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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희 Sep 14. 2023

군함도에 핀 꽃 <4>

4. 지옥 섬     

   이튿날, 담이는 꽃집 아저씨를 따라 시내에 있는 어느 회사로 갔다. 

   눈에 익은 사람이 있었다. 광부 모집 담당자 마쓰시타였다. 

   “이 아이, 기억하시지요? 얘 애비 일로 좀 물어볼 게 있어 왔소.”

   아저씨가 다짜고짜 물었다.

   “깊은 바다 밑에 그것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갱도 속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다는데 어찌 된 거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채울 때까지 일하는 건 당연하지 않소?” 

   마쓰시타가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뭐요? 그런데도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건 어떻게 설명하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소? 일본 오던 뱃삯에 식비, 숙소비, 음, 탄광에서 쓰는 장비 사용료 등등, 월급에서 빼는 건 당연하지 않겠소?”

   마쓰시타는 계약서를 들이밀며 말했다.

   “자, 여기 계약서에 그렇게 하겠다고 이름을 썼잖아요? 확인해 보시죠.”

   아저씨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기가 막히는군. 사람이 죽게 생겼어요. 막장이 찜통이라 땀이 흘러 석탄 가루가 눈에 들어가 치료도 받아야 한대요.”

   “이것 보세요! 광부 모집하는 것까지만 우리 일이죠. 탄광 안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가 어찌하겠소?”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정말 나쁜 놈들이구먼. 거기 가면 천국이라며 달콤한 말로 속이곤. 단단히 속았어!”

   아저씨가 문을 박차고 나왔다. 담이를 잠시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쯧쯧, 저놈들한테 단단히 속은 거야. 억울해도 견디는 수밖에······. 어휴!”

   담이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저씨께 보낸 편지를 찾았다. 편지는 가게 서랍 안에 들어있었다. 

   ‘아니······.’

   편지를 읽자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가슴이 아팠다. 담이에게 보낸 것과는 달리 그 내용은 끔찍했다. 

   ‘이대로 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아버지를 구해야 해!’

   담이는 높은 열이 나 밤새 시달렸다.     

   “담아, 큰일 났어!”

   담이가 꽃 상자를 풀고 있는데, 쇼헤이가 헐레벌떡 찾아왔다. 

   “무슨 일인데?”

   담이의 핼쑥해진 얼굴을 보고 쇼헤이가 흠칫 놀랐다.

   지난번 장날, 담이는 군함도에 오지 않았다. 꽃집 아저씨 말로는 담이가 밥도 못 먹고 열이 심해 오지 못했다고 했다.

   쇼헤이가 담이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너 정말 많이 아팠구나.”

   “이제 괜찮아. 무슨 일이야?”

   담이가 화분을 옮기며 말했다.

   “참, 장수풍뎅이가 죽었어. 어떡해?”

   두 사람은 옥상 정원으로 뛰어 올라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팔팔했는데 말이야. 갑자기······.”

   쇼헤이가 작은 흙무덤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수풍뎅이 여기다 묻어줬어.”

   그 위에 꽃 두 송이가 놓여 있었다. 

   담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장수풍뎅이는 길어 봐야 석 달밖에 못 살아. 나무상자는 버렸어?”

   “아니, 그대로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담이가 덮어놓았던 나무껍질을 걷어내고 톱밥을 파헤쳤다.

   “으악, 징그러워. 이게 뭐야?”

   쇼헤이가 놀라 뒤로 물러섰다. 동그랗게 생긴 게 여러 개 들어있었다.

   “장수풍뎅이 알이야. 이게 애벌레가 되고 내년 봄엔 번데기로 변해. 그랬다가 5월쯤엔 멋진 장수풍뎅이가 될 거야.”

   “정말?”

   쇼헤이 입이 떡 벌어졌다.

   “애벌레가 11월부터는 겨울잠을 자니까 그땐 먹이를 주지 않아도 돼.”

   쇼헤이가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담이 너 곤충 박사구나. 장수풍뎅이가 죽어서 슬펐는데, 그래도 희망이 있네.” 

   담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에겐 희망이 없어.”

   담이는 그간 있었던 일을 쇼헤이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여기가 천국 섬이라 생각했는데, 아버지한텐 지옥 섬인가 봐. 힘들게 오랜 시간 일하는데, 먹는 거라곤 콩깻묵 두 덩이래. 배탈도 자주 나고.”

   쇼헤이는 조선인 아저씨들의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숙소가 반지하에 있는데, 파도가 센 날은 바닷물이 들어와 잠도 제대로 못 잔대.” 

   담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정말 말도 안 돼. 지상에선 이렇게 평화롭게 사는데 믿어지지 않아. 그럼, 일 그만두고 나오시면 되잖아?”

   “감시가 너무 심해 그러질 못하나 봐. 어떤 아저씨가 탈출하려고 뗏목 만들다 들켜서 채찍으로 맞았는데, 살점이 떨어져 나갔대. 상처에 석탄 가루도 묻고 짠 바닷물이 닿아 피부가 썩어간대. 어떻게든 아버지를 구해내야 해.”

   쇼헤이는 목욕탕에서 봤던 완장 찬 사람이 감독관이라는 걸 깨달았다.

   “담아, 우리가 아빠를 구해내자!”

   “정말? 도와줄래?”

   두 사람은 한참 머리를 맞대었다. 

   한여름 태양이 두 사람을 따갑게 쏘아댔다.

   멀리 푸른 바다에 커다란 배가 뿌~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빙빙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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