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생각은 출구 없는 미로 속에 갇혀 같은 길만을 반복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한 고민이 오늘 아침의 식탁 위에도 여전히 김을 내뿜으며 올라와 있고, 창밖의 풍경은 계절을 갈아입는데 내 머릿속의 시계는 고장 난 초침처럼 특정 구간에서 덜컥거리며 멈춰 서 있습니다. 생각의 꼬리를 무는 행위는 처음엔 신중함의 발로였으나 이제는 나를 갉아먹는 습관적인 굴레가 되어 나를 지치게 합니다.
"왜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니?"
거울 속의 내가 묻지만, 나는 대답 대신 다시 그 지겨운 생각의 첫 문장을 더듬거릴 뿐입니다.
"길을 잃은 것 같아, 아니면 길 자체가 원형으로 설계된 것일까."
생각의 쳇바퀴는 너무나 견고해서 한 번 발을 들이면 원심력에 의해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질문은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에 매몰되어 안전함을 느끼려는 비겁한 위안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 고통 속에 머무는 것이, 알지 못하는 평온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덜 두렵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점점 닳아 없어지는데 생각의 부피만 비대해져서, 이제는 잠을 청할 때조차 그 생각들이 침대 머리맡을 점령하고 나를 흔들어 깨웁니다.
"이건 아마도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야."
누군가 옆에서 속삭여준다면 차라리 마음이 놓일 텐데, 세상은 고요하고 오직 내 머릿속에서만 수만 명의 내가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론 없는 논쟁을 이어가며 나를 피로의 늪으로 밀어 넣고,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그들의 대화를 관람하는 방관자가 됩니다. 한 번 시작된 생각의 파동은 잔잔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벽을 치며 되돌아옵니다.
"이제 그만 멈춰도 괜찮아."
나 스스로에게 이 말을 건네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했을까요. 생각은 생명체와 같아서 먹이를 줄수록 커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만약에'라는 이름의 먹이를 던져주고 있었을까요. 이제는 그 생각을 끊어내기보다, 그 생각이 흐르도록 방치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낍니다. 억지로 막으려 할수록 댐은 터지기 마련이고, 그 범람의 끝에서야 비로소 나는 진실한 휴식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냥 흘러가게 둬, 결국은 바다로 갈 테니까."
나의 뫼비우스는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어 결국 우주로 흩어질 것이라 믿으며,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그 지겨운 생각의 끝자락을 가만히 놓아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