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계획이 다 틀어졌을 때

by 동이

눈을 뜨자마자 세워두었던 완벽한 시간의 성벽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우리는 삶의 비정함을 느낍니다.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한 시간이나 늦잠을 잔 아침부터, 갑작스러운 폭우로 취소된 약속, 혹은 예상치 못한 업무의 범람까지. 우리는 매일 아침 수첩의 빈 칸을 채우며 인생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삶은 늘 그 오만을 비웃듯 무심하게 변수를 던집니다. 계획이 틀어지는 찰나, 심장 박동은 제어할 수 없이 빨라지고 초조함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시야를 흐려놓습니다.

"오늘 이걸 다 끝내려고 했는데, 이제 어떡하지?"

입술을 깨물며 자책해 보아도 이미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헝클어진 일정은 혼자 힘으로 수습하기에 너무나 벅차기만 합니다.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이름의 신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에게 계획의 차질은 곧 실패이자 무능력의 증표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가장 빛나던 순간들은 대개 계획에 없던 틈새에서 태어났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발견한 낡은 골목길의 예쁜 카페,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하다가 운명처럼 마주친 오랜 인연.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문이 지금 막 열리고 있다는 우주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직진만을 고집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던 발걸음이 잠시 멈춰 섰을 때, 비로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정해진 목표를 향해 질주하느라 너무나 많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틀어진 계획은 우리에게 강제로 선사된 예기치 못한 '휴식'이자, 삶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낼 수 있는 '발견'의 기회입니다. 시계의 톱니바퀴가 잠시 어긋났다고 해서 내 인생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영원히 멈춰 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메마른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채워줄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완벽한 계획표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좁은 상자 안에 가두는 창살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다면, 차라리 그 무질서함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즐겨보기로 합니다. 순서가 바뀌면 좀 어떻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또 어떻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시 커피나 한 잔 마시며 쉬어갈까?"

이런 느긋한 마음가짐이 우리를 짓누르는 압박감에서 구원해줄 유일한 열쇠가 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암시는 포기가 아니라, 삶의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기에 매 순간을 매끄럽게 연결할 수 없으며, 때로는 삐걱거리고 멈춰 서는 것이 인간다운 자연스러움입니다. 어긋난 시간표 덕분에 우리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하늘의 색깔을 감상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살필 여유를 얻습니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곡선과 굴곡으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흐름입니다. 계획의 실패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며, 정해진 궤도를 이탈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나'의 속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너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는 결국 끊어지기 마련이지만, 느슨하게 풀린 줄은 잠시 숨을 고르며 더 큰 도약을 준비합니다. 오늘 당신의 수첩에 그어진 수많은 가위표를 보며 너무 우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가위표들은 당신이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려 노력했다는 훈장이자, 이제는 쉬어도 좋다는 다정한 마침표입니다.

실패한 계획 사이로 스며드는 우연의 기쁨을 만끽하다 보면, 인생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함께 그려나가는 도화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일은 다시 새로운 해가 뜨고, 우리는 또다시 조금은 무모하고 어설픈 계획을 세우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단단하고 유연한 어른이 되어갑니다. 어긋난 톱니바퀴는 고장이 아니라, 더 큰 세상을 돌리기 위한 새로운 맞물림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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