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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장군 Jul 19. 2024

여장군 콤플렉스 - (2)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 장군감 여대생


아이가 가리킨 손가락 끝엔 장수탕 선녀님 중 '탕'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사람보고 탕을 닮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처음으로 경험해 본 아이의 엉뚱함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탕?? 선생님이 탕이라는 글자를 닮았다고? 왜?" 

"뭔가, 이게 끄응.. 탕이랑 선생님 느낌이.." 

설명하기 어려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다 우기기 시작했다. 

"몰라요!! 그냥! 뭔가! 탕이 선생님이랑 닮았어요!!"


아이들은 너나 나나 표지를 보겠다고 달려들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깔깔 웃는 아이도, 자긴 뭔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황당하고 웃겨  배를 잡고 웃었고, 아이들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거 닮았어요.” 

“아니거든?? 이걸 더 닮으셨어요!” 


각자 자신이 주워들은 책 표지에서 나를 닮은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쭉 찢어진 눈이 지렁이를 닮았다는 아이도, 고양이 눈을 닮았다는 아이도, 고구마를 닮았다는 아이도. 내 덩치가 둥근 똥을 닮았다는 아이도, 큰 빵을 닮았다는 아이도 있었다. 이유가 있기도, 없기도 했지만 요리조리 조잘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나를 닮은 것을 찾느라 함께 들떠 있었다.


“아냐!! 다들 조용히 해! 그냥 선생님한테 물어보자!” 

“맞아! 선생님 답이 뭐예요??” 

“어??”
“아니이- 선생님이 생각하는 가장 닮은 게 뭐냐고요.”

“그래. 선생님이 가장 잘 알겠지!”


아이들은 하나씩 자기가 골라온 책을 들고 침을 꼴딱였다. 처음 받아본 질문이다. 원치도 않던 남의 시선을 끌어안고 나도 나를 평생 그렇게 봐왔으니까. 내가 가장 잘 알아. 어쩌면 그래야 했을지도.

 

아이들이 들어 올린 표지 위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우악스러운 표지를 고를까 하다 시선이 멈춘 곳은 '웃는 꽃'이 그려진 노란 책이었다. 너무 이뻤다. 내가 봐도 나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만 분명 저 꽃이 나를 닮았다고 확신의 찬 아이의 표정을 믿고, 나도 아이들처럼 우겨보기로 했다. 

"선생님 생각엔 저거 닮은 것 같은데요?"

나랑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는 작고 아름다운 노란 꽃. 하지만 아이는 밝게 웃으며 소리쳤다. 

“봐바!! 내가 고른 게 맞다니까??”

터무니없는 내 답에도 그게 맞다고 자신 있게 소리쳐주는 아이를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그냥 나도 저렇게 할걸. 어쩌면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나의 소란은 뒤늦게 달려온 사서 선생님의 의해 종결이 났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책들을 다시 주워 들었고, 아이들은 책을 들고 이리저리 흩어졌다. 뿔뿔이 흩어진 뒤에도 아이들은 책 표지 속 친구를 닮은 것을 찾느라 열중이었다. 


여장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세상도 나한테 그렇게 알려줬으니까. 문제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 한들, 내가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다를 바 없어 상처만 더 후벼 팔 뿐이었다. 때론 내 시선이 더 아팠고.

모순적이게도 장군 콤플렉스를 치유해 준 건 또 남의 시선이었다.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아이의 시선.


우리는 왜 남의 시선이라 했을 때, '벗어나야 하는 것,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이라는 강박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렇게 고양이 같은 시선도, 큰 빵 같은 시선, 노란 꽃 같은 시선도 있는데 말이다. 오늘 나는 남들의 시선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끌어안았다.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발견해 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를 향한 이렇게 아름다운 시선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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