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불안이 만든 또 하나의 얼굴이다. 처음에는 단지 잠시의 도피였다. 조금만 잊고 싶었고, 잠깐의 위로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 잠깐이 쌓이고 반복되면서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습관은 생각보다 무섭다. 처음엔 내가 그것을 하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움직인다. 손끝은 저절로 화면을 켜고, 입은 무심히 달콤한 것을 찾는다. 머리는 멈추자고 하지만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나는 안다.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걸. 그런데도 멈추지 못한다. 불안이 다시 찾아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행동을 반복한다. 그것이 나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불안이 잠잠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파도가 잠시 물러난 듯 고요해지니까. 그러나 그 고요는 환상이다. 곧 다시 밀려올 폭풍의 예고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불안을 피하려다 불안에 갇히고, 도망치려다 더 깊은 감옥을 만든다. 그리고 자존감은 서서히 깎여나간다.
“나는 왜 또 이러지?”
“이걸 멈추지도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스스로를 향한 비난이 마음속에 쌓이고, 그 비난이 무력감을 낳는다. 무력감은 다시 불안을 불러오고, 불안은 다시 중독을 부른다. 끝없는 고리, 도망칠수록 조여오는 사슬이 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싸움이 아니다. 불안을 이기려는 전투가 아니라 나 자신을 마주보는 일이다. 도망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멈추기 전에 먼저 멈춰서 나를 바라봐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 질문을 던질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가 회복의 첫걸음이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습관은 여전히 나를 유혹한다. 그래도 괜찮다.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자란다.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켜보면 어느 순간 미세한 틈이 보인다. 나와 불안 사이의 아주 작은 간격. 그 틈에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느낀다.
“아, 나는 이 감정이 나 전부가 아니구나.”
그 깨달음이 생기면 통제력이 생긴다. 아주 작은, 그러나 분명한 통제력이다. 그 통제력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지만, 그것은 나를 현실로 이끈다. 중독의 안개 속에서도 길을 찾게 한다.
그다음엔 기록해야 한다. 생각을, 감정을, 행동을 기록한다.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 적어본다. 글로 쓰는 행위는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다. 머릿속의 혼란이 종이 위로 옮겨지는 순간, 조금은 가벼워진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면 불안의 실체가 보인다. 그것은 막연한 괴물이 아니라 이유를 가진 감정임을 알게 된다.
그제야 나는 불안의 뿌리를 탐색할 수 있다. 불안은 언제나 이유를 숨긴다. 그 이유는 상처이거나, 결핍이거나, 두려움이다. 그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길 끝에서만 진짜 자유가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세운다. 불안을 없애려는 계획이 아니라, 그 불안을 이해하고 다루려는 계획이다. 작고 구체적인 계획. 오늘 하루 나를 돌보는 일, 하루에 한 번이라도 숨을 의식하는 일, 불안이 올라올 때 멈춰서 느끼는 일. 그 계획들을 현실에서 실천해본다.
결과는 다양하다.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도 있고, 오히려 더 불안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배움이다. 효과 없는 방법을 하나 알게 된 것, 그 자체로 통제력이다. 그렇게 여러 시도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효과가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된다. 작은 변화지만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행동, 그 하나가 내 삶을 지탱한다. 그 하나가 내 불안을 잠재운다. 불안의 본질적인 문제를 조금씩 해결할 때 중독의 고리도 느슨해진다.
그때서야 나는 안다.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하는 것임을. 그것을 억누르려 할수록 커지지만, 들여다볼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문제는 끊임없이 생긴다. 그러니 불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은 인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불안이 나를 삼키게 두지 않는 일이다. 불안이 나를 끌고 가기 전에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서는 일이다.
중독의 고리는 나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화면 속에, 생각 속에, 상상 속에 빠져 지금의 나를 잃는다. 그러나 그 고리를 끊는 순간,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지금 여기에서 숨 쉬는 나로 돌아온다.
결국 인간은 언제나 불안을 겪는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존재의 그림자다. 하지만 그 그림자와 함께 걷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불안을 느낄 때, 도망치는 대신 멈추어 쉬는 법을 찾아야 한다. 건강하게 쉴 수 있는 방법, 나를 잃지 않고 숨 돌릴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불안과 중독의 고리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말한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 속에서 나를 이해하라.”
“중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이면의 불안을 들여다보라.”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안다. 불안은 적이 아니라 우리 안의 오래된 신호라는 것을. 그 신호를 듣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우리는 파도 위에서 헤엄칠 수 있다. 끝없이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고, 스스로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때, 불안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더 이상 우리를 삼키지 못한다. 우리는 불안을 품고도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그리고 회복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