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선언 포츠담 선언
조선 독립에 결정적 영향을 준 선언
1943년이 넘어가자 독일제국도 일본제국도 패퇴하기 시작했다. 연합국에선 종전 이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카이로에 모여 회담을 가지고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1943년 11월 22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연합국 측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중국의 장제스 위원장이 모여 회의를 하고 합의한 내용을 12월 1일에 발표했다. 이것이 한국의 독립을 강대국들이 처음 논의한 “카이로 선언”이다.
오역을 피하게 위해 영문판 중문판을 원문 그대로 살펴보자. 한국이 언급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리 세 연합국(영 중 미)은 조선민중의 노예상태를 생각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in due course)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된 상태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in due course의 해석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한국의 독립이 강대국 사이에서 거론된 자체가 고무적이었다. 중문판에선 “상당기간 후”라고 나와있었다. 당시 식민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영국의 처질 입장에선 껄끄러운 문장이었지만 카이로 선언엔 한국의 독립에 관한 내용이 실리게 되었다.
영국은 영일동맹 때 조선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었고 미국은 가스라-테프트 밀약에서 일본의 조선지배를 인정했었기 때문에 사실 조선이란 나라는 일본의 일부라고 생각했었고 별 관심도 없었지만 카이로 선언에 조선의 독립이 포함된 건 중화민국 장제스 대표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역사책이나 강의에선 우리 민족의 끝없는 독립운동과 윤봉길 선생의 의거를 본 장제스가 감동해서 카이로 선언에 한국의 독립을 넣었다고 얘기하지만, 이건 너무 감성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 정치에선 철저하게 자국의 실리로 움직인다. 장제스의 입장에서 보면 전후에 중국의 영토랑 일본의 영토가 접하게 되면 안보상 매우 좋지 않다고 판단한 걸로 보인다. 마치 한국전쟁 때 모택동이 참전한 이유랑 같다. 러시아의 푸틴이 서방화되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비슷하다.
장제스는 예전처럼 중국의 영향력하에 있는 조선을 두어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 넣었지만 이 또한 조선에서 일본이 철수하게 만드는 결정적 문구였기 때문에 조선이 탈일본해서 독립할 수 있게 만든 구절이라고도 볼 수 있다.
in due course란 문구는 신탁통치를 염두해서 넣은 말처럼 해석이 된다. 미국도 중국도 조선을 일정기간 신탁통치해서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했던 거 같다.
어쨌든 이 카이로 선언의 문구는 2년 뒤 포츠담 선언에도 언급이 된다.
2년 뒤 패전한 독일의 한 도시 포츠담에서 연합국 대표들이 다시 모인다. 중일전쟁 막바지라 참가를 못한 장제스는 추후서명으로 대신하고 참가를 못했고 서명으로 대체했지만 영국대표 미국대표 소련대표가 참여했다. 이 포츠담선언에선 패망직전의 일본을 향해 무조건적인 항복과 그 요구조건을 발표했다.
그중 제8항은 조선에 매우 중요했다. 다음과 같았다.
『The terms of the Cairo Declaration shall be carried out and Japanese sovereignty shall be limited to the islands of Honshu, Hokkaido, Kyushu, Shikoku and such minor islands as we determine.』
『<카이로 선언> 조건은 이행되어야 하고, 일본의 주권은 혼슈 섬과 홋카이도 섬과 규슈 섬과 시코쿠 섬과 우리가 이미 결의한 바와 같은 소규모 섬들로 제한되어야 한다.』
포츠담 선언의 이 문구 하나가 조선의 독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포츠담 선언>을 거부하고 전쟁을 지속한다는 일본은 원자폭탄 2방과 소련의 선전포고를 듣고 1945년 8월 15일 <포츠담선언>을 수용하면서 무조건적인 항복을 한다.
마지막까지 천황제와 조선반도 대만섬의 일본화를 요구조건으로 걸었던 일본제국이 <포츠담 선언>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함에 따라 조선반도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반도 분할에 대해 논의한 적도 있던 조선반도는 조선의 독립도 강대국끼리 모여 쓴 문장 하나에 독립이 된 셈이다. 1930년대 1940년 초 일본이 “조선 반도과 대만섬”을 일본화하려고 온갖 노력을 한 걸 기억한다면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선언의 문장들은 조선민족에게 일본으로 독립할 수 있게 한 가장 강력한 현실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