쭌이 침대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더 안 자도 돼?"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다그치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지켜 줄 테니 안심하고 더 자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므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불을 끌어안은 채,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카즈마를 바라봤다.
"어제 구조한 고양이는?"
카즈마가 므아의 방 한쪽에서 지쳐 잠든 고양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고양이는 자신이 겪은 일을 잊은 것처럼 얼굴을 몸에 파묻은 채 잠들어 있었다. 물론 어린 고양이 곁에는 우유가 담긴 작은 그릇도 놓여 있었다.
"어미 고양이 시체는?"
"작은 박스에 담아뒀어. 나중에 같이 묻어주자."
말끝은 흐렸지만 목소리 그의 다정함 묻어 있는 목소리에는 므아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손을 이불 위에 올려놓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잠깐 번지려다 말았다. 마치 어제 자신이 저질러야만 했던 일이 악몽처럼 떠오른 것 같았다. 그녀의 두 눈에 곧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흘러내린다.
카즈마는 잔뜩 놀라며 가까운 곳에 놓여 있는 휴지를 한통 그녀에게 가져다준다.
"그냥 내가 닦아 줄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즈마는 그녀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휴지로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혹시라도 휴지의 거친 가장자리에 그녀가 다칠까 봐, 그의 손길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눈물을 한꺼번에 흘려버린 것인지 므아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걱정 끼쳐서."
"아냐 이제 괜찮아?"
"괜찮은 거 같아"
므아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 주던 카즈마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쭌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더 누워 있지"
"됐어. 어미 고양이 시체가 묻어 주자"
"그럴까?"
므아는 대답 대신 이불을 옆으로 밀어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앉았다. 잠기어 있던 몸이 아직 무거워 보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또렷해 보였다.
곧 그녀의 맨발이 바닥에 닿았다. 차가운 감촉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온몸으로 번지며, 잠에 잠겨 있던 정신을 조금씩 깨워 갔다.
카즈마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앉아 있던 의자를 한 손에 들었다. 그리고 의자를 안전한 곳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므아는 천천히 잠들어 있는 고양이에게 까치발로 다가갔다. 고양이 곁에 다가간 그녀는 조용히 쪼그려 앉아 어린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어린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므아의 얼굴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이 고양이만큼은 반드시 지켜 주겠어라고. 므아가 잠들어 있는 어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순간. 동물의 위험을 감지하는 육감이 발동이라도 한 것일까?
가까이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므아와 눈이 마주치자 어린 고양이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곧 작은 몸의 털을 부풀리며 등을 세우고 경계하듯 하악질했다.
"아.. 놀랬구나 미안해 고양아.. 걱정 마 그래도 널 헤치려는 게 아니야."
므아의 진심을 알아본 것일까? 고양이는 순간 얌전해졌다.
"네 엄마 고양이 묻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
그렇게 말을 하며 므아는 어린 고양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딸깍...]
고양이를 가슴에 품고 있는 므아의 한 손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방문의 손잡이에 닿았다. 방문이 열리고 므아는 잠시 문 앞에 서 있다가 한 걸음 밖으로 나섰다. 방 안에 남아 있던 따뜻한 공기와는 달리 복도는 조금 더 차분하고 서늘했다. 카즈마도 그녀의 뒤를 따라 조용히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의 뒤에는 쭌이 꼬리를 살짝 흔들며 두 사람을 따라 나왔다. 세 존재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이 되어 복도를 따라 이어졌다.
2층 복도는 평온했다.
므아는 말없이 앞으로 걸었다. 맨발로 걷는 그녀의 발걸음은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발바닥에 닿는 하얀 대리석의 차가운 감촉이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그녀의 몸을 현실로 끌어오고 있었다.
곧 므아의 발걸음이 계단 첫 칸 위에 닿았다.
그녀는 천천히 다음 칸으로 발을 옮겼다.
한 칸. 두 칸. 세 칸.
뒤에서는 카즈마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 내려오고 있었고, 쭌은 계단을 가볍게 내려오며 둘 사이를 오갔다. 가끔 발톱이 나무 계단에 살짝 닿으며 작은 소리를 냈다.
