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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희 Sep 14. 2023

바다를 건너온 피아노<2>

2. 시장통의 단짝 친구     

   할아버지가 소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카즈오, 아버지 따라 이발소 같이 갈래?”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얼른 아버지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부평정시장(현 부평깡통시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제일 큰 공설시장이라 과일, 생선, 생활용품 등 없는 게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신기한 물건도 많았습니다. 

   시장은 뾰족한 지붕에 기다란 네모 창이 여러 개 달린 일본식 건물이었습니다. 매일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였습니다.

   상인은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조선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이발소 한 곳뿐이었습니다. 솜씨가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이발소 입구에는 빨갛고 파란 줄기둥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이소. 오래간만이시네예.”

   이발사 아저씨는 기다란 가죽 판에 면도날을 쓱쓱 갈며 인사했습니다.

   “머리 좀 다듬어주시오.”

   아버지가 목 단추를 풀며 말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더. 아드님도 같이 오셨네예.”

   “안녕하세요? 노무라 카즈오라고 하무니다.”

   카즈오가 꾸벅 고개를 숙였습니다.

   “참하게 생겼네. 몇 살이고?”

   “여덟 살이무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내미하고 똑같네.”

   아저씨가 반갑다는 듯 웃었습니다. 넓은 이마에 가느다란 실눈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높은 의자에 걸터앉자 아저씨는 사각사각 가위질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면도가 시작되자 비누로 거품 낸 솔이 아버지 얼굴을 솜뭉치로 만들었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라디오에서 슬픈 가락의 창가가 흘러나왔습니다.

   카즈오는 지루해서 이발소를 둘러보았습니다. 액자가 군데군데 걸려 있습니다. 

   뱃사공을 태운 황포 돛단배. 저녁노을을 등지고 한가롭게 떠 있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계곡. 노랑 빨강 물감이 두텁게 덧칠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는 소년.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서양 사람인지 얼굴이 하얗고 샛노란 머리카락이 꼬불꼬불합니다. 

   농사짓는 부부가 저녁 들판에 서서 기도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난로 위의 주전자 뚜껑이 푸~하고 하품을 합니다. 

   카즈오도 아함~하고 하품을 했습니다.

   그때, 방으로 이어지는 커튼이 출렁거리더니 틈새로 종이 딱지가 슬그머니 삐져나왔습니다.  

   “어, 저게 뭐지?” 

   카즈오가 다가가 딱지를 잡아당기자 새까만 얼굴이 뒤따라 나왔습니다. 하얀 저고리 곳곳에 얼룩이 묻어있습니다.

   “안녕, 나는 신 용수. 학교에서는 히라야마 다츠히데. 히히히.”

   용수가 노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습니다.

   “나는 노무라 카즈오.”

   “내캉 딱지치기할래?” 

   용수가 카즈오 팔짱을 끼며 얼굴을 빤히 들여다봅니다. 밤송이 같은 머리카락이 옷깃을 스칩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 같습니다.

   용수는 방금 카즈오에게 건네줬던 딱지를 낚아채 땅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이얏!” 

   용수가 다른 딱지로 내리쳤습니다. 

   딱 소리와 함께 딱지는 공중제비하듯 뒤집혔습니다. 

   카즈오 차례가 되었습니다. 용수 딱지를 힘껏 내리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헤헤. 안 넘어가제?”

   용수가 실실 웃으며 카즈오 딱지에 두꺼운 종이를 끼워주었습니다.

   “이래 두꺼버야 잘 된다. 다시 해봐라.”

   카즈오가 다시 내리쳤지만, 여전히 넘기지 못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용수가 왼발을 딱지에 갖다 대고 내리치면 번번이 넘어갔습니다. 

   때로는 저고리를 풀어 헤쳐 바람을 일으켜 딱지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카즈오는 용수가 무슨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시장통의 단짝 친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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