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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희 Sep 14. 2023

바다를 건너온 피아노 <1>

1. 모교를 찾아서     

   ‘분명히 이 근처 같은데···.’ 

   할아버지는 동네 곳곳을 둘러봅니다. 멀리 용두산 공원의 부산타워가 눈부십니다.

   맞은편 산은 꼭대기까지 집들로 빽빽합니다. 갯바위에 다닥다닥 들러붙은 따개비처럼 정겹습니다. 나지막한 일본식 집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70년 세월이 무섭구먼. 너무 변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자 학교 돌담이 나왔습니다. 학교 건물은 담쟁이 넝쿨로 뒤덮였습니다. 햇빛에 반사된 초록 잎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교문 앞에는 목조 집이 있습니다. 이층 창에 덧문이 달린 일본식 집입니다.

   ‘파랑새 문방구’라는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알록달록 공이 든 비닐 주머니가 매달렸습니다. 훌라후프, 돼지저금통, 실내화가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습니다.

   ‘그래, 눈에 익은 돌담이야. 문방구 건물도. 아무래도 여기 같아.’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학교는 낯선 새 건물입니다. 어디서도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업이 끝나 다들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군.’

   화단을 지나 운동장을 둘러보았습니다. 

   한 모퉁이에 은행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습니다. 그 아래 팻말이 있습니다.     

이 나무는 1915년 개교 당시 심어진 것으로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맞아. 여기가 틀림없어. 어릴 적 우리 학교.’

   할아버지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학교를 찾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은행나무를 어루만집니다. 

   세월 속 저편에 있던 친구들과 즐거운 이야기들이 되살아났습니다. 

   운동회 때 줄다리기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수십 명씩 줄지어 마주 보고 섰습니다.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까칠한 밧줄을 바투 잡았습니다. 손바닥에 땀이 났습니다.

   휘리릭! 

   드디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렸습니다. 

   “간바레! 간바레!(힘내라! 힘!)”

   응원하는 함성과 함께 긴 용틀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왓쇼! 왓쇼!(영차! 영차!)”

   목청껏 소리 지르며 굵은 밧줄을 힘껏 당깁니다.

   밧줄이 앞쪽으로 휘청 이끌려갑니다. 앞쪽에 선 덩치 큰 친구들이 지지 않으려고 몸을 뒤로 젖힙니다. 얼굴이 붉어지고 팔뚝에 힘줄이 섰습니다. 

   밧줄이 또다시 휘청거리더니 뒤쪽으로 끌려옵니다. 끄트머리에 있던 친구들은 땅에 나뒹굴었습니다. 무릎에서 피가 났지만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휘리릭!

   시합이 끝났습니다.

   “캈다! (이겼어!)”

   이겼다는 기쁨에 신이 나 부둥켜안고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2층에는 강당이 있고 앞쪽에 커다란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조례 시간이 되면 피아노에 맞춰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불렀습니다.

   강당 뒤쪽에는 후지산에 붉은 해가 떠오르는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꺼번에 많은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벅찼습니다. 은행나무를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습니다. 

   그때 학교를 둘러보던 교장 선생님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저, 어르신 어디 편찮으세요?”

   “아노······ 저는 일······ 일본에서 왔스무니다.”

   할아버지가 더듬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일본인이세요?” 

   “하이, 아, 네. 일제 강점기 때 부산에서 태어나 이 학교를 다녔스무니다.”

   “아이구,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여긴 예전에 일본인 소학교(초등학교)였지요.”

   할아버지가 안심했다는 듯 빙그레 웃었습니다.

   “참 많이 변했군요. 학교 건물은 새로 지었나 봅니다. 제가 다니던 시절에는 붉은 벽돌에 하얀 창문이었스무니다. 기와는 초록색이었고.”

   교장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그랬군요.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한국말을 아주 잘하시네요.”  

   “아이구, 감사하무니다. 잊지 않으려고 틈틈이 공부했지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학교 밖을 가리킵니다. 

   “학교 앞 문방구는 일본식 건물 그대로이무니다. 저 앞길엔 하얀 한복을 입은 조선인들이 지나다녔스무니다. 머리에 봇짐을 이고 가는 아주머니도 있고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도 지나다녔지요. 수업하다 말고 담장 너머 내려다보곤 했어요.”

   할아버지 목소리가 점점 높아집니다. 새로 건전지를 갈아 끼운 시계처럼 힘찹니다.

   “이 은행나무만큼은 변치 않고 잘 자랐군요. 모진 세월을 꿋꿋이 견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스무니다.” 

   “네. 우리 학교의 자랑스러운 역사랍니다. 이 나무만큼은 모든 역사를 다 알고 있지요. 일제 강점기도 거치고 해방도 맞고 그러다 전쟁도 이겨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아무리 봐도 좋다는 듯 은행나무를 또 쓰다듬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할아버지를 역사자료관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리 크진 않지만, 혹시 어르신의 옛 추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이구, 이런 곳이 있었군요.”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이리저리 기웃거렸습니다.

   역사자료관에는 옛 소학교 시절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옛 모습의 학교 흑백사진. 역대 교장 선생님 사진 등등. 사진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빛이 바래 누런색이 되었습니다. 졸업앨범을 넘기자 빛바랜 종이 냄새가 났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외쳤습니다. 

   “아, 여기. 우리 반 사진이무니다. 이분이 야마다 선생님이시고.”

   교장 선생님이 다가가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학생들이 꽤 많았군요.”

   “여기 있는 친구들이 모여 지금도 동경에서 동창회를 하무니다.”

   “놀랍습니다. 여태껏 동창회를 하신다니.”

   “모이면 부산 살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지요.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법이니까요.”

   할아버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한참 후, 할아버지가 돋보기를 안경집 속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스무니다. 정말 감사하무니다.” 

   “아닙니다. 어르신 추억거리가 남아있어 다행입니다. 힘든 걸음 하셨는데 차라도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로 안내해 보리차를 유리잔에 따랐습니다.

   “일본으로 귀국하신 후 부산에 처음 오신 겁니까?”

   할아버지는 보리차를 한 모금 들이켰습니다.   

   “네, 그렇스무니다. 제 고향은 부산이지요. 팔순이 넘다 보니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었스무니다.”

   띠리릭! 띠리릭!

   교장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아, 네. 제가 가서 처리하지요.”

   교장 선생님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어르신, 잠깐 교무실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아, 네. 괜찮스무니다. 천천히 일 보고 오시지요.”

   혼자 남은 할아버지가 창밖을 내다봅니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다닐 때도 강당에 큰 피아노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창 너머 파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얀 구름 속에 한 조선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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