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들

중년 백수 탈출기

by 일로

3. 합천 산봉우리


내 인생은 무모한 도전의 연속인 것 같다.

마치 뭔가에 중독된 사람처럼 어느 한순간 몸이 말하면 앞뒤 없이 무작정 내달리기 시작한다.

미친 듯 달려가다 성공이 얻어걸리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쓰디쓴 인생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내가 이런 성향이 된 건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살 때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 3이 되면서 갑자기 서울대를 가겠다고 공부를 시작했다. 경기고 전교 꼴등에서 2등 했던 성적으로

내신을 끌어올려 재수를 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재수를 하던 2월 어느 날 갑자기

대학을 안 가겠다며 합천 이모댁으로 내려갔다. 어느 날 아침 이모집 근처 다리를 건너다 쳐다본

산봉우리에 관한 추억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던 것 같다.


저 멀리 구름 위로 멋진 산봉우리가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정신과치료를 받아야

했던 내 뇌는 나를 비웃고 있는 저 산봉우리를 가만두면 안 된다고 속삭였다. 괜히 보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다리 아래로 내려와 그 산봉우리만 보면서 하천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다 보니 방향이

달라지고 있어 논밭 길과 다른 동네들을 가로질러 계속 걸었다.


더 이상 길이 없을 것 같던 폭포와 작은 구릉들을 넘어가니 저만치 나를 내려보던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 왔다는 기쁨을 가지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봉우리는 보이지 않고 능선을 잘못 타서 내려가야 했다.

그렇게 길도 없는 덤불 속을 헤매며 산 중턱까지 오르다 마지막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이쪽 능선에서 저쪽

능선으로 두세 발을 굴러 재빨리 소나무 아래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거나 재빨리 소나무를 잡지 못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순간 돌아가려면

지금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지금 돌아간데도 무사히 갈지도 의문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쪽 능선으로 몸을 던진다는 것은

내려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망설임도 잠깐이었다.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 순간 돌아갈 것이다.

나는 달라야 한다". 나는 몸을 날렸고 한 손으로 소나무 아래를 잡았다. 몸을 끌어올려 그쪽 능선으로

넘어가 올라가니 저만치 나를 내려다보던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그 바위 위에 올라가

앉아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정상이었지만 아무런 기쁨도 환희도 없었다.


그냥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는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뭔지 모를 눈물이 눈에 고여 흘러내렸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고, 다리도

꼼짝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이곳에 와있는지 알 수 없었고, 3월이었으나 땀이 식으면서 몸도 추워지기

시작했다. 곧 날이 어두워진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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