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노무라 가의 묘
아침나절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짙은 먹구름이 몰려온 오후였습니다.
“엄마, 외삼촌한테서 소포 왔어요!”
카즈오는 우체부 아저씨로부터 소포를 받아들었습니다.
외삼촌은 일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열여덟 생일이 막 지났습니다.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나 몰라.”
어머니는 일본에 있는 남동생이 늘 걱정이었습니다. 일본이 한창 전쟁 중이라 혹시 군대에 끌려가지나 않을까 불안하던 터였습니다.
“세상에, 소포를 보내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어머니는 맨발로 현관을 내려와 소포를 뜯었습니다. 편지를 꺼내 펼쳤습니다.
카즈오도 고개를 내밀어 같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사랑하는 누님 보십시오.
저는 두 시간 후면 *가미카제 특공대로서 전쟁터로 나갑니다.
누님이 이 글을 읽을 즈음 저는 이미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저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누님이 저 때문에 눈물 흘리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누님이 어머님을 대신해 저를 정성껏 돌보아주신 것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누님, 저 때문에 울지 마십시오. 늘 건강하십시오.
*가미카제; 제2차 세계 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
어머니는 넋 나간 얼굴로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엄마, 가미카제가 뭐야?”
카즈오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천황폐하를 위해 전쟁터로 나가는······. 그 어린 나이로. 흑흑.”
어머니는 너무 슬퍼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소포에는 편지와 함께 외삼촌의 손목시계가 유품으로 들어있었습니다.
“엄마, 정신 차려! 어떡해. 엉엉.”
어머니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자리에 누워 영영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미동 공동묘지에 잠들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으로 카즈오는 웃음을 잃었습니다.
오랜만에 용수랑 만나 용두산 공원에 갔습니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자 용두산 신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두 손 모아 참배했습니다.
계단 맨 위에 나란히 앉아 부산항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카즈오. 저기, 큰 배 일본 가는 부관연락선 맞제?”
“응, 콩고마루 호.”
“용수야, 저 바다 동쪽으로 쭉 가면 어딘지 알아?”
“음··· 해가 동쪽에서 뜨니까 해나라가 있겄지. 히히.”
용수가 웃자고 한 소리인데, 카즈오는 여전히 어깨가 축 처졌습니다.
“일본 효고 지방이래. 우리 엄마 고향.”
머쓱해진 용수가 머리를 긁적거렸습니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어 했는지 몰라.”
카즈오가 훌쩍거리기 시작합니다.
“카즈오, 사나이가 말이야 그래 눈물이 흔해가 어짤라꼬 그라노? 힘내라!”
용수가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용수야, 어른들은 왜 전쟁을 하는지 모르겠어. 엄마도 외삼촌도 모두 다 빼앗아갔어. 난 전쟁이 싫어!”
“그래 맞다. 대체 뭐 때문에 싸우는 거고? 우리는 절대로 나쁜 어른 되지 말자. 나는 약속 지킬 끼다.”
소나무 그림자가 계단에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두 사람은 저녁노을이 물들 때까지 부산항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튿날 두 사람은 아미동에 있는 일본인 공동묘지로 갔습니다.
묘지는 산자락에 위치해 바람이 쌩쌩 불었습니다. 가파른 비탈길을 계속 걸어갔습니다. 용수가 숨이 차 헉헉거리며 말했습니다.
“와~ 까치가 억수로 많네.”
카즈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합니다.
“묘지 위에 놓인 제사음식 먹으려고 날아오는가 봐.”
“우와~ 용두산 공원이랑 동네가 다 보인다. 바다도 보이고.”
용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엄마 묘지는 바다에 제일 가까운 동쪽 끝이야. 엄마 고향이 잘 보이라고······.”
공동묘지에 다다랐습니다.
네모난 돌을 서너 단 쌓아 그 위에 비석이 놓인 무덤이 모여 있었습니다.
용수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설익은 대추알을 대여섯 개 꺼냈습니다. 묘비 앞에 공손히 내려놓고 나란히 절을 했습니다. 용수가 카즈오를 토닥거리며 말합니다.
“지금쯤 어머니는 고향 하늘에 잘 계실 끼다.”
비석에는 ‘노무라 가의 묘(野村家之墓)라고 쓰여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