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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희 Sep 14. 2023

군함도에 핀 꽃 <2>

2. 쇼헤이와 굴진부, A     

   다시 군함도로 가는 날이 가까워지자 담이 마음이 들떴다. 

   밤새 주룩주룩 내리던 봄비가 다행히 아침에 멈추었다. 

   오늘은 팬지꽃이 첫선을 뵈는 날이다. 꽃들은 노란빛, 자줏빛으로 곱게 단장하고, 다소곳이 아침 장터에 앉았다. 콘크리트 마당에 알록달록 꽃방석을 깔아놓은 것 같았다. 역시나 팬지꽃은 인기가 많았다. 아주머니들이 하나씩 꽃을 집어 들었다.

   “이 꽃은 햇빛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물도 좋아하구요.”

   담이는 신이 나서 제법 장사꾼처럼 말했다.

   쇼헤이가 또 찾아왔다.

   “가미다나(집안에 조상의 위패를 모신 제단)에 바칠 꽃을 사러 왔어.”

   아저씨가 서너 가지 꽃들과 나뭇잎을 섞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꽃다발을 들고 따라나선 담이가 말했다.

   “쇼헤이, 너는 착한 효자구나. 심부름도 잘하고.”

   “엄마가 몸이 안 좋아 늘 누워계셔. 내가 대신 장을 봐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쇼헤이의 말에 아픈 곳을 찌른 것 같아 담이 마음이 불편했다.

   “괜한 말을 해서 미안해. 그래도 매일 엄마를 볼 수 있으니 좋겠다.”

   쇼헤이가 휙 뒤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엄마랑 같이 안 살아?”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같이 없어.”

   담이가 머뭇거리다 다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조선인 노동자 숙소가 어딘지 알아?”

   “조선인 노동자? 글쎄, 잘 모르는데. 왜?”

   “우리 아버지가 열 달 전부터 여기서 일하고 계신데 소식을 몰라서.”

   쇼헤이가 계단을 오르다 말고 멈춰 섰다.

   “뭐? 일 년이 다 됐는데 여태 어디 계신지 모른단 말이야?” 

   “분명히 군함도라고 했는데, 만나지 못해도 소식만이라도 알고 싶어.”

   쇼헤이는 담이가 안쓰러웠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집 앞에 다다르자 입을 열었다.

   “우리 아빠한테 물어볼게.”

   “정말이야?”

   담이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돼? 한자로.”

   담이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사진을 내밀었다. 

   “이을용(李乙勇). 이게 아버지 사진이구.”

   사진을 들여다보던 쇼헤이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 없어도 되겠다.”

   아버지 얼굴은 담이랑 붕어빵이었다.


   쇼헤이 아빠는 탄광 관리사무소 직원이었다. 큰 사무실은 선착장 입구에 있고, 아빠는 주로 지하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 근무했다. 

   학교가 끝나고 쇼헤이는 아빠를 만나러 지하로 내려갔다. 

   이발소를 지나쳤다. 이발소 아저씨가 흰 천을 두른 손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아빠 사무실 벽에는 작은 칠판이 붙어있고,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빠는 자리에 없었다. 쇼헤이가 아빠를 기다리는데 어떤 서류철이 눈에 띄었다.

   ‘조선인 노동자 관리대장? 정말 여기 담이 아빠 이름이 있을까?’

   쇼헤이는 궁금해서 펼쳐보았다. 

   조선인 이름에 이 씨 성은 김 씨 만큼 많았다. 한참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이···을용. 아, 있어. 굴진부. A조. 2367번.” 

   쇼헤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담이 아빠가 정말 여기서 일을 하나 보네. 그런데 왜 연락을 못 하지?’

   쇼헤이는 벽에 붙어있는 A조 근무시간표를 보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네. 진짜 힘들겠······.’

   그때, 아빠가 모자를 벗으며 들어왔다.

   “쇼헤이, 어쩐 일이야? 여길 다 오고.”

   “이발소에 사람들 많나 보려구요. 머리 자를 때가 돼서. 근데, 아빠. 여기 조선인들도 일해요?”

   아빠가 뜻밖이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많이 와 있지. 하지만 일이 서툴러 골칫거리야.”

   “굴진부가 뭐 하는 거예요?”

   “해저 탄광에 내려가 맨 앞에서 갱도 파는 일을 하지. 궁금한 게 많구나. 엄마가 기다리겠다. 어서 집으로 가.”

   쇼헤이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이튿날, 쇼헤이는 굴진부 A조가 일을 마치고 공중목욕탕으로 갈 때를 기다렸다.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담이 아빠가 있나 봐야겠어. 담이랑 얼굴이 똑같이 생겼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한참을 기다리자 조선인 아저씨들이 몰려왔다. 알 수 없는 조선말이 들려왔다.

   ‘뭐야? 사람들 맞아?’

   쇼헤이는 깜짝 놀랐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석탄 가루로 새까맣게 뒤덮여 있었다. 그러니 누가 누군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웃통은 벗은 채 바지만 입고 있었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지 힘들어 그런 건지 아무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사람이 아니라 해골 같아.’

   쇼헤이는 담이 아빠 찾는 걸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그런지 가슴이 저렸다. 아빠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빠, 여기 탄광에서 캔 석탄들로 뭘 해요?” 

   “여기 석탄들은 일본에서도 최상급 품질이야. 이 석탄을 땔감으로 해서 용광로에서 쇠를 녹이지. 그래서 큰 배도 만들고 전함도 만드는 거야. 그 덕에 군함도 주민들은 좋은 시설에 월급도 많이 받으며 살잖아. 우리 아파트는 일본에서 처음 세운 콘크리트 건물이라고 학교에서도 배웠지?”

   아빠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럼, 조선인 아저씨들도 월급 많이 받고, 우리처럼 잘살겠네요?”

   “아니, 이 녀석이 어제부터 왜 이리 조선인들한테 관심이 많아? 당연히 돈벌이가 좋으니까 여기로 왔지.”

   아빠가 짜증을 냈다.

   “여보, 쇼헤이는 어려서부터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잖아요?”

   엄마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빠, 그 사람들은 어디 살아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언제 도망칠지 모르니 저 북쪽 아파트에 따로 살아. 거긴 아무나 못 가.”

   “돈을 많이 번다면서 왜 도망가려고 해요?”

   아빠는 대답하기 귀찮은 듯 텔레비전 채널을 손으로 타다닥 돌렸다.

   “이제 그런 질문 그만해!”

   쇼헤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탄광에서 일하는 친구 아빠들과 조선인 아저씨들 모습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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