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카페 옆자리의 수다도, TV 속 연예인의 웃음소리도, 심지어는 나를 걱정하는 친구의 다정한 안부조차 귀를 찌르는 소음으로 변질된다. 단어들이 공중을 떠다니다 내 고막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다. 의미 없는 말들의 성찬이 피로하다. 누군가 말을 걸어올 때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셔터를 내리고 싶어진다. 모든 발화에는 무게가 있고, 나는 지금 그 무게를 지탱할 힘이 없다. 타인의 음성에서 묻어 나오는 욕망과 불안이 내 평온을 어지럽힌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그것이 타인의 입술을 떠나 내게 닿을 때, 그것은 침범이 된다.
"잠시만 조용히 해줄래?" 속으로 수만 번 외치는 문장이다. 침묵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요건이 된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욕망과 불안과 기대가 섞여 있어, 그것을 받아내는 일은 고도의 감정 노동이다. 마음이 가득 찼을 때, 타인의 소리는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아무것도 재생하지 않은 채 거리를 걷는다. 소리를 차단하는 행위는 세상으로부터의 도망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요새다. 고요 속에 머물 때에야 비로소 나의 내면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타인의 목소리가 싫어진 것은, 아마도 내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를 외부에서 구하며 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울림은 정적 속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살갗을 스치는 기분이 든다. 그들은 왜 그토록 많은 말을 쏟아내야만 하는 걸까. 침묵이 가져다주는 안식을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대화가 끊기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더 깊은 동굴로 숨고 싶어진다. 언어는 때로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되고, 침묵은 그 장막을 걷어내는 힘이 있다. 나는 이제 그 정적의 힘을 빌려 나를 정화하고 싶다.
"무슨 생각 해? 왜 아무 말이 없어?" 상대의 질문이 날아와 내 고요를 깨뜨린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미소만 짓는다. 그 미소조차 이제는 힘에 부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완벽한 무음의 세계다.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나의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 그것만으로도 내 세계는 충분히 꽉 차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때로 영혼의 침범처럼 느껴진다. 내가 허락하지 않은 주파수가 내 공간을 어지럽히는 것이 싫다. 모든 소리가 멈춘 자리에 남는 것은 투명한 공기뿐이다.
나의 귀를 막고 세상의 전원을 끄고 싶다. 고요는 무겁지 않다. 오히려 세상의 어떤 말보다 가볍고 자유롭다.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나는 오늘도 사람들을 피해 골목으로 숨어든다. 언젠가 다시 타인의 목소리가 음악처럼 들릴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나를 감싸 안아주는 두터운 정적뿐이다. 고요의 침잠 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쉰다. 소음이 걷힌 자리에는 맑은 영혼의 결이 드러난다. 나는 그 결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을 비축한다. 침묵은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