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마주했을 때 어깨 위에 내려앉은 지독한 피로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특별히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크게 다툰 것도 아닌데, 마음의 배터리가 바닥을 드러낸 채 붉은 불빛을 깜빡이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입니다. 우리가 지치는 이유는 항상 거창한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깎여나가는 인내심과 사소한 배려들이 쌓여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너 오늘 좀 피곤해 보인다. 어제 잠 못 잤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말에 나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친 채 멍하니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을 자지 못해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감정의 소모를 겪었기에, 육체의 휴식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깊은 갈증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웃으며 나누었던 대화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끌어다 쓴 연기였는지, 그리고 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얼마나 자주 내 진심을 억눌러왔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피로는 안개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가장 사랑하는 일들조차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고약한 성질이 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펼치는 일도, 좋아하는 음악을 고르는 일조차 버거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더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지금 이 상태를 인정하고 가만히 멈춰 서서 내면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가끔은 다 내려놓고 그냥 쉬고 싶어."
텅 빈 방 안에서 내뱉은 이 한마디가 벽에 부딪혀 돌아올 때, 나는 비로소 참아왔던 한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늦출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다그치지만, 가끔은 뒤로 물러나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도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지친 나를 비난하기보다는 고생 많았다고, 여기까지 잘 걸어왔다고 스스로의 등을 토닥여주는 다정함이 필요한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