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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장군 Jul 13. 2024

여장군 콤플렉스 - (1)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 장군감 여대생


“선생님- 이 아저씨처럼 무섭게 생겼어요!”  


 근로 첫날. 가장 우려했던 일이 터져버렸다. 책 10권을 어깨에 이고 헉헉 거리고 있던 나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아이가 이순신 장군 삽화가 그려진  역사책을 내밀며 한 얘기였다. 순간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꿀알바 일 줄 알고 지원했던 도서관 근로에 뒤통수를 맞은 것도 서러운데, 첫날부터 아이가 나의 ‘장군 콤플렉스’를 건드릴거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너 뭔가 장군 같다.. ”


 초등학생 때, 이순신 장군의 삽화를 본 짝꿍이 나와 그림을 번갈아보다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나보다 더 당황스러워하는 그 아이의 표정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의도했든 아니든. 장군 닮은 것을 들켜버린 나는 초등학교 내내 친구들에게 이름 성을 합쳐 안장군이라 불렸다. 쭉 찢어진 매서운 눈과, 우족처럼 두꺼운 통뼈, 먹고 싸고가 전부였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가만히 앉아 근육량 46%로를 유지하던 나의 선천적 우람함이 그 별명을 아주 잘 뒷받침해 줬다. 


 그땐 그 별명이 좋았다.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어쩐지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학교 아이들이 나를 장군이라고 부르는 걸 알았을 때, 엄마는 좌절했다. “여자 애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칭찬이 아니라 욕이야 욕. 여자가 장군감이면 사랑받지 못해.” 엄마는 내 덩치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다이어트를 목적 삼아, 나를 최대한 굶기는 걸 목표로. 그렇게 나는 밥상 앞에서 꼬르륵거리며 눈칫밥만 먹게 되었다. 굶어도 줄어들지 않는 덩치를 보고 엄마와 더불어 나도 좌절했다. 정말 이대로 크면 아무에게도, 심지어 언젠간 엄마에게도 사랑받지 못할까 봐. 

혹여 덩치가 줄어들까 저체중까지 빼본 나의 노력에도 내 별명은 안장군이었다. 남들의 시선보다 더욱 문제가 되었던 건 너무도 소심한 나의 내면이었다. 장군이라는 별명이 부끄러울 정도로 하지 말라는 말을 곧 죽어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을 뿐이었다. 덩치만 산만한. 그게 바로 나였다. 

‘장군처럼 생겼으면 내면이라도 강하지. 왜 쭉쟁이처럼 아무 말도 못 해.’ 

이 말은 내가 나한테 하는 가장 아픈 공격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초등학교 도서관 근로 신청을 망설이게 된 것도 이 빌어먹을 ‘장군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일터에서 나의 외관 에티튜드가 최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무서워서 아이들이 책을 읽으러 오지 못하면 어쩌지? 아니면 책을 보러 온 아이가 나를 보고 울면 어쩌지? 아니야. 애초에 면접에서 떨어질지도 몰라.’ 지원서 앞에서 나는 계속 계속 작아졌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지원창을 떠나지 못했던 건, 도서관 사서는 내 오랜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무섭거나 드센, 내 외면을 가지고 정의하는 말들에 반박하는 게 무서웠던 나는 이상하게도 나와 반대되는 것들을 좋아함으로써 그 마음을 위로해 왔다. 그래서 아이들과 책을 많이 좋아했다. 둘 다 나와 달리 참 작고, 사랑받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온전히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일하는 거. 그게 내 로망이었다. 더불어 이젠 엄청난 착각인 걸 알지만, 책을 읽으며 돈을 벌 수 있는 우아한 일터라고 생각했었다. 책을 읽다 쉬는 시간이 오면 아이들의 대출 반납 처리를 도와주고, 책이 질리면 쉬엄쉬엄 책 정리를 하는 그런 꿀알바. 


 첫 근로날 아침. 나는 옷장에 박혀있던 노란 옷을 꺼내 입었다. 옛날에 아이들의 크레파스 중 가장 빨리 닳는 색이 노란색이라는 걸 어디선가 주워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니까 가장 많이 쓰겠지가 이유였고, 아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근로를 시작한 지 2시간 채도 지나지 않아 이런 말을 들어버렸다. 정말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은 기분이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제일 무서워했던 말이 예고도 없이 나를 공격했다. 순간적으로 팔에 힘이 훅하고 빠졌다. 나는 '어어' 거리다 결국 책을 놓쳐버렸고, 우당탕 소리를 내며 책들이 내 발등 위로 떨어져 주저앉아버렸다. 조용히 책을 읽던 아이들이 토끼눈을 뜨고 괜찮으세요?를 외치면 달려왔다. 나는 책을 다시 주워 들었고, 아이들도 이리저리 흩어진 책을 주우며 도와주었다. 그러다 한 아이가 어떤 책을 빤히 들여다보다 신나서 소리쳤다. 


“어-!!?? 이거 엄청 선생님이랑 닮았다!” 


선생님도 알아. 장군 닮은 거. 이번엔 웃으면서 받아주리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이가 건넨 책을 받았다. 그 책은 내 예상과 달리 '장수탕 선녀님'이라는 책이었다. 


“할머니?”
 “아뇨, 이거요!” 


아이가 가리킨 손가락 끝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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