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그림자다. 아직 세상이 우리를 반기기도 전에 불안은 이미 마음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은 생존의 흔적이자 오래된 본능의 잔향이었다. 조상들은 불안을 통해 살아남았다. 한밤의 바람 소리, 발밑의 낙엽 소리 하나에도 심장은 경고처럼 뛰었다. 그 뛰는 소리가 생명을 이어주었다. 불안은 언제나 경계의 신호였다. 다가올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속삭임이었다. 그 속삭임이 없었다면 인류는 오래전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불안은 우리를 지켜온 오래된 수호자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변했다. 맹수는 사라졌고 전쟁터의 칼날도 멀어졌다. 도시는 안전해졌고 불빛은 밤을 밀어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양을 바꾸어 더욱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제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숨어 있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 비교의 틈 속에, 괜찮은 척해야 하는 하루 속에 불안은 숨어 산다.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 웃으며 불안의 가면을 쓴다. 그리고 그 미소 뒤에서 손끝은 떨리고 있다. 작은 일에도 가슴이 요동치고 별일 아닌 일이 머릿속에서 커다란 파도로 자라난다. 그 파도는 현실보다 훨씬 크다. 눈앞의 일보다 머릿속의 상상이 더 무섭다. 그 상상은 끝을 모르고 자란다.
“이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사람들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는 왜 이토록 불안할까?”
이 물음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불안은 생각을 먹고 자란다. 생각은 점점 불안을 키운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며 끝없는 순환이 만들어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점점 자신을 잃는다. 불안은 언제나 이유를 찾아내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당연히 걱정해야지, 이건 중요한 일이잖아.”
그 논리는 너무도 설득력 있어서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을 만든다. 그 감옥의 벽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 숨쉬는 공기는 점점 탁해진다. 잠들기 전 눈을 감아도 불안은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 하루를 마쳐도 마음은 결코 쉬지 않는다. 몸은 멈춰 있어도 생각은 쉼 없이 달린다. 뇌는 끊임없이 안정을 찾아 헤맨다. 불안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자극을 찾는다. 달콤한 음식, 손끝의 화면, 빠른 소비, 그 모든 것이 도파민의 약속처럼 손짓한다. 순간의 쾌락은 잠시 불안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그 평화는 너무도 짧다. 곧 다시 불안이 밀려온다. 조금 전보다 더 세게, 더 거칠게. 그러면 우리는 다시 자극을 찾는다. 조금 더 강한 것, 조금 더 빠른 것. 그렇게 반복되는 순간마다 불안은 우리를 길들인다. 도망칠수록 사슬은 단단해진다. 현실은 점점 멀어지고 그 사이에 자신은 희미해진다. 해야 할 일들이 밀리고 마음속의 무게는 쌓여간다. 불안은 점점 중심을 차지하고 우리는 그 주위를 맴돈다. 이제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이 된다. 숨을 쉬는 것처럼 불안을 느끼고 생각을 하는 것처럼 불안을 반복한다. 그 반복 속에서 자존감은 조금씩 닳아간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사는데.”
그 비교 속에서 자신은 점점 작아진다. 불안은 무력감을 낳고 무력감은 다시 불안을 키운다. 그 끝없는 고리가 우리를 조용히 묶는다. 어느새 불안은 존재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바다의 파도 같다. 잠시 잦아드는 듯하다가도 다시 몰려오고 아무리 저항해도 결국 다시 젖게 만든다. 그 속에서 인간은 헤엄친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바다를 그저 떠밀리듯 흘러가며 버티고 또 버틴다. 그렇게 불안은 우리를 잠식해 간다. 숨결 사이사이 스며들고 생각과 감정의 틈새마다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묻는다.
“너는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니?”
하지만 그 대답은 아직 오지 않는다. 불안은 여전히 파도처럼 밀려오고 우리는 그 속에서 여전히 떠 있다. 끝을 모르는 바다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