계단 옆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길게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부드러운 빛이 계단 위에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그 빛은 가장 먼저 므아의 어깨와 머리카락을 비추었다. 이어서 한 걸음 뒤에 있던 카즈마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갔고, 마지막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쭌의 등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세 존재의 그림자가 계단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
계단 아래쪽에서는 거실의 풍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난간 사이로 보이는 거실의 바닥, 소파의 윤곽, 그리고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아침 빛.
한 칸씩 내려갈 때마다 거실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집 안의 공기는 여전히 조용했고, 아침의 느린 시간만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 존재는 계단의 마지막 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실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리고 거실을 지나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현관문 가까이에는 종이 박스가 놓여 있었다.
"어미 고양이를 담아 놓은 박스야. 내가 들고나갈게."
카즈마가 종이 박스를 번쩍 들어 올렸다.
[끼익...]
므아의 손이 현관문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문이 열리자 세 사람과 한 마리는 조용히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미 고양이를 묻어 줄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카즈마의 한 손에는 삽 하나도 쥐어져 있었다.
어린 고양이를 끌어 안은채 므아는 계속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그녀의 걸음이 곧 멈추게 되었다.
그녀의 걸음이 멈추게 된 장소에는 죽은 사람의 산소가 있었다. 관리가 된 것인지. 잡초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산소 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08년 7월 14일 광휘의 여신 아휘 이곳에 편히 잠들다.]
므아의 가족일까? 아니면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만이 아는 듯했었다.
"다음 주에 아휘 기일이네."
카즈마가 어미 고양이가 담긴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금도 살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마도 산소에 잠들어 있는 그 존재는 므아에게도, 카즈마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었던 듯했다.
"아휘 산소 옆에 묻어 주자 카즈마, 그럼 잘 부탁해."
어린 고양이를 품에 끌어안고 있던 므아가 말했다.
"알았어."
카즈마는 집을 나서며 가져온 삽을 한 손에 쥐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으로 힘껏 땅을 내려칠 때마다 땅이 파이고 흙이 갈라졌고, 그의 팔 근육이 꿈틀거리며 단단하게 움직였다.
"혹시라도 다른 동물이 와서 파헤칠지도 모르니까 상자를 통째로 넣을 수 있을 만큼 깊게 파자."
"알았어. 맡겨 둬."
카즈마가 한참 동안 삽을 움직이자 어미 고양이가 담긴 상자를 묻을 만큼의 깊이가 만들어졌다.
므아는 어린 고양이를 잠시 내려놓고 종이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카즈마가 파 놓은 구덩이 속으로 천천히 내려놓았다.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던 므아는 이내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 맨손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던 흙을 모아 상자 위에 덮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즈마가 놀란 듯 말했다.
"므아야, 그냥 비켜 봐. 내가 할게."
카즈마는 그녀를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뒤로 물리며 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서둘러 종이 상자 위로 흙을 덮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카즈마의 노력으로 어미 고양이가 담겨 있는 박스가 흙으로 완전히 덮혀졌다.
므아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새로 돋아난 흙무덤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쭌도 그녀의 곁에 얌전히 앉아 코를 살짝 킁킁거렸다. 마치 자신도 무언가를 느끼는 것처럼.
바람이 지나갔다.
아직 아침이라 공기 속에는 서늘함이 남아 있었다. 풀잎들이 낮게 흔들리며 어미 고양이의 마지막 자리를 조용히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카즈마는 말없이 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아휘의 비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잘 쉬어."
므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미 고양이에게 한 말인지, 아휘에게 한 말인지, 아니면 그 둘 모두에게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에는 그녀가 담을 수 있는 모든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므아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어린 고양이를 다시 품에 안아 올렸다.
"네 엄마는 좋은 곳에 갔을 거야. 너무 걱정 마."
어느새 다시 품에 끌어안은 어린 고양이를 바라보며 므아가 말했다.
"그리고 네 이름은… 슬픔을 간직한 어린 고양이라는 의미에서 애린으로 하자."
므아는 어린 고양이 애린의 두 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애린은 므아의 품 안에서 작게 몸을 웅크렸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더 이상 하악질 하지 않았다. 두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므아의 온기를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세 존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침이 시간이 지난 햇살이 그들의 뒷모습을 포근하고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세 존재는 그 따스하고 포근한 빛을 받으며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다시 조심스럽게 닫힌다.
어느새 므아의 품속에서 애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더는 그 아이의 마음속에 걱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긴 아픔의 끝에서, 어린 고양이는 마침내 새로운 행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