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버지 편지
“쇼헤이, 눈 감고 손 좀 펴봐.”
담이가 허리춤에 뭔가를 숨기고 말했다. 쇼헤이가 손을 내밀었다.
“으악! 이···이게 뭐야? 벌레잖아!”
손바닥에 벌레 두 마리가 꼼지락거렸다.
“장수풍뎅이야.”
“아, 투구벌레! 이렇게 생겼구나. 우리는 투구 쓴 것 같다고 투구벌레라고 해. 이게 수컷이지? 와, 뿔이 정말 멋지다. 등도 반질반질하고.”
쇼헤이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곤충을 처음 만져보는 게 신기했다.
“이걸 어떡하라고?”
“잘 키워봐.”
쇼헤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나 못해. 자신 없어.”
담이가 준비해온 나무상자를 내밀었다. 나무껍질을 들춰보니 톱밥이 깔려있고, 그 위에 나뭇가지가 얹어져 있었다.
“겁먹을 것 없어. 마르지 않게 그늘진 곳에 두고 물을 한 번씩 뿌려주면 돼.”
“먹이는?”
“바나나나 사과 껍질 같은 거 넣어줘.”
쇼헤이는 꽃집 아저씨께 담이랑 잠깐 어디 갔다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담이는 쇼헤이를 따라 끝도 없이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옥상에 다다랐다.
담이 동그란 눈으로 외쳤다.
“우와 이게 다 뭐야? 여긴 딴 세상이네!”
그곳엔 푸른 옥상 정원이 있고 가지, 토마토 등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이 섬엔 콘크리트 바닥이라 식물이 없잖아? 그래서 우리 자연 학습장으로 선생님들과 만든 곳이야.”
쇼헤이가 웃으며 말했다.
담이는 신기해서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벼를 심어놓은 작은 논도 있었다.
“이제 네 덕에 곤충도 키울 수 있게 됐네. 친구들도 좋아할 거야. 담아, 고마워. 여기 그늘에서 키우면 되지?”
옥상 계단을 내려오며 쇼헤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담아, 아직 네 아빠를 못 찾았어. 아저씨들 일 마치고 목욕탕 가는 걸 봤는데, 석탄가루가 묻어 얼굴이 다 새까맣더라고. 누가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아빠 왼쪽 눈 옆에 까만 점이 있는데······.”
“그 정도론 어림없어. 아주 새까맣던데 뭐.”
“그래? 그런데, 조선인 아저씨들은 어디 산데?”
“여기선 잘 안 보여. 북쪽 아파트라는 데 우린 못 가. 감시가 심하대.”
담이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올 때, 아빠한테 편지를 써와. 언젠가 전할 수 있으면 전하게.”
“정말? 고마워. 쇼헤이. 써올게.”
담이 얼굴이 다시 환하게 펴졌다.
“내가 네 아빠를 찾게 되면 목욕탕 옷 담는 바구니 속에 편지를 넣어놓을게. 그리고 며칠 있다 답장 받으러 간다고 써.”
“알았어, 쇼헤이. 음···. 편지에다 아빠 옷 바구니 위에 항상 돌멩이를 얹어놓으라고 써야겠다. 그래야 우리가 쉽게 찾을 수도 있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잖아?”
쇼헤이가 담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쭈! 머리 좋은데?”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다.
무더운 장마가 시작되었다. 눅눅하고 푹푹 찌는 날이 이어졌다.
쇼헤이는 목욕탕으로 몰래 들어가 열 개 남짓한 옷 바구니를 뒤졌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작업복 호주머니에 2367번이 새겨진 옷을 찾았다.
‘아! 여기 있다.’
쇼헤이는 옷가지 속에 얼른 담이 편지를 밀어 넣었다.
목욕탕을 들여다보니, 탕은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
첫째 탕에는 아저씨들이 바지를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물이 검은 석탄 물로 변해 있었다.
“난 다, 고노야로! (뭐야, 이 녀석!)”
누군가 쇼헤이 뒷덜미를 잡았다. 팔뚝에 완장을 찬 아저씨였다. 눈매가 싸늘했다.
“죄송해요, 아저씨. 길을 헤매다 뭐 하는 곳인가 하고.”
“뭔 소리야? 여긴 애들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야. 어서 꺼져!”
쇼헤이는 식은땀이 났다. 며칠 후에 또 들어갈 일이 걱정이었다.
장터 손님이 뜸한 저녁 무렵, 쇼헤이가 찾아왔다.
“담아, 편지는 전했는데, 답장 받으러 갔다 허탕 쳤어.”
쇼헤이는 목욕탕에서 아저씨께 붙들렸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저께 다시 갔는데, 그 완장 아저씨가 계속 있더라구. 그래서······.”
“쇼헤이. 너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이제 내가 나설게. 어딘지 알려줘.”
담이는 아저씨께 사정을 말하고 허락을 구했다.
“마지막 배를 놓치면 안 되니까 배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해.”
아저씨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담이는 쇼헤이를 따라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계단은 좁고 어두웠다. 내려갈수록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공기가 탁했다.
두 사람은 목욕탕 근처 기둥에 숨어 지켜보았다.
드디어 조선말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들이 아니 검은 숯덩어리들이 다가왔다. 눈을 깜박거리는 걸 봐서 사람인 줄 알 정도였다.
담이가 기둥 뒤에서 뛰쳐나가려는데, 쇼헤이가 팔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저기, 완장 아저씨. 조심해!”
담이는 고개만 내밀고 아빠를 찾았다. 쇼헤이 말처럼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다.
완장 아저씨 옆에 걸어가던 하얀 눈동자가 담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담이 눈이랑 마주쳤다.
‘아버지다! 아버지!’
담이가 다가서려고 하자 아버지가 고개를 가로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건 분명 다가오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담이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얀 눈동자도 힐끗힐끗 뒤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완장 아저씨를 따라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아니 죄수처럼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담이 눈에 차가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 가슴을 꽁꽁 얼게 했다.
‘얼마 만에 만난 아버지인데, 왜 만나면 안 되는 거지?’
그때, 갑자기 탄광 입구 쪽에서 ‘웨~엥’하고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막장이 무너졌다!”
“사람이 죽었어!”
누군가의 외침 소리에 사람들이 막장 쪽으로 몰려갔다. 들것도 가져갔다.
완장 아저씨가 목욕탕에서 튀어나오더니 허둥지둥 막장 쪽으로 뛰어갔다.
“이때다!”
담이는 어수선한 틈을 타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구석진 옷 바구니 위에 석탄 돌멩이가 놓여있었다. 편지를 꺼내 들고 냅다 뛰었다.
탄광 입구 쪽은 여전히 사고 수습으로 어수선했다.
담이와 쇼헤이는 지상으로 뛰어 올라왔다.
‘휴~, 살았다.’
담이가 몸을 구부린 채 한숨을 쉬었다.
지상에서는 지하 사람들과는 달리 평온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꽃집 아저씨는 짐을 꾸려 선착장에서 마지막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담이는 아버지 편지를 꺼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글자도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담아, 네 편지 잘 받았다. 네가 여기 오는데도 만날 수 없어 안타깝구나.
여기는 생각보다 힘들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단다.
계약 기간이 얼른 지나 너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키도 훌쩍 컸겠지? 아저씨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
※ 또 한 통의 편지는 꽃집 아저씨께 전하거라.
담이는 편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지내실만하다니 그나마 다행이야.’
담이는 풀칠 된 봉투를 아저씨께 전했다.
무슨 일인지 편지를 읽은 아저씨 얼굴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