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백수 일기
사실 중년 백수에게 연휴는 큰 의미가 없다.
남들 일하는 평일에 놀고 있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
매년 새 달력에서 쉬는 날을 먼저 찾아보는 아내를 보면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니 휴일은 오히려 아내를 위해서 더 열심히 노는 일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전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삼성동 어머님 집에 들렀다.
여든일곱의 연세에도 자식들을 맞느라 녹두부침개와 식혜를 해 놓으셨다.
뜨거워야 맛있다며 계속 새로 부쳐 주신다. 어머님 시그니처 식혜 맛과 녹두부침개의
궁합이 설 전날 아침을 풍성하게 해 준다.
세배를 하고 아이들과 아내는 음식을 하러 처가로 가고 나는 어머님과 수다를 떨었다.
큰 형네 식구들이 온다는 전화가 와 가벼운 마음으로 눈바람을 맞으며 한 정거장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우리 집에서 처갓집 식구들 모임이 있어 내가 집안 청소를 다 해 놓기로 했다.
화장실, 방들, 거실까지 청소와 정리를 두 시간 정도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구석구석 먼지 한 톨까지 청소를 하고 나니 연휴의 미안한 감정이 조금은 사라졌다.
휴식의 즐거움은 열심히 일한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고통을 참고 견딘자들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라는 보상 체계 때문일 것이다.
을사년에는 나도 휴일이 기다려지는 일상을 살기로 다짐을 한다.
내일 아침 일찍 가락시장에 가서 횟감과 매운탕거리를 사 오면 내 임무는 끝이다.
처갓집 식구들이 다 모이면 마치 나 혼자 왕이 된 것 같아 우쭐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가족들의 사랑을 돼 돌리기 위해서는 일상을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
연휴가 기다려지는 푸른 뱀의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