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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희 Sep 14. 2023

바다를 건너온 피아노 <5>

5. 긴긴 이별     

   1945년 8월 15일 정오 무렵. 

   카즈오 기억 속에 절대 지워지지 않는 날입니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시장 관리실에 일본 상인들이 모였습니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테이블 가운데 내려놓았습니다.

   “오늘 정오에 중대발표가 있다고 하니, 다들 이리 오시지요.”

   평소에는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오늘은 조용합니다. 얼굴이 굳었습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라디오 가까이에 모여들었습니다. 숨을 죽인 채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라디오에서 삐~하고 정오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아나운서가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중대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은 다 일어서주십시오.”

   라디오들 듣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허리를 곧게 세우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기미가요(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더니 어느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친후가쿠 세카이노 타이세이또(짐은 세계의 대세와)······.”   

   누군가가 옥음 방송이라 했습니다. 

   카즈오가 아버지 옷깃을 당기며 작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버지, 옥음이 뭐예요?”

   “쉿! 천황폐하의 목소리시다. 예를 갖추어라.”

   카즈오도 어른들처럼 등을 곧게 세우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지지직~ 지직.

   라디오 소리는 잡음이 심하고 게다가 어려운 일본말이라 카즈오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천황의 목소리는 방송을 타고 길게 이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콧물을 닦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흐느꼈습니다. 아버지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카즈오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방송이 끝나자 사람들이 술렁거렸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전쟁이 끝났다는 말이지요?”

   “대일본제국이 전쟁에 지다니 믿을 수 없어요.”

   어른들은 눈물을 닦으며 다들 한마디씩 했습니다. 

   “전쟁이 끝났다면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하오? 계속 부산에서 살 수 있는 거요?”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당연히 조선은 일본 식민지인데 여기서 못살게 뭐람.”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당연하다는 듯 입을 삐쭉거렸습니다.  

   카즈오 아버지가 앞에 나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일본이 전쟁에 패했다면 식민지는 해방이 될 것 아니겠소? 그러니 우린 일본 본토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맞아요. 이렇게 있다가 조선 사람들에게 어떤 봉변을 당할지······.”

   “그럼 창고에 가득 쌓인 저 물건들은 다 어떡하고?”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걱정스레 말했습니다.

   “다들 쌓아둔 물건을 모조리 시장에 내놓아야 하겠지요. 헐값에라도 팔아 얼른 현금으로 만들어 일본에 갖고 가야 하지 않겠소?”

   콧수염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잘 가꿔놓은 내 집은 어떡하고······.”

   “아이고, 그 많은 땅덩어리 내 재산은 가져갈 수도 없는데······.” 

   일본 상인들이 한숨 쉬며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이튿날, 수많은 조선인이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손에는 태극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태극기는 일장기(일본 국기)에 파란 태극무늬를 칠하고 검은 막대를 그려 넣은 것도 있었습니다.

   만세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카즈오는 그때까지 그렇게 많은 조선인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일본인 동네에서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두려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른 아침 밖으로 나갔던 아버지가 헐레벌떡 돌아왔습니다. 가방을 하나 던져주며 재촉합니다.

   “카즈오, 여기 네 물건을 챙겨. 꼭 필요한 것만. 어서 여길 떠나야 해. 얼른 일본으로 돌아가자.”

   “아버지, 왜 여길 떠나야 해요?”

   “일본이 전쟁에 져서 더 이상 여기서 못 살아. 빨리 서둘러. 배 놓치면 큰일 나.”

   카즈오는 어제오늘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났으면 기뻐해야 할 텐데 왜 다들 걱정을 하는지, 왜 부산을 떠나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아버지, 엄마 묘는 어떡해요?”

   “일단 일본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기회를 봐야지.”

   카즈오는 눈에 띄는 대로 물건을 집어 대충 가방을 채웠습니다.

   아버지는 장롱이며 서랍을 뒤지며 정신없이 짐을 챙겼습니다. 

   “이것들은 어찌한담? 하나라도 더 가져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골동품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망설였습니다. 집 안에 있는 가방이며 보자기에 닥치는 대로 마구 집어넣었습니다. 

   “아버지, 제 가방은 다 챙겼으니 용수한테 일본 간다고 말하고 올게요.”

   “이 상황에 무슨 철없는 소리야? 어서 가야 해.”

   “빨리 갔다 올게요, 아버지.”

   “얼마나 힘들게 구한 배인데 그걸 놓치면 일본으로 못 돌아가게 된다구!”

   카즈오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 ······. 흑!”

   아버지는 다짜고짜 카즈오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집 앞에서 기다리던 자동차에 올라탔습니다. 자동차는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로 이리저리 피해 달렸습니다. 카즈오는 혹시라도 용수가 있나 힐끔거렸습니다. 


   부산항에 다다랐습니다.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모여 있고, 일본으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배를 먼저 타려고 다투는 사람들. 목이 터져라 가족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 짐을 나르는 지게와 수레, 그리고 사람들이 뒤엉켜 정신이 없습니다. 

   카즈오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어느 배 앞에 멈춰 섰습니다. 

   배는 커다란 송환선이 아니라 고작 수십 명 탈 수 있는 작은 배였습니다.

   아버지가 커다란 짐 뭉치를 배에 내려놓으며 비틀거렸습니다. 

   “아이고, 무거워. 죽는 줄 알았네.”

   그러자 선원 아저씨가 인상 쓰며 소리쳤습니다.

   “안 됩니다. 짐은 세 개까지만 실을 수 있소!”

   “좀 봐주쇼. 내 평생 모은 골동품인데······. 이 귀한 걸 어찌 버리고 가겠소?”

   “참 딱합니다. 그 짐을 다 실으면 이 배가 그 무게를 당해내겠소?”

   선원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고, 아까워라.” 하며 망설였습니다. 

   결국 커다란 골동품 보따리 세 개만 챙기고 나머지는 바닷물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8월의 따가운 햇볕이 배 안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정든 곳을 떠나는 실망감에 고개를 떨궜습니다.

   “일본엔 집도 절도 없어요.”

   “앞으로 뭘 해 먹고 살지?”

   일본으로 돌아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에 떨었습니다.

   드디어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파도가 발목 잡듯 이리저리 배를 흔들어댑니다. 

   카즈오는 뒤돌아 앉아 부산항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멀리 용두산 공원이 점점 작아져 까만 점이 될 때까지.

   ‘용수야, 안녕.’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밤새 심한 뱃멀미로 고생하며 겨우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다다랐습니다.   

   일본에서 다시 시작된 생활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카즈오랑 아버지는 갈 곳이 없어 먼 친척 집에 더부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특히나 조선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일본 본토인은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카즈오가 동네에 나가면 아이들이 놀려대곤 했습니다.

   “너 외지에서 굴러들어왔지? 왜 돌아왔어?”

   “우리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집이 불타고 사람들이 죽어갈 때, 너희는 조선에서 잘 먹고 잘살았지?”

   카즈오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억울했습니다. 전쟁 때문에 나도 엄마와 삼촌을 잃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전쟁에 패한 후라 다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오자미(헝겊 주머니에 콩이나 팥 등을 넣어 봉하여 공 모양으로 만든 놀이기구) 속에 든 팥을 꺼내 한 알 한 알 씹어 먹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낡고 구멍이 난 신발을 신었는데, 카즈오 혼자 멀쩡한 구두를 신은 게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로 7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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