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주름 하나에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듯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시간은 공평하다는 말이 이토록 잔인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낡았다는 자각은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공포다. 가능성은 줄어들고, 책임은 무거워지며, 피부의 탄력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려 애쓰며 산다. 창밖의 풍경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찬란한데, 나의 시간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무력감은 깊은 밤 잠을 설치게 한다. 젊음이라는 빛나는 훈장을 하나씩 반납해야 하는 과정이 상실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이가 들면 마음이 편안해져." 하지만 나는 그 평온이 정체가 아니라 쇠락일까 봐 두렵다. "시간이 참 빠르죠?" 누군가 건네는 인사가 비수처럼 꽂힌다. 빠르다는 것은 곧 사라짐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나의 수식어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세계는 조금씩 빛을 잃는다. 하지만 늙는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축적이다. 수많은 계절을 통과하며 얻은 흉터와 웃음들이 지금의 나를 빚어냈다. 주름은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삶을 견뎌온 훈장이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가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사실은 나 스스로가 나에게 가장 먼저 말해주어야 할 진실이다. 지는 해가 뜨는 해보다 더 붉고 깊은 색을 내듯, 삶의 황혼도 그만의 장엄한 색채가 있음을 믿고 싶다. 공포는 미지에서 오지만, 나이 듦은 이미 지나온 길들이 쌓여 만든 단단한 대지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시간이 내려앉았다. 그들의 눈가에 잡힌 주름을 보며 나는 나의 미래를 예감한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지워져 가는 계절을 목격한다. 젊음이라는 눈부신 갑옷을 벗어 던졌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연약함이 두렵다. 하지만 그 연약함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것은 아무런 이야기도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상실의 과정이 아니라, 무엇이 소중한지를 걸러내는 체질과 같다. 불필요한 욕망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평온이라는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육체는 시들어가겠지만 영혼의 심지는 더 단단하게 타오를 수 있음을 믿는다.
"나이 드는 게 무서워요." 어린 친구가 속삭일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나는 그에게 시간이 주는 선물을 아직 설명할 자신이 없다. 나조차도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같은 강을 건너고 있다는 사실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이 공포를 조금은 덜어준다.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듯이, 흐르는 시간을 거부할 수는 없다. 대신 그 물결에 몸을 맡기고 내가 가닿을 바다를 상상해본다. 그곳은 어쩌면 청춘보다 더 깊고 고요한 평화가 깃든 곳일 것이다. 늙어가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 가장 가깝게 만나는 여행이다. 낡아가는 외벽 아래서 더 견고해지는 기둥을 발견하는 일이다. 나는 이제 거울 속의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그 주름 사이에 깃든 나의 수많은 밤과 낮을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