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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희 Sep 03. 2023

군함도에 핀 꽃 <1>

                                   

 


         1. 군함도로 가는 길     

   군함도로 가는 뱃길은 멀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짙푸른 바닷물이 끝없이 이어졌다. 

   작은 섬들이 군데군데 떠 있고, 연분홍 벚꽃이 초록 섬을 뽀얗게 뒤덮었다. 양쪽에는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고, 붉은 크레인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담이는 뱃머리로 나갔다. 쌀쌀한 바닷바람이 뺨을 스쳐 갔다. 

   ‘아버지가 일하는 군함도는 어떤 곳일까? 만날 수는 있을까?’

   배가 속력을 내며 물살을 가르자 뒤따라오던 하얀 물거품이 부챗살처럼 펼쳐졌다 사라졌다. 

   담이는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조선에서 이곳 나가사키로 오던 일을 떠올렸다.


   “담이 애비, 집에 있는가?”

   어느 날, 이장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앞마당에서 불렀다. 돌아가신 엄마와 같은 고향 사람으로 언제나 살갑게 대해 주었다. 

   “아이구, 이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버지가 버선발로 반갑게 맞이했다. 

   “내 좋은 소식 가지고 왔구먼.”

   이장 할아버지가 마루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자네 언제까지 김 영감 댁 과수원 돌보며 입에 풀칠만 할 텐가? 이제 목돈 좀 만져봐야 하지 않겠나?”

   “가진 재주라곤 그것밖에 없으니 어찌합니까?”

   담이가 냉수를 한 사발 떠 와 할아버지께 드렸다.

   “담이를 생각해서라도 돈을 벌어야지. 그래서 말인데, 일본 나가사키에 가서 일해 볼 생각 없는가?”

   그때, 동그란 안경을 쓴 일본인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이장 할아버지가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인사하게. 이분은 마쓰시타 상이라네.”

   아버지는 영문도 모르는 채 인사했다. 이장 할아버지는 마쓰시타에게 하얀 종이를 받아 내밀었다. 

   “이분이 나가사키 탄광에서 석탄 캘 광부들을 모집한다네. 돈벌이가 꽤나 좋다는구먼.”

   마쓰시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망설이며 말했다. 

   “담이를 혼자 두고 어찌 일본으로 가겠습니까?”

   아버지 말에 이장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런 자네 사정을 내가 왜 모르겠나? 내 먼 친척이 나가사키에서 꽃집을 하고 있어. 거기다 담이를 맡기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할 걸세. 날 믿고 여기 이름을 쓰게나.” 

   아버지는 얼떨결에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담이와 아버지는 마쓰시타를 따라 나가사키로 오는 배를 탔다. 아버지 외에도 십여 명의 조선인 아저씨들이 함께 탔다. 

   담이는 이장 할아버지가 소개한 작은 꽃집에 맡겨졌다. 

   꽃집 주인도 조선인이었다. 십여 년 전, 일본으로 건너와 갖은 고생 끝에 이제야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담아,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는 동안 여기서 지내야 한다. 주인아저씨 말씀 잘 듣고. 우린 삼 년 후에나 만날 수 있을 거야.”

   아버지가 담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가에 물기가 촉촉했다.

   “아버지, 걱정 마요. 저도 아홉 살 먹은 사나이인데 잘 할 수 있어요.”

   담이는 애써 눈을 크게 껌벅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튿날, 아버지는 배를 타고 군함도로 떠났다. 

   담이는 꽃집 아저씨 마음에 들게 하려고 부지런히 일했다. 그래야 아버지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꽃에 물도 주고 시든 잎도 다듬었다. 아버지가 과수원 일을 할 때, 틈틈이 도왔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아저씨는 늘 잘 대해줬지만,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때로 일을 잘 못 하거나 하면 따끔하게 혼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담이는 아버지가 한없이 그리웠다. 온실 안에 들어가 소리죽여 울곤 했다.

   어느 날, 아저씨가 담이를 불렀다.

   “담아, 우리 가게 꽃을 하시마에 가서 팔게 됐단다.”

   “하시마요?”

   담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흔히들 ‘군함도’라 부르지만, 원래 이름은 하시마야.”

   “아버지가 일하러 간 바로 그 군함도요?”

   “그래. 맞다. 토요일마다 아침 첫 배로 군함도에 가기로 했단다.”

   담이가 아저씨 얼굴을 들여다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아저씨, 저도 데려가 주실 거죠?”

   “오냐, 놀러 가는 게 아니다. 꽃 배달을 도와야 해.”

   담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군함도로 가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담이가 생각에 잠긴 동안, 멀리 군함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가사키 항에서 배를 탄 지 한 시간 반 만이다. 

   외롭게 홀로 떠 있는 자그마한 섬.

   ‘정말 까만 군함처럼 생겼네. 저런 곳에 아버지가 계시는구나.’

