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황금빛 국화
길고 긴 여름이 드디어 지나갔다.
긴 더위에 아버지가 얼마나 지쳤을까 생각하니 담이는 속이 탔다. 아버지를 구출하는 일에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 근무시간도 맞춰야 했다.
담이와 쇼헤이는 나가사키 시내에서 마쓰리(축제)가 있는 토요일로 정했다.
매년 10월 초, <군치 마쓰리>가 사흘간 큰 규모로 열린다고 쇼헤이가 말했다. 기다란 용춤을 추고, 네덜란드 배 모양의 가마도 등장하는 유명한 축제라고 했다. 올해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나와 중계를 할 정도로 대규모라 군함도 사람들도 다들 구경 간단다.
쇼헤이는 부모님께 친구들과 불꽃놀이 보러 간다고 허락을 받았다.
드디어 토요일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마쓰리 기분에 들떠 있었다. 미용실에서는 예쁜 누나들이 머리를 손질하느라 붐볐다. 여기저기 유카타(여름철 마쓰리 때 입는 무명 홑겹의 전통 옷)를 입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장터도 일찍 파해 꽃집 아저씨는 이미 시내로 돌아갔다.
담이는 옥상 정원에 홀로 남아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 아버지를 구하러 가야 해. 잘 될 거야!’
담이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어느 가게에 꽃 배달하러 온 것처럼 커다란 화분을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화분에 축하 리본도 매달았다.
일을 마친 조선인 아저씨들이 지나갈 통로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맞은편에서 아저씨들이 다가왔다. 담이는 완장 찬 아저씨와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재빨리 확인했다. 커다란 화분을 힘껏 들어 올렸다.
“스미마셍! 스미마셍!(미안합니다)”
담이는 연달아 외치며 아저씨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갔다.
“아 아, 오모이!(아, 무거워)”
아버지가 다가오자 담이는 힘겹다는 듯 화분을 털썩 바닥에 내려놓았다. 얼른 아버지 손에 쪽지를 건넸다. 아버지의 거친 손결이 느껴졌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담이 아버지는 목욕탕에서 몰래 쪽지를 읽었다.
아버지, 목욕 끝나고 돌아갈 때, 이발소 옆 화장실로 오세요. 기다릴게요.
담이 아버지는 몸을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람들과 함께 목욕탕을 나섰다.
“아이구, 배야!”
담이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허리를 굽혔다. 감독관이 소리쳤다.
“어이, 왜 그래? 얼른 따라오지 않고!”
“또 배탈이 났소. 화장실 들렀다 가게 해주시오.”
“그놈의 배탈이 또 시작이군. 쳇. 서둘러!”
담이 아버지는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담이가 아버지를 구석 칸으로 끌어당겼다.
“아버지!”
담이가 와락 아버지 품에 안겼다. 오랜만에 맡는 아버지 냄새였다.
“담아, 어찌 된 거야? 왜 이런 옷을 입었어?”
유카다를 입은 담이를 보고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지, 서둘러야 해요. 나가사키 마쓰리 가는 마지막 배를 타야 해요.”
담이는 화장실에 미리 숨겨두었던 보따리를 풀었다.
꽃집 아저씨가 준비해준 유카타를 아버지에게 건넸다.
처음 입는 옷이라 아버지는 서툴렀다. 담이가 오비(유카타 허리에 두르는 천)를 묶어주려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아버지 허리에 앙상한 뼈가 느껴졌다.
담이는 아버지 팔짱을 끼고 서둘러 화장실을 나섰다. 아버지 손에 부채도 쥐여 주었다. 감색 유카타를 입은 사람이 지나가자 아버지는 얼른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아버지는 게타(나무로 만든 전통 신발)가 불편했는지 뒤뚱거렸다. 걸을 때마다 덜거덕덜거덕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려 퍼지는지 조바심이 났다.
‘얼른 선착장으로 가야 하는데 ······.’
담이는 배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버지를 힘껏 부축했다. 지상으로 이어진 좁은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갔다.
쇼헤이는 선착장에서 담이를 기다렸다. 배표를 꼭 쥔 손에 땀이 배었다. 군함도 가족들이 줄줄이 배에 올랐는데, 담이가 오지 않아 애가 탔다. 발을 동동 굴렸다.
“어이, 너 안 탈 거냐? 곧 출발해.”
표 검사하는 아저씨가 쇼헤이한테 물었다.
“잠시만요. 아빠가 오기로 했는데······.”
저 멀리 담이가 다가오자 쇼헤이가 달려가 손을 잡아끌었다.
세 사람이 서둘러 배를 타자마자 뱃사람이 닻줄을 풀었다. 배 안은 마쓰리 가려는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그때, 누군가 쇼헤이 팔을 확 잡아당겼다.
“쇼헤이, 아빠랑 마쓰리 가는 거야?”
같은 반 다쓰오였다. 화들짝 놀란 쇼헤이가 “어··· 어.”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다쓰오가 다시 힐끗 쳐다보았다.
“아빠 아니잖아?”
“삼, 삼촌.”
다쓰오가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쇼헤이는 사람들 눈을 피하려고 뒤쪽 갑판으로 갔다. 거기도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세 사람은 구석진 곳에 나란히 서서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았다. 심장이 고장 났는지 쿵쾅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배에 매달린 일장기(일본 국기)가 오늘따라 더욱 더 붉게 펄럭였다.
배가 전속력으로 달리자 군함도는 점점 멀어져갔다. 붉은 저녁노을 아래 군함도가 새까만 종이로 오려낸 것처럼 선명하게 바다에 떠 있었다.
‘창살 없는 감옥을 드디어 벗어나는구나.’
담이 아버지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쇼헤이라고 했지? 정말 고맙구나.”
아버지가 쇼헤이 어깨에 손을 얹고 나지막이 말했다. 쇼헤이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배가 나가사키 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쇼헤이, 우린 더 이상 못 만날 거야.”
담이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알고 있어. 그래도 우리는 해야 했어. 장수풍뎅이 잘 돌볼게.”
“너는 정말 고마운 친구야. 잊지 않을게. 쇼헤이.”
두 사람은 힘껏 부둥켜안았다.
쇼헤이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담이와 아버지가 사람들 사이로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한참 후, 배는 군함도를 향해 다시 뱃머리를 돌렸다. 쇼헤이는 갑판에 서서 멀어져가는 나가사키 시내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피~융~ 펑! 펑! 퍼벙!
마쓰리 불꽃놀이를 알리는 신호탄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까만 하늘에 황금빛 국화가 활짝 피었다. 수많은 꽃잎이 하늘하늘 반짝거렸다.
황금 꽃잎은 금세 별똥별이 되어 쇼헤이 가슴으로 파르르 쏟아져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