   담이는 목을 길게 빼고 내다보았다. 마음이 설레었다.

   배가 섬 가까이 다다랐다. 

   군함도는 온통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작은 성처럼 보였다. 바닥도 전부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었다. 흙이라고는 아예 없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아 초록빛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우와 높다. 저게 사람 사는 집이야? 하나, 둘··· 아홉 층이나 돼? 세상에.”

   담이는 높은 콘크리트 아파트를 처음 보았다. 입이 떡 벌어졌다. 그것도 한 채가 아니라 여러 동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높이 솟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끝없이 뿜어 나왔다. 석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섬 오른쪽엔 학교도 보였다.

   선착장에 배를 대려 하자 파도는 사납게 일렁였다. 

   나가사키 시내에서 식료품이나 생활용품을 싣고 온 상인들이 줄줄이 배에서 내렸다. 

   아저씨와 담이도 꽃이 담긴 상자를 날랐다. 화분도 옮겼다. 발을 헛디딜까 조심스러웠다. 봄꽃들은 차가운 바닷바람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좁은 마당에 아침 장이 섰다. 발 디딜 틈 없이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었다. 담이네 꽃들도 인기가 많았다.

   “이렇게 화사한 꽃들을 보니 참 좋네요. 여긴 풀 한 포기도 없는 곳이라······.”

   “아유, 이뻐라. 아직도 날이 쌀쌀한 데 이렇게 곱게 피다니.”

   너도나도 앞다퉈 한 아름씩 꽃을 샀다.

   새하얀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물었다.

   “짐이 많은데 배달되나요?”

   “넷! 배달해드릴게요.”

   담이가 꽃을 들고 선뜻 따라나섰다. 

   식당과 여러 가게를 지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어찌나 높은지 계단 끝은 하늘로 이어질 것 같았다. 계단에서 딱지놀이 하는 아이, 모자 쓰고 출근하는 아저씨, 좁은 계단에 많은 사람이 지나쳤다. 

   내려다보니 아이들이 그네도 타고 자전거도 탔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좁디좁은 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어디서 사는지 궁금했다. 

   담이는 혹시나 아버지와 비슷한 조선인 아저씨들이 있나 기웃거렸다. 

   아주머니 집은 7층이었다. 

   아파트 문을 열자 집안에 신기한 물건들로 꽉 차 있었다. 텔레비전도 눈에 띄었다. 

   “아리가또(고마워). 높은 곳까지 수고했어.”

   “물 잘 주시고요. 안녕히 계세요.”

   담이는 숨이 차 헐떡거리며 인사했다. 단숨에 계단을 쪼르르 내려왔다. 까만 얼굴에 자그만 몸집이 어찌나 날렵한지 한 마리 다람쥐 같았다.

   아침 시장이 막 파하려는데 담이 또래 남자아이가 찾아왔다. 

   “아저씨, 엄마가 꽃을 사 오라는데······.”

   남자아이는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망설였다. 

   “수선화 어때? 봄꽃 중에 수선화만 한 게 없어.” 

   담이가 수선화 화분을 들어 보였다. 노란 꽃이 가냘프게 춤을 추었다.

   “그래, 그걸로 줘. 엄마가 좋아하겠어.”

   남자아이 양손에 채소와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는 걸 보고 아저씨가 말했다.

   “짐이 많구나. 담아, 네가 들어주렴.” 

   담이는 남자아이를 따라나섰다. 

   극장을 지나쳤다. 담이는 이 좁은 섬에 극장까지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담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넓은 데는 뭐 하는 곳이야?”

   “수영장. 여름에 물을 가득 넣고 헤엄을 쳐.”

   남자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우와, 이런 데 살아서 진짜 좋겠다. 여긴 정말 없는 게 없구나.”

   건물과 건물을 이은 긴 복도를 지나, 남자아이 집에 다다랐다. 

   “쇼헤이, 돌아왔니?”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꽃 사 왔어요.”

   남자아이는 꽃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나, 수선화로구나. 정말 예쁘다.” 

   담이는 꽃이 예쁘다는 소리에 혼자 싱긋 웃었다. 돌아서려는데 남자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고마워. 이름이 뭐였지? 나는 쇼헤이.”

   “이 담. 담이라 불러줘.”

   “짐 들어줘서 고마워. 자주 들르게 될 거야.”

   “그래, 또 보자. 그런데······. 쇼헤이,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담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다. 다음에 물어볼게. 잘 있어.”

   담이는 서둘러 장터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뱃길에 아저씨가 말했다.

   “오늘 꽃 장사는 아주 성공적이야. 담이도 수고 많았어.”

   장사가 잘되어 아주 흡족한 얼굴이었다.

   담이는 열 달째 아무런 소식도 없는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군함도 어디에 계시는지조차 몰라